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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순 (1929 ~ )

01. 박대순

 

한국의 디자인 교육 역사를 돌아볼 때 박대순은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1955년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교사로서 디자인교육에 첫 발을 내딛은 뒤 1994년 한양대 교수로 정년을 마치기까지, 박대순은 40년의 오랜 시간을 오로지 교육현장에 몸담으며 한국 디자인의 교육체계와 방법론을 정립하고 수많은 디자인 후학을 양성하며 오늘날 한국 디자인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950년대 응용미술교육을 받았던 학생이었던 그는 1960년대 디자인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한 교육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또 1970년대에는 산재된 디자인 역량을 결집해 디자인의 저변확대와 위상 강화를 모색하였으며, 동시에 학회를 설립해 디자인의 학술적 체계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대학에 디자인 박사 과정을 개설하며, 현업을 넘어 학문, 연구로서의 디자인 실천을 교육 제도에 안착시켰다. 그러한 의미에서 박대순의 활동을 되짚는 것은 그 의미가 깊다.

 


2. ‘출정’ 모자이크 디자인, 1954

3. 태피스트리 디자인, 1955

 

5. 가리개, 1962

 

6. 과반, 1961

7. 과반, 1961

 

한국에서 디자인 교육은 대학에서의 응용미술교육과 고교에서의 실무적 미술교육이라는 두 축에서 이루어졌다. 일반 고교의 미술 교육은 미술일반에서 응용미술로, 상업계 고교에서는 미술교과에서 기업의 홍보, 마케팅 등 판매 측면에서의 상업미술로 전개되었고, 공업계 고교에서는 세분화된 학과를 중심으로 설계, 제조, 생산을 아우르는 공업디자인 개념으로 나아갔다. 박대순은 경기공업고등학교의 공예과 교사로서 장식용 공예소품에서 가구공예품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에 실용적, 미적 디자인의 접목을 도모하였고, 더 나아가 기계, 건축, 토목 등 타 분야 학과에도 디자인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1957년 한국공예시범소에서의 활동은 그가 향후 교육자로서 자신의 디자인 교육이념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8.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 

 


9. 1957년 경기공업고등학교 실습장 완공 기념식 영상 자료

 

1963년 경기공업고등학교가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의 전신)로 개편됨에 따라 박대순은 자신이 꿈꾸던 디자인 교육을 실천할 기회를 맞게 된다.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국가 산업·기술 인재의 조기배출을 목적으로 고교 과정과 대학 과정을 하나로 잇는 원스톱 5년제 국립학교였다. 디자인 교육에 필요한 설비나 제반 환경들은 이미 수년에 걸친 그의 노력으로 충분히 갖춰져 있었고, 5년이라는 긴 교육기간은 그의 교육 이념을 충분히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학과 명칭은 그대로 공예과였지만 전공을 상업의장, 공업의장, 공예의장의 세 개 분야로 개편하며 전형적인 산업디자인 체계를 도입하였다. 이는 미술계 대학들이 주도해 오던 응용미술로서의 디자인 교육에 산업·경제적 가치창출을 더한 산업디자인 교육으로 차별화를 시도한 것으로, 향후 한국 디자인 교육 방향에 있어 전환점이 되었다.

 


10-11. 교과서 저술 작업, 1968

 

박대순은 ‘디자이너는 작품(디자인)을 통해 말하고 디자인의 문제해결능력은 많은 작품 경험으로 얻어진다.’는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기초 과정은 조형 훈련과 실습, 중급 과정은 디자인 스킬 강화에 주안을 두었고, 고급 과정에서 세부 전공을 선택하여 분야별 디자인 감각을 다듬고 사고를 확장하여 전문디자이너로서 진로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하였고, 졸업 요건으로 상공미전 출품 의무화, 산업체 현장실습, 졸업논문을 두었다. 이러한 교육 과정을 바탕으로 그는 도제식 교육을 벗어나 학생 스스로 디자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주제를 선정하여 그에 따른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자율 디자인 학습 시스템 형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산업화 시대의 도래에 대비한 현대적 디자인교육 모형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12. ‘호프(Hope)’ 자동차 디자인, 1966
- 제 1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 공업미술부문 출품작. 디자인 콘셉트, 도면 형식, 렌더링, 석고 모형을 포함한 디자인 작품 형식을 제시한 작품이다.

 

한편 박대순은 디자인계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상공부에 산업디자인을 위한 국가적 행사 개최를 제안하였다. 미술 분야의 ‘국전’에 상응하는 산업미술전람회를 개최하여 범국가적 디자인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었다. 상공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1966년에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가 탄생하였고, 상업미술, 공업미술, 공예미술의 3개 분야로 출발하였으며 11년이 지난 1977년에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로 개칭되었다. ‘미전’이라는 명칭이 ‘디자인전’으로 바뀌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린데에는 주류 제도권 미술대학의 입김이 컸었다고 박대순은 회고한다.

 


13. 전자시계 겸 액정온도계 디자인, 1976

- 제 11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 공업미술부문 출품작. 공예성이 가미된 작품으로 작동가능한 모델이었다.

