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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신한복의 멋에 빠진 세계인들 - 윤대영

2014년에 상영된 한국영화 상의원(尙衣院,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고 보물을 관리하던 기관)은 전통 방식을 지키려는 상의원 수장 조돌석과 파격적인 패션 트렌드를 시도하는 천재 장인 이공진의 대결을 한복의 맵시만큼이나 화려하게 그려낸 퓨전 사극이다. 조선 왕비의 가례복이 마치 현재 어느 박물관에 실제 보관돼 있는 듯 천천히 줌아웃하는 마지막 장면이 무척 인상 깊어 찾아본 결과, 모두 픽션이었다.

 

영화제작을 위해 조선 왕의 면복·사냥복·가례복과 대신들의 관복은 물론 왕비와 후궁·기생들의 옷까지 1000여 벌의 한복을 제작하는데 10억 원이 넘는 예산과 50여 명의 전문가를 6개월 동안 투입했다고 하니 찬란한 색감의 한복과 액세서리를 통해 무엇보다 눈이 호사를 누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조선시대 복식의 아름다움을 되살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단하주단의 신한복, 당초문 패턴 원피스.

사진제공=단하주단

 

 

한복의 선과 색은 종주국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우아하다. 한복이 중국과 일본의 전통의상과는 다른 맵시를 보여주는 이유는 뭘까. 숙명여대 채금석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복의 재단과 제조방식에 비밀이 있다고 한다. 한복의 고유한 평면 재단 방식은 완전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원단으로 인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곡선의 우아함을 만들어낸다. 바지의 작은 사폭을 큰 사폭에 이어붙일 때 180도로 비틀어 비대칭의 구조를 만들어 활동할 때 충분한 여유가 생기는 것도 직선만으로 곡선의 아름다움을 일구어내는 비밀이다.

 

옷장 깊숙이 보관하다가 몇 번 입지도 못한 채 사장되고 마는 한복이 아까워 신한복 업사이클 기업을 만든 단하주단의 김단하 대표는 이런 한복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직접 한복을 만들어 입고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전통을 지켜나간다는 것 이상으로 젊은이들의 트렌드에도 민감하여 가상세계에서 한복을 만들어 입는 제페토 크리에이터 시장에서 매출의 절반을 벌어들인다, 인기 게임 트라하에 한복 의상 코스튬을 디자인하고, 메타버스와 NFT(Non Fungible Token)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태평성대 목판깃 저고리.

사진제공= 단하주단

 

 

블랙핑크가 입은 저고리와 두루마기 디자인에 조선 무사들의 철릭 맵시를 가미한 사례에서 보듯이 한복 모티브를 차용할 때도 현대에 걸맞는 젠더 뉴트럴 패션을 선도하고 있다. 웨딩드레스 업사이클 디자인은 패션의 지속가능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주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평균 20만 쌍 정도가 결혼하는데, 유통과정에서 매년 약 170만 벌의 웨딩드레스가 버려진다. 온라인 시장이 늘어나고 대기업의 SPA 저가제품 출시 등 급격한 패스트 패션화 때문이다. 일반 옷보다 네 배에서 열 배 정도 원단이 더 들어가는 특성 때문에 값 비싼 실크보다 합성섬유를 쓰게 되고 결국 자연분해가 되지 않아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조선시대 무관의 공복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신한복, 비침이 있는 검정 철릭.

사진제공= 단하주단

 

 

웨딩드레스 업사이클은 복잡한 해체 공정을 거쳐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어려운 과정이다. 단하주단은 조선 왕의 곤룡포 제작기법을 재현하여 평면 재단하고 현대 감각의 웨딩드레스로 만들어냈다. 폐드레스의 비즈와 레이스를 떼어내고 손질해야 하는 원가부담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폐플라스틱 원사 원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갑자기 한복이 등장하여 중국의 한복공정 논란이 일었다. 중국으로서는 55개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을 세계에 홍보하는 기회였지만, 한국인들은 마치 중국의 속국으로 취급당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흥분한 대중을 이용해 표를 얻으려는 대선 후보들이야 그렇다 치고 연예인들과 문화계 관계자들도 앞다투어 나서는 바람에 한중 갈등의 골이 깊다.

 

상의원 주인공으로 촬영 때마다 원 없이 한복을 입었다는 영화배우 박신혜는 베이징올림픽 폐막을 기념(?)하는 뜻인지는 몰라도 곱디고운 한복을 다시 차려입고 인스타그램에 나타났다. 우리 한복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입으면 여전히 또 좋다.


 

2022. 3. 4

글 : 윤대영 서울디자인재단 수석전문위원

중국디자인정책 박사. 한국디자인진흥원 국제협력업무, 서울디자인재단 시민서비스디자인 개발 등 공공디자인프로젝트 수행,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본부장, 서울새활용플라자 센터장, 독일 iF선정 심사위원 역임. '쓰레기는 없다'(2021. 지식과감성)의 저자

출처 : 한국섬유신문 https://www.k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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