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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춘 (1940 ~ )

매년 국내외에서 수많은 디자인 공모전이 열리는 요즘,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는 디자이너들에게 여러 공모전 중의 하나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1966년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약칭, 상공미전)라는 이름으로 제1회 전람회가 개최된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디자인계에서 이 전람회의 위상과 역할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특히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등용문과도 같았다.

 

실기실에서 수업 중인 양승춘 교수(1979)

*사진출처: ‘한국디자인의 새벽’ 전시회

 

정부 주최 공모전인 상공미전에서는 1969년에 ‘3회 특선에 의한 추천작가와 대통령상 수상자’를 국가가 정한 공식적인 디자이너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 규정에 따라 그 해 처음으로 양승춘을 비롯해 강찬균, 권명광, 김영기, 김효 등이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공식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들 공모전 입상자 외에 초창기 상공미전의 조직과 심사에 참여했던 한홍택, 김교만, 조영제, 염인택, 조병덕, 이명구, 김수석, 봉상균, 김명호, 김홍련 등도 함께 공식 디자이너에 선정되었다. 정시화는 이 자격 제도의 도입에 주목하여 1969년을 우리나라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사회제도적인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화된 시점이라 평가하였다. 아무리 권위 있는 행사라 해도 전람회 참여 및 수상 여부로 디자이너에게 공식적인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매년 디자인 전공자들이 배출되기는 하지만 산업적 기반이 열악하여 그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극히 적었던 1960년대 중반의 우리나라  디자인계 상황을 고려해 보면,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한다.

 

제13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 출품 포스터(1978)

*사진출처: <그래픽 디자인 양승춘> 작품집

 


(왼쪽부터) 서울미대 응용미술과 졸업미전 작품(1964) / 제1회 상공인의 날 포스터 공모전 당선작(1964) / 제1회 청소년선도의 달 포스터 공모전 당선작(1965)
*사진출처: <그래픽 디자인 양승춘> 작품집)

 

양승춘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64년에 제1회 상공인의 날 공모에 당선되었고, 1965년에는 제1회 전국 쇼윈도 콘테스트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제1회 청소년 선도의 달 포스터에도 당선되었다. 대학 졸업 후 OB맥주에서 새내기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1966년에는 직장동료이자 대학동기생이었던 이태영과 함께 조선일보광고대상에도 출품하여 대상인 조일광고상을 수상하였다. ‘계절을 마시자! OB맥주 - 맛과 멋의 OB맥주는 계절이 바뀌어도 그 특유한 향취와 정서로서 언제나 당신의 다정한 벗이 되어드리며 가슴에 포근히 스며듭니다.’라는 카피에, 사진가 김한용이 촬영한 사진이 사용된 이 광고는 OB맥주의 병뚜껑을 잘 활용한 시각적 콘셉트로 크리에이티브 면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승춘이 OB맥주에서 근무한 기간은 1965년부터 1968년까지로 3년 여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동안 얻은 현장 실무 경험은 이후 디자이너로서나 디자인 교육자로서 그의 활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1966년 조선일보광고대상 조일광고상 수상작

*사진출처: 조선일보광고대상 30년 수상작품집

 

OB맥주에 근무하던 시절, 양승춘은 후에 만보사와의 합병을 거쳐 종합광고대행사 오리콤으로 성장하게 된 합동통신광고기획실에 파견을 나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한국 진출을 앞두고 있던 코카콜라 CI 매뉴얼을 보게 되었다. 양승춘은 이때 받은 시각적 충격이 엄청났다고 회고하며,,자신이 CI라고 하는 새로운 디자인 장르에 눈뜨게 된 것은 바로 이 경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1968년 코카콜라의 국내 시판은 음료시장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CI와 광고 시장의 성장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코카콜라 광고는 처음에는 현대기획이 진행하다가 1969년 1월 두산그룹과 동아일보의 합작으로 만보사가 창립되면서 이후 만보사가 맡게 되었다. 당시 코카콜라 CI 매뉴얼을 꼼꼼하게 살펴본 양승춘과 이태영은 OB맥주에도 CI를 도입하고자 회사 중역들을 설득했으나 바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후에 OB맥주를 퇴사하고 서울미대 응용미술과에 재직하던 시기에 양승춘은 동료교수인 민철홍, 조영제와 함께 OB맥주 레이블 리뉴얼 작업(1972)을 진행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OB맥주 CI 개발(1974) 및 리뉴얼(1985)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1970년대 후반까지 양승춘은 주로 대학 선배이자 동료 교수인 조영제나 김교만과 함께 작업을 했다. OB맥주 외에 이 시기에 그가 참여했던 CI 프로젝트로는 제일제당, 제일모직, 제일합섬, 신세계백화점, 한국주택공사, 한일은행, 동방생명,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있다. 양승춘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심볼마크 및 로고타입 디자인 등 실제적인 디자인 작업 전반을 직접 담당했다.

