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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텃밭에서 회복이 시작된다 - 윤대영

1995년부터 본격 실시된 쓰레기 종량제는 우리나라 자원순환 정책에 대전환을 이룬 제도였다. 제도 시행 이후 쓰레기는 줄어들었을까.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소각이나 매립보다 재활용 비율은 현저하게 높아졌다. 그런데 전체 쓰레기 배출량은 왜 계속 늘어나기만 할까.

 

요즘 우리는 필요한 물건을 언제든지 값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배송차가 쉬지 않고 거리를 내달린다. 필요하지 않아도 필요를 창출하고, 싸게 산 물건이니 쉽게 버리는 것도 미덕이다. 대량생산과 폐기를 반복하는 사회 경제체제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한 늘어나는 쓰레기를 줄이기는 어렵다.

 

의생활에서 쓰레기 감축은 식생활과 주생활에 비해 비교적 쉽다. 햇빛을 쏘이고 환기를 시켜 세탁 주기를 길게 한다든가 패션에 덜 민감한 스타일의 옷을 고른다면 버려지는 옷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재사용 나눔장터를 이용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의외로 괜찮은 옷을 구할 때가 있다.

 

 

식생활에서 쓰레기 감축은 의생활보다 좀 어렵다. 식자재 보관이 까다롭고 만들어진 음식의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스티브 에반스(Steve EVANS)교수 연구진이 2018년 9월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 감자 생산량의 3분의 1이 유통과정에서 썩어서 버려진다.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농산물은 생산 즉시 가공하지 않으면 썩는 것이 당연하다.

 

 

대부분 아파트나 연립주택 단지 안 녹지에 보기 좋은 '조경'은 있어도 삶을 풍요롭게 할 '텃밭'은 없다. 사진=윤대영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매일 먹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게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가공되거나 진공 포장된 식자재에 의존한다. 주민들이 분리배출한 쓰레기를 살펴보면, 음식 포장폐기물이 대부분이다. 1회용 플라스틱 그릇, 유리병과 캔, 비닐, 스티로폼, 골판지 종이박스 등 비슷한 쓰레기들이 거의 일정한 양으로 나온다. 더구나 1인 가구를 겨냥한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생활쓰레기 양도 계속 늘어만 간다. 냉장고에 보관했던 식자재와 음식이 상해서 버릴 때마다, 이런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만일 집과 가까운 텃밭에서 그날 필요한 만큼의 식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상추, 고추, 가지, 파, 깻잎과 토마토가 신토불이로 싱싱하게 식탁에 오를 수 있다. 다행스럽게 서울시에도 도시 텃밭이 2011년 29ha에서 2018년 198ha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도시농부들은 4만 5000명에서 63만 3000명으로 늘어났다. 플라스틱 쓰레기도 줄이고 싱싱한 음식으로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뜻이다.

 

지난 3년 동안 COVID-19는 우리의 주생활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했다. 공포의 감염병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미뤘던 집 정리와 청소를 하고, 주택구조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왔다. 가까운 곳을 산책하다 보니 공동주택 단지 안 녹지가 도시 열섬현상을 줄여주고, 멀리 가지 않아도 자연을 만날 수 있음을 알았다.

 

 

건축법상 공동주택 단지에는 일정 규모의 녹지를 갖추게 돼 있다. 하지만 그동안 녹지는 잔디와 꽃, 조경수로 꾸며놓은 인위적 조경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조경 관리 규정에 따르다 보니 시민들의 커뮤니티가 될 텃밭은 단지 안에 감히 조성할 수 없었다.

 

 

용인시 K아파트 단지 옆 야산에 시민들이 조성한 텃밭모습. 싱싱한 채소를 서로 나누며 가까운 이웃이 된다. 사진=윤대영

 

지난 수십년 동안 아파트 거주자들 중심으로 법적 조경 면적에 텃밭을 포함해 달라는 요구가 꾸준했다. 쓰레기를 양산하는 도시의 식생활이 주생활과 서로 긴밀하게 연관돼 있음을 시민들은 살면서 깨달은 것이다. 결국 2018년 관련 건축법 조항이 개정되고 뒤이은 지자체별 조례 개정으로 아파트 단지 안에 텃밭을 만들 근거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공동주택이 63.5%였고 그중 아파트 비율은 무려 81%를 넘었다. 한국 경제 성장은 곧 아파트 확장과 동의어다. 지금과 같은 주거 환경에서 그나마 쓰레기를 줄이는 길은 자투리땅을 찾아내 시민들에게 텃밭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괴테는 ‘자연과 가까울수록 병은 멀어지고, 자연과 멀수록 병은 가까워진다’고 했다. 코로나와 쓰레기에 덜미를 잡힌 현대 도시인들의 삶을 예견한 듯하다.

 

Tag #윤대영 #지구 #기후 #환경 #지속가능

 

글 : 윤대영 서울디자인재단 수석전문위원

중국디자인정책 박사. 한국디자인진흥원 국제협력업무, 서울디자인재단 시민서비스디자인 개발 등 공공디자인프로젝트 수행,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본부장, 서울새활용플라자 센터장, 독일 iF선정 심사위원 역임. '쓰레기는 없다'(2021. 지식과감성)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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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섬유신문(k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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