곰이 떠난 자리에 숲이 돌아오게 하다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
202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원장상
구분: 공공공간 및 건축
202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공진원 원장상에 국립수목원과 조경하다열음의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이 선정됐다.[주2] 국립수목원 구 산림동물원의 곰 사육장을 재해석한 이 프로젝트는 광복 80주년 기념사업이자 산림청 생활정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국립수목원은 버려진 공간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증진에 기여하는 모델정원으로 이 사업을 조성했다.[주3]
프로젝트의 서사는 ‘곰이 자유를 찾아 떠난 자리에 숲의 주인이 돌아온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곰을 가두었던 콘크리트 구조물 안으로 나무·풀·바위·토양·미생물이 다시 들어오는 과정을 공간에 담았다. 기존 자생식물과 주변의 돌·나무, 철거 과정에서 나온 콘크리트 일부를 재활용하고, 실내와 실외를 갤러리정원·회복정원·숲정원으로 구성했다.[주3]
이곳에서 디자인의 주요 과제는 어느 구조물을 철거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생태적 천이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감금시설의 기억을 방문객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였다. 곰 사육장의 벽과 해자, 철문과 관찰구 일부가 남았고 그 사이에 식물이 들어왔다. 새롭게 조성한 정원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숲과 섞여 계속 변하도록 계획됐다.[주1][주4] 이 작품은 202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 앞서 2025 한국조경가협회 작품상에도 선정됐다.[주4]
26년간 동물이 살았던 산림동물원
국립수목원 산림동물원은 1991년 8월 희귀동물의 종 보존과 번식을 목적으로 문을 열었다. 백두산호랑이, 반달가슴곰, 늑대, 멧돼지, 오소리와 맹금류 등이 사육됐다.[주5]
1997년부터 광릉숲 보전을 위해 통제구역으로 관리됐고, 2004년부터 일부 기간에 제한적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물들이 노쇠했고 관련 연구환경도 변화했다. 국립수목원은 2017년 산림동물원을 폐쇄하고 동물들을 다른 시설로 옮기거나 방사하기로 결정했다.[주5] 곰 사육장도 사용을 멈췄다.
사람의 관리가 사라진 뒤 담쟁이덩굴이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올라갔고 갈라진 틈에서는 단풍나무와 가래나무가 자랐다. 빗물이 고이는 곳에는 부들과 사초가 자리 잡았다. 벌집과 곰의 발자국, 벽의 긁힌 흔적도 남아 있었다.[주1] 조경하다열음은 이렇게 형성된 풍경을 프로젝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지웠지만 남긴다”
조경하다열음이 「환경과조경」에 공개한 프로젝트의 기획문에는 “지웠지만 남긴다”는 표현이 등장한다.[주1] 높은 콘크리트 벽과 깊은 해자, 철문 등 곰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졌던 구조 일부는 그대로 남았다. 폐쇄 이후 자라난 식물도 가능한 범위에서 보존했다. 설계자는 사육시설의 흔적과 그 위로 진행되는 자연의 변화를 한 공간에서 함께 보도록 구성했다. 과거에는 곰과 숲을 분리했던 벽과 해자가 현재에는 그 장소의 역사를 보여주는 구조물이 됐다.[주1] 국립수목원은 이 정원을 브라운필드형 모델정원으로 설명한다. 기능을 잃고 방치된 시설을 모두 지우기보다 기존 구조와 재료, 자연의 회복과정을 새로운 공간에 활용한 사례다.[주3]
콘크리트를 버리지 않고 다시 쌓았다
철거 과정에서 나온 재료도 정원의 일부가 됐다. 윤호준 조경하다열음 공동대표는 2025 한국조경가협회 작품상 발표에서 장비로 옹벽을 철거하면서 떨어져 나오는 콘크리트의 크기를 약 50cm~1m로 조절하고, 이를 다시 현장에 쌓아 정원의 재료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주4] 다른 산림동물원 시설에서 나온 흙과 돌도 사용했다. 멧돼지 사육장에서 나온 흙과 돌을 선별해 경사면 보강과 단차 처리에 활용했다.[주4] 국립수목원 역시 주변의 자생식물과 돌·나무, 일부 철거한 콘크리트 폐기물을 재활용해 정원을 조성했다고 밝혔다.[주3]
과거 시설을 철거하면서 나온 물질이 외부로 반출되지 않고 새로운 지형과 경관을 만드는 재료로 다시 사용됐다.
