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이 가장 많이 본 디자인 뉴스
국내 리포트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 아이콘 인쇄 아이콘

민철홍 (1933 ~ )

 

대한민국 공업디자인의 아버지

 

오늘날 자동차, 스마트폰, 냉장고, 가구, 조명, 일상용품 등을 디자인하는 공업디자인(industrial design)은 우리의 생활과 너무나 긴밀하며 기업의 생산 활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였다.

 

공업디자인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발전한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기는 60년대 초반에 공업디자인이 도입되고 소수의 선구적인 디자이너들에 의하여 사회운동의 형식으로 전파되던 시기이다. 2기는 70년대에 공업디자인 교육이 확장되던 시기이며, 3기는 70년대 후반 이후로 기업에 디자이너들이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실무 디자이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90년 이후 외국의 디자인을 모방하던 단계에서 독자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단계를 4기로 볼 수 있다.

 

민철홍은 1기에 해당되는 인물로, 명실상부하게 최초로 공업디자인을 우리나라에 도입하고 발전시킨 대한민국 공업디자인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공업디자이너 민철홍 

 

민철홍은 1933년 일제치하 서울에서 출생하여 엄격한 가정 분위기내에서 성장하였다. 청소년기에 미술에 소질을 보이며 경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였다. 당시만 해도 디자인이란 용어를 외국 잡지 등을 통해 접하던 시기였기에, 대학에서도 소위 현재의 그래픽디자인, 공예 등을 주로 접하며 학창시절을 지냈다.

 

‘아악기상감과반’ – 제8회 국전 공예부문 문교부장관상 및 특선 수상작, 1959

 

(좌) 일리노이 공과대학 유학 시절 – 크라운홀 앞에서, 1959

(우) 일리노이 공과대학 재학 당시, 1958~1959

 

그중에서도 민철홍은 공업디자인에 흥미를 가져 졸업 후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유학을 떠나 일리노이 공과대학(IIT)에서 본격적으로 공업디자인을 공부하게 된다. 귀국 후에는 한국공예시범소 와 서울대학교에 재직하며 KSID(Korea Society of Industrial Design)을 결성, 공업디자인을 사회와 산업계에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당시 KSID의 회원들은 디자인의 수요가 전혀 없었기에 자비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통하여 공업디자인을 전파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어떤 회원은 전세방을 월세방으로 옮겨가며 작업을 했었다는 후일담도 전해지듯이, 당시의 그들은 공업디자인의 전파를 일종의 종교적 신념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좌) 머리맡 조명등 - KSID 창립전 전시작, 1972

(우) 스프링쿨러 – KSID 창립전 전시작, 1972 

 

이후 공업디자인이 서서히 사회에 전파됨에 따라 민철홍은 왕성한 창작 활동과 교육 활동에 매진하다가 1988년 정년 퇴임하였고, 2005년에는 대한민국 디자인대상인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제로에서 출발하라

 

민철홍은 가장 중요한 디자인의 목표를 가치의 창조에 둔다. 가치의 창조라는 말은 디자이너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 있으나, 민철홍에게 가치의 창조란 보다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사상을 명확히 이해하려면 가치와 창조를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좋다.

 

우선 그가 생각하는 ‘창조’는 “아무리 아름답다하여도 그것이 기존의 유형을 답습한 것이라면 새로움을 추구한 창조적 행위에 비하면 저 아래에 있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즉 제로에서 부터가 디자인의 핵심이 되어야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변형이 아닌 완전한 새로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그가 이야기하는 ‘가치’는 도구의 근원적 혹은 본질적 가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스태이플러는 종이를 결합하기 위한 것이며, 자동차는 이동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스태이플러를 디자인함에 있어 창조적 가치는 종이를 어떻게 새롭게 편하게 결합하느냐에 집중되어야 하며, 자동차를 디자인함에 있어서는 인간이 얼마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느냐에 집중하여 창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보듯 재미있는 형태를 지닌 가위나 귀여워 보이는 자동차 등과 같이 단순히 이미지의 표현에 머무는 디자인이나, 디자이너 개인의 메시지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매체로 대상을 디자인하는 것에 대하여 그는 극단적인 반대 입장을 가진다. 즉, 민철홍은 디자이너가 인간의 도구 사용에 공헌해야 하며 도구가 디자이너의 유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사상적 견지를 지니고 있다.