14. 전자시계 겸 램프 디자인, 1980

- 제 15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 제품디자인부문 출품작. 양산이 가능한 수준의 워킹 모델이었다.

 


15. 가스경보기 디자인, 1986

- 제 21회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제품디자인 부문 출품작. 전자산업이 기반이 된 당대 시대 상황과 양산 가능성을 염두에 둔 작동가능 모델이다.

 

1968년 박대순은 한양대학교 응용미술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디자인교육을 시작한다. 그러나 출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응용미술과가 사범계 분류 아래 있었기에 디자이너 양성보다 중등미술교사 양성의 목적이 컸기에, 충분한 교과 개설은 물론 전문 교수 인력도 부족했다. 이에 박대순은 5년제 전문학교 출신 학생들을 대학에 적극적으로 합류시키는 파격적인 융합을 택했다. 그 결과 같은 세대 학생들이 어울리며 디자인 중심의 교과 운영이 자연스레 이루어졌고, 또한, 교수에게 의존하는 도제적 교육에서 탈피한 진취적 디자인 교육 풍토가 조성되었다.

 

 


16-17. 한국디자이너협의회(KDC) 창립 총회, 1972

 

그리고 1972년 박대순은 한국디자이너협의회(KDC)를 결성하였다. 한국 디자인 역량의 결집을 위해 전국의 학계, 산업계를 총망라하는 디자이너 단체 결성을 제안한 것이다. KDC이외에도  당시 한국인더스트리얼디자인협회(KSID),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 등 총 3개 단체가 창립한 해이기도 했다. 단체 명칭에서 미루어 볼 수 있듯 디자인 분과에 따른 분화가 이뤄졌고, 디자이너들 스스로 조직적 활동을 전개한 원년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해였다. 당시 KDC는 ‘오합지졸들의 모임’으로 폄하되기도 하였지만, 전국적인 디자이너 조직으로 3개 분과 200여 회원의 통합 디자인단체로 설립되었고 동시에 전국대학생디자인공모전을 개최하며 공모전을 디자인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한편 1992년 KDC 산하의 공업디자이너협회(INDDA), 한국인더스트리얼디자인협회(KSID), 한국산업디자인전문회사협회(KIDCA) 등 산업디자인 관련 단체 세 곳이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KAID)로 통합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단체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18-20. 한국디자인학회 학회지

 

한편 단체, 협회의 역사에서 한국디자인학회의 설립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78년 박대순은 한국디자인학회를 설립하였다. 디자인의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에 관한 지식 체계 정립과 디자인 이론의 확장을 위한 학회 설립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1980년 한국디자인학회의 첫 학회지를 통해 ‘한국수출산업을 위한 산업디자인 개선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고, 1982년에는 ‘80년대 산업디자인의 문제점과 개선에 관한 연구’(한양대학교 사범대학교 논총)를 발표하며 적극적인 연구 활동을 전개했다. 논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박대순의 연구는 산업디자인의 발전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활발한 후속 연구를 기대하였지만, 의외로 주춤했다.

 

이에 좌절하지 않고 박대순은 1985년에 한양대에 디자인 박사 과정을 도입하였다. 디자인에 관한 이론적 접근과 학술적 체계화를 위한 시도였으며, 단순 작품 연구를 넘어 하나의 학문으로서 디자인 연구를 정립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리고 1988년 그 자신이 ‘산업디자인개발을 위한 기호론적 연구’로 한국 최초로 디자인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3년 정년을 맞기까지 박대순은 디자인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였다. 비록 정년퇴임으로 공식적으로 그의 활동은 마감되었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 디자인의 학문적 정립에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오늘날  한국디자인학회는 국제적 디자인학회로 성장하였으며, 또 국내 여러 대학에서도 디자인 박사 과정을 도입하며 디자인의 학문적 지형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21. [디자인 용어사전], 박대순 저, 미진사, 1977

22. [현대 디자인 이론의 사상가들], 가츠미 마사루(勝見 勝)저, 박대순 역, 미진사, 1983

 

23. [장식 스타일], 알렉산더 스펠츠 저, 박대순 편역, 건우사, 1983
24. [현대 디자인 사조], 존 파일 저, 박대순, 이재국 역, 창미, 1985
25. [디자인 방법론], 박대순 공저, 서울산업대학 출판부, 1988

 


26. [현대디자인 용어사전], 박대순 편저, 디자인오피스, 1994

27. [산업디자인 – 프로덕트 디자인 연구], 다이자부로 오키타 저, 박대순 역, 국제, 1995

28. [현대 디자인 이론의 사상가들], 가츠미 마사루 저, 박대순 역, 미진사, 1996

 


29. TV 디자인, 1985

 

30. CD 스테레오 플레이어 디자인,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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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명주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사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대우전자 등 기업의 디자이너로 활동하였다. 현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디자인을 통해 산업·경제적 가치창출을 위한 구체적 방안들을 학회, 협회, 기관, 기업과의 융복합 활동에서 찾아 교육해 왔다. 정년 이후에는 젊은 디자이너로 되돌아가 창조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고자 한다.

Tag
#디자인 칼럼 #박대순 #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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