 


조영제디자인연구실(CDR)과 함께 진행한 신세계백화점 CI 매뉴얼 표지와 내지 일부 (1975)
*사진출처: ‘한국디자인의 새벽’ 전시회

 


조영제디자인연구실(CDR)과 함께 진행한 제일모직 CI 매뉴얼 표지와 내지 일부 (1975)

*사진출처: ‘한국디자인의 새벽’ 전시회

 

1977년 삼성물산 버킹검 BI와 진로 길벗위스키 BI 개발을 시작으로 양승춘은 아트 디렉터로서 독자적인 CI와 BI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가 주도한 주요 작업은 다음과 같다: 카톨릭중앙의료원 CI(1980), 성모병원 CI(1980),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CI(1982), 한샘 CI (1984), 체신부 우정 100주년 VI 개발(1984), 동양맥주 마주앙 BI(1984), 금복주 CI 및 BI (1984), 동양맥주 CI 리뉴얼(1984), 한양투자금융 CI(1987), 동양맥주 OB라이트 BI(1987), (주)삼양사 CI(1988), 오리엔트시계 CI(1989), 백화 CI(1989), 두산곡산 CI 및 두산사료 BI(1990) , 종가집 BI(1990), 서울방송 CI(1991), 대림혼다 CI(1991), 보훈병원 및 한국보훈복지공단 CI (1991), 동양맥주 마주앙 메도크 및 라인 BI(1993), 종가집 BI(1993), 백화 BI(1993), 경월 그린소주 BI(1993), 동양투자신탁 CI(1994), 카톨릭대학교 CI(1995), 한샘인테리어 BI(1996), 성모병원 CI 리뉴얼(1996), 서울장애인복지관 CI 리뉴얼(1999) 등.

 

양승춘은 서울미대 응용미술과 교수로 부임한 후에도 첫 직장이었던 OB맥주와의 인연을 작업을 통해 계속 이어나갔고, 다른 회사의 주류 디자인과 관련한 BI와 패키지 디자인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에도 관심을 두어 CI와 BI 개발 시 한글 로고타입과 전용서체 개발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주요 심볼마크와 로고타입

*사진출처: <그래픽 디자인 양승춘> 작품집

 


(왼쪽부터) OB맥주의 마주앙 BI / (주)백화의 수복, 국향, 청하, 청하화인, 설화, 백화24 BI 

*사진출처: <그래픽 디자인 양승춘> 작품집

 

대학 재학 중 친구들과 ‘메디치가’라는 이름의 작업실을 운영하기도 했던 양승춘은 대학 졸업 후 이태영, 정시화, 배천범 등 졸업동기생들과 함께 ‘프리즘’이라는 디자인 그룹을 만들고 1966년 11월 중앙공보관에서 제1회 프리즘 그래픽 디자인전을 열었다. 회원 일곱 명으로 출발했던 프리즘은 제4회 전시회를 끝으로 해산할 무렵에는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제품 디자인과 공예로까지 분야가 확장되어 회원 수가 수십 명에 달했다. 1971년 해산한 프리즘은 1972년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KSGD, 후에 KSVD로 명칭 변경) 창립의 모태가 되었다. 비록 프리즘의 활동은 4년여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지속되었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디자인 그룹을 결성하고 자유롭고 실험적인 디자인 작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활동과 더불어 양승춘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실크스크린, 사진, 영상, 컴퓨터 등 그래픽 디자인과 관련한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이를 자신의 작업이나 대학 디자인교육 커리큘럼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왼쪽부터) 제3회 프리즘 그래픽 디자인전 도록 표지(1969) - 좌측 세 번째 인물이 양승춘이다. / 제1회 KSGD 창립전 리플렛 표지와 내지. 둘째 줄 우측 인물이 양승춘이다.
*사진출처: ‘한국디자인의 새벽’ 전시회

 


제2회 프리즘 그래픽 디자인전 출품 포스터(1968) 

*사진출처: ‘한국디자인의 새벽’ 전시회

 


(왼쪽, 중앙) 제1회 KSGD 전시회 출품 포스터(1972) / (오른쪽) 제4회 KSGD 전시회 출품 포스터(1974)

*사진출처: ‘한국디자인의 새벽’ 전시회

 

제1회 프리즘디자인전에서 양승춘은 삼태극과 겹쳐진 부채 모양을 시각적 모티프로 삼아  ‘관광의 해’ 포스터를 선보였는데, 후에 그의 88서울올림픽 엠블렘 당선작 역시 삼태극 문양을 모티프로 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반공모 형식으로 진행된 88서울올림픽 엠블렘 1차 공모에는 수천 점의 작품이 접수되었으나 당선작이 없어, 2차 공모는 추천된 열 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지명공모로 진행되었다. 공모전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작업이 잘 진행되지 않아 밤새 고민하던 양승춘은 우연히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쏟아진 물이 휘휘 돌아 감기며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시각적 영감을 얻어 삼태극에 착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삼태극 모양의 엠블렘은 ‘동서의 화합’과 ‘세계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세계로’라는 뜻을 담아 88서울올림픽의 공식 상징이 되었다.

 


(왼쪽) 제1회 프리즘디자인전 출품 포스터(1966) / (오른쪽) 88서울올림픽 공식 엠블렘 포스터(1987)

*사진출처: <그래픽 디자인 양승춘> 작품집(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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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현주 

인하대학교 시각정보디자인전공 및 대학원 융합과정 문화경영학과 교수. [디자인사 연구], [한국디자인사 수첩: 한국의 폴 랜드, 조영제를 인터뷰하다] 등의 저서와 [김교만과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 [한홍택 디자인의 특징과 의미: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전사(前史)],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시각디자인교육, 1965-1994: 디자이너-교수 3인의 활동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이 있다.

Tag
#디자인 칼럼 #양승춘 #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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