곰이 떠난 자리에 ‘숲의 주인’이 돌아오다
국립수목원이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제시한 핵심 서사는 곰과 숲의 관계다. 곰이 사육시설을 떠난 뒤 콘크리트 구조물 안으로 나무와 풀, 바위, 토양, 미생물이 다시 들어온다. 국립수목원은 이들을 ‘숲의 주인’으로 표현했다.[주3]
정원은 실내와 실외로 나뉜다. 실외에는 기존 방사장과 해자, 숲의 경계가 남아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로 식물이 자라면서 시설과 숲의 경계가 점차 흐려진다. 실내 사육장에는 갤러리정원과 식재공간을 만들었다. 곰이 생활했던 어두운 내부에는 낮은 광량에서도 자라는 식물을 심었고, 사육사가 새끼 곰의 상태를 확인하던 작은 관찰구도 남겼다.[주4]
철문 역시 일부 남겨 외부 풍경을 바라보는 프레임으로 활용했다. 곰을 가두었던 장치가 방문객에게는 주변 자연을 바라보는 틀이 된 것이다.[주3]
갤러리정원, 회복정원, 숲정원
공간은 갤러리정원, 회복정원, 숲정원 등으로 구성됐다.[주3]
갤러리정원은 과거 사육장 내부를 활용한다. 이곳에는 약 100년 전 한반도의 풍경과 식물을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 자료가 전시됐다.
회복정원에서는 기존 콘크리트 구조물과 그 사이에서 성장하는 식물을 함께 볼 수 있다. 철거한 콘크리트와 주변에서 확보한 돌과 흙도 공간 구성에 사용됐다.
숲정원은 주변 광릉숲과 사육장 사이의 경계에서 자연의 천이가 이어지도록 구성됐다.[주1][주3]
세 공간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지만 과거 사육시설의 흔적과 현재의 식생이 모두 남아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광복 80주년의 ‘자유와 회복’을 공간으로
이 사업이 광복 8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됐다는 점은 공간의 서사와 전시에도 반영됐다. 국립수목원은 프로젝트의 주제를 ‘자유와 회복’으로 설명했다.[주3]
곰이 떠난 사육장은 감금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그 빈자리에 다시 들어오는 식물과 생태계는 회복의 과정으로 해석됐다. 갤러리정원에서는 20세기 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식물을 조사했던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이 남긴 사진자료도 활용했다. 윤호준 공동대표는 당시 기록된 한국 식물과 국립수목원의 식물주권 아카이빙 작업을 전시에 연결했다고 설명했다.[주4]
광복 80주년이라는 역사적 주제와 곰 사육장의 해방, 자연의 회복, 한국 식물의 기록을 한 공간 안에서 연결한 것이다.
완성보다 변화를 계획하다
조경하다열음은 이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회복의 과정’을 반복해서 언급한다. 사육장 폐쇄 이후 이미 식생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새 정원을 완성된 모습으로 고정하기보다 기존 식생과 새로 도입한 식물이 함께 변하도록 계획했다.[주1] 윤호준 공동대표는 한국조경가협회 작품상 발표에서 처음부터 완성된 상태를 만들기보다 미완의 상태로 두고 숲과 시간에 변화를 맡기는 방향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새 식재와 콘크리트 구조 사이의 차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식물이 구조물 깊숙이 들어오면 점차 달라질 것으로 보았다.[주4]
국립수목원 역시 이곳의 해설 프로그램을 자연이 회복되는 과정을 관찰하고 숲의 생태와 생명의 순환을 알아보는 내용으로 운영했다.[주6] 따라서 이 정원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달라지게 된다. 그 변화 자체가 프로젝트가 계획한 풍경의 일부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을 위한 모델정원
국립수목원은 이 사업을 생활정원 조성사업의 하나이자 모델정원 연구로 추진했다.[주3] 생활정원 조성사업은 국민이 일상 가까이에서 정원을 접할 수 있도록 유휴공간 등에 실내외 정원을 조성하는 산림청 사업이다. 국립수목원은 곰 사육장 프로젝트에서 기존 생태환경을 활용하고 자생식물과 현장 재료를 다시 사용하면서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증진이라는 정책적 목적을 함께 제시했다.[주3] 새로운 식생을 채워 넣는 방식보다 이미 형성된 생태적 천이를 관찰하고, 필요한 부분에 개입하며, 기존의 토양과 식물·재료를 유지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국립수목원은 이 공간을 향후 다양한 모델정원 연구에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주3]
3개월 반 동안 연구·디자인·시공을 함께 진행하다
사업 과정에도 특수한 조건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 조경 디자인 용역보다 연구·실증 과제의 성격으로 추진됐으며 약 3개월 반 동안 연구, 디자인, 시공을 함께 진행했다.[주4]
산림청 생활정원 조성사업의 실외정원 면적 요건 때문에 2,000㎡ 이상의 야외 방사장을 다뤄야 했고, 실제 과업에는 곰과 사육사가 사용했던 실내 통로와 사육공간까지 포함됐다.[주4]
조경하다열음은 조경 디자인과 전시 기획을 맡았다. 경관조명은 와이엠, 조경시공은 공간시공 에이원이 담당했다.[주1] 조경하다열음(공동대표: 조민영·윤호준)은 2018년 설립된 조경 전문기업으로 조경공사와 조경계획·디자인·연구용역 등을 수행한다.[주7]
폐시설의 기억과 생태적 회복을 함께 남기다
국립수목원은 산림동물원을 폐쇄하던 2017년부터 부지 활용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주8] 약 8년 뒤 곰 사육장의 일부가 정원으로 다시 공개됐다. 현재 공간에서는 과거의 콘크리트 벽과 해자, 철문을 볼 수 있고 그 주변과 틈으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철거 과정에서 나온 콘크리트와 현장의 돌, 흙도 정원 안에 남아 있다.