 

‘빛의 형상’ 전시, 1994

 

(좌측부터) ‘관(冠)’, 1994 / ‘함(含)’, 1994 / ‘공(拱)’, 1994

 

이러한 민철홍의 사상이 잘 발현된 예로 그가 60세 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졌던 ‘빛의 형상’전을 들 수 있다. 그는 조명을 주로 디자인하여 전시하였는데, 디자인 콘셉트에 관해 그는 조명이라고 하는 대상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광원)을 감싼 소재와 주조와 형상과 표면처리로 전혀 보지 못했던 빛의 형상을 보는 사람이 새롭게 발견하고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라고 하였다. 이는 조명이라는 물질적 대상을 넘어 빛을 발하는 사물로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또한 디자인이란 새로워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잘 반영한 사례이다.

 

민철홍이 중시하는 또 하나는 태도이다. 그는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절실, 성실, 진실, 확실, 충실의 5실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나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의 자세와 태도로, 이것이야말로 좋은 디자인을 낳는다는 확신을 그는 지니고 있다. 민철홍은  디자인을 할 때 적당히 하는 법이 없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는 열정과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작품 세계

 

담뱃갑 디자인, 1961-1973

 

민철홍의 주요 작업들은 현재 우리가 접하는 자동차, 가전 등을 넘어 흥미롭고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국장 및 훈장을 비롯하여 담뱃갑, 전화기, 홍보관, TV, 굴삭기, 조형물 등 그 폭이 넓다. 이처럼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된 배경으로 디자인의 발아기에 공업디자인과 시각디자인 등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점, 공업디자인을 하고 싶어도 국내에 제조업체가 디자인을 도입하지 않아 일거리가 없었던 점, 또한 다양한 영역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을 들 수 있다.

 

체신 1호 전화기 디자인, 1963

 

대한민국 국장 디자인, 1967

 

대한민국 훈장 디자인, 1973

 

대한주택공사 CIP, 1978

 

국제무역박람회(SITRA) 선경관, 1982

 

독립기념관 CIP 및 옥외시설물 디자인, 1985

 

‘영광의 벽’ - 서울올림픽대회 기록조형물, 1989

 

그의 작업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으나 그의 작품은 작업 초기부터 후기까지 그리고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간에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우선 시각적으로 화려하거나 현란하지 않다. 그의 작품에는 어떤 시각적 충격을 주기 위한 장치도 없으며 유머도 없고 시적 감성도 넘치지 않는다. 60여년에 걸친 그의 작업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진실성이다. 그가 말한 대로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도구와  사물이 가져야하는 가치를 새롭게 하려는 흔적이 곧 민철홍의 작품이다. 그의 디자인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영속성을 가지며 특이하지는 않으나 무리없는 친화성을 지닌다.

 

민철홍의 일생은 그야말로 국내에 공업디자인을 도입하고 전파하며 발전시키며 공업디자인과 같이한 삶이었다. 그는 80이 넘은 지금도 간간이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공업디자인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자세를 역설하는 등 아직도 공업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윤리적 태도와 성실한 자세를 가진 합리적 디자이너였으며 또한 한국 공업디자인의 시작이었다.

 

삼성전자 흑백 텔레비전 ‘마하 505’, 1972

 

 

민성전자 휴대용 및 탁상용 전자계산기, 1973

 

대우중공업 산업용 로봇 NOVA-10, 1983

 

---

글: 박영목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대우전자 상품디자인본부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품 및 공업디자인을 거쳐 사용자 인터페이스 영역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첨단 정보기술 분야의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과 함께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현대 디자인에 적용 가능한 요소나 사상을 찾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 사진출처 : 박영목, <한국디자인의 새벽: 민철홍>, 2013년, 서울대학교 조형연구소

Tag
#민철홍 #박영목 #디자인 칼럼
"민철홍 (1933 ~ )"의 경우,
공공누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사진, 이미지, 일러스트, 동영상 등의 일부 자료는
발행기관이 저작권 전부를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목록 버튼 이전 버튼 다음 버튼
최초 3개의 게시물은 임시로 내용 조회가 가능하며, 이후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임시조회 게시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