방문자는 한 장소에서 세 개의 시간을 동시에 보게 된다.
곰이 살았던 사육장의 시간, 폐쇄 뒤 사람이 관리하지 않는 동안 자연이 들어온 시간, 정원으로 다시 사용되기 시작한 현재의 시간이다.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은 이 세 시간 가운데 하나를 지우지 않고 함께 남겼다. 곰이 떠난 공간에 숲의 구성원들이 다시 자리 잡는 과정을 앞으로도 계속 관찰하도록 만든 것이 이 프로젝트의 공간적 특징이다.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
202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원장상
구분: 공공공간 및 건축
대상지: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 구 산림동물원 곰 사육사
사업주체: 국립수목원
디자인: 조경하다열음(공동대표: 조민영·윤호준)
공식 채널: https://www.instagram.com/jogyeonghada/
조경·전시 기획: 조경하다열음
경관조명: 와이엠
조경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규모: 2,710㎡
완공: 2025년 10월[주1]
주
[주1] 조혜령,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 『환경과조경』 454호, 2026년 2월. 프로젝트 기획의도, 기존 식생과 사육장 흔적, 조경·전시 기획과 참여업체, 규모 2,710㎡, 2025년 10월 완공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조경하다열음이 직접 작성한 프로젝트 소개다.
[주2]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공디자인 종합정보시스템, 「202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수상작 선정 결과」, 2026.8.19. 공진원 원장상 수상작으로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 수상기관으로 국립수목원과 조경하다열음을 명시한다.
[주3] 국립수목원, 「곰이 떠난자리, 숲의 정원이 되다」, 2025.9.22. 광복 80주년 기념 및 산림청 생활정원 조성사업,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증진, ‘숲의 주인’이 돌아오는 서사, 갤러리정원·회복정원·숲정원 구성, 자생식물·돌·나무·철거 콘크리트 재활용, 모델정원 연구 방향 등을 확인했다.
[주4] e-환경과조경, 「한국조경가협회 작품상, 네 개의 현장이 묻는 ‘지금 여기의 조경’」, 2025.12. 윤호준 조경하다열음 공동대표의 발표를 통해 연구·실증 과제의 성격, 약 3개월 반의 사업기간, 콘크리트와 현장 흙·돌의 재활용, 실내 사육장 디자인, 식물주권 전시, 시간에 따른 공간 변화에 관한 디자인 의도를 확인했다.
[주5] 연합뉴스, 「中 주석이 선물한 호랑이 키우던 국립동물원 역사 속으로」, 2017.2.24. 산림동물원의 1991년 개장, 운영 목적과 동물 현황, 2017년 폐쇄 배경 등을 확인했다.
[주6] 국립수목원, 「특별해설 시범운영 안내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 2025.10.15. 자연의 회복과 숲의 생태, 생명의 순환을 주제로 90분짜리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주7] NICE평가정보·사람인 기업정보, 「조경하다열음」. 2018년 설립, 공동대표 조민영·윤호준, 조경공사와 조경계획·디자인·연구용역 등을 사업으로 확인했다.
[주8] 뉴시스, 「국립수목원 내 ‘산림동물원’ 16년 만에 폐쇄」, 2017.2.24. 국립수목원이 산림동물원 폐쇄 당시 부지 활용계획 마련을 위한 TF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내용을 확인했다.
국립수목원 공식 보도자료, 조경하다열음의 『환경과조경』 프로젝트 기고, 윤호준 공동대표의 한국조경가협회 작품 발표가 현재 공개된 자료 가운데 프로젝트의 기획과 디자인 과정을 가장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 사진 출처 : 환경과 조경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