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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스트 이슈_<타이포그래픽> 66호

콘트라스트 이슈_<타이포그래픽> 66호
   
글  유지원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협회인 ISTD(The International Society of Typographic Designers)는,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는 국제적인 권위를 가진 유일한 협회임을 자처한다. 1928년 ‘대영 타이포그래퍼 조합(British Typographers Guild)’을 전신으로 창설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80여 년 역사를 자랑하며, 그래픽디자이너 및 타이포그래퍼들에게 정보와 영감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협회에서 매년 발행하는 연간 저널이 <타이포그래픽 TypoGraphic>이다. 2009년 저널은 아직 출간 소식이 없고, 지난 이슈들은 ISTD의 웹사이트에 주문해서 구입할 수 있다.

CONTRAST, 66호의 이슈

<타이포그래픽>은 63호 이후로 ‘미완(Unfinished), ‘국가적(National)’, ‘광고(Advertising)’, ‘네덜란드(Dutch)’ 등 특정 이슈를 내세우며 편집 방향을 정해왔다.
 

  
  <타이포그래픽> 66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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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발행된 66호의 이슈는 ‘콘트라스트(Contrast)’이다. 66호의 아트 디렉션을 담당한 피터 도슨(Peter Dawson)의 표지디자인에는 가장 명시도가 높은 배색인 검정색과 노란색이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으며, 이 대비는 저널의 편집디자인 전체를 관통한다. 표지의 노란 사각형 안에는 콘트라스트의 사전적 정의가 담겨있다.

Contrast [n]: a difference which is clearly seen when two things are compared
대비 [명사]: 두 사물을 비교할 때 뚜렷하게 보이는 차이점

잡지의 아트 디렉션에 있어, 이 대비는 그리 첨예한 긴장을 이루고 있지는 않다. 잡지 디자인의 시각적 측면에서는, 검정과 노랑의 대비가 강렬하기보다 안정된 인상을 준다. 사각형만을 단위 요소로 삼으며 에세이마다 똑같은 디자인을 담백하게 반복해서 반영했고, 베르톨드(Berthold)사의 악치덴츠 그로테스크(Akzidenz Grotesk) 단 하나의 타입페이스만을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다소 밋밋한 감은 있지만 전체 구조를 한 눈에 편안하게 파악하고 텍스트에 집중하는데 도움을 준다.

내용면에서는 두 개의 에세이씩 쌍을 지으며, 네 편의 에세이가 두 쌍의 다소 헐거운 콘트라스트를 형성한다. 저명하고 연륜 많은 타이포그래퍼인 세바스찬 카터(Sebastian Carter)와 마이클 하비(Michael Harvey)가 각각 스탠리 모리슨(Stanley Morison)과 잭 스토패처(Jack Stauffacher)의 평소 인간됨을 가까이서 지켜본 기억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이런 타이포그래피의 거장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들을 필자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타이포그래픽>은 여느 디자인 잡지들과 차별화됨을 자부한다. 한편, 러시아 출신 미카일 카라식(Mikhail Karasik)은 20세기 초반 러시아 아방가르드 서적예술을, 중앙 아메리카의 엘 살바도르 출신 프리다 라리오스(Frida Larios)는 고대 마야문자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아카데믹한 관점에서 소개한다. 이들이 오늘날 서구사회에 소개하는 자국 디자인 유산은, 서로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대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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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AST 1 | 잭 스토패처와 스탠리 모리슨

빈티지 자전거를 손에 꼭 쥐고 밝은 톤의 양복을 입은,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할아버지,
검은 뿔테 안경에 팔짱을 끼고 검은 양복을 입은, 까칠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

잭 스토패처와 스탠리 모리슨, 백발 성성한 이 두 노인들의 성격이 대조적으로 드러나는 사진들이 기사의 첫머리에 각각 제시되어 있다. 누군가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들이란 이러이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 단순하게 범주화하여 규정하려 든다면, 그런 시도는 선입견만 조장할 뿐이라고 여겨질 만큼 이 두 사람의 성격에는 공통분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잭 스토패처

카네기와 예일, RISD의 교육자, 인쇄업자, 학자, 작가, 타이포그래퍼, 서적 디자이너,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숙련된 자전거 폴로 선수였던 잭 스토패처는, 1920년 생으로 이제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젊음의 활력과 여유가 넘친다. 필자인 마이클 하비가 잭 스토패처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길은 서정적인 풍경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명랑한 느낌의 스튜디오에서 근무 시간에만 일을 하고, 5시 정각에 문을 잠근 후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책상 위에는 의뢰 받은 프로젝트들이 가득한데도, 언제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반기어 시간을 내주고 왕성한 호기심에 찬 대화를 한다.

 
스탠리 모리슨(왼쪽)

한편, 1889년생으로 1967년에 타계한 스탠리 모리슨은 항상 엄숙하게 검은 양복을 입었고, 단순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었으며, 디자인에 있어서는 악명 높은 순수주의자였다. 그는 오늘날 타이포그래피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한 강력한 권좌에 앉아있던 군주였다. 타임즈 뉴 로만(Times New Roman)으로 유명한 스탠리 모리슨은, 경력의 초창기에는 모노타이프(Monotype)사에서 플랑탱(Plantin), 캐슬론(Caslon), 보도니(Bodoni), 가라몽(Garamond) 등 고전적 타입페이스를 새로 활자화하는 프로덕션에 참여했고, 이후로도 타입페이스 디자인에 관한 한 고전적인 취향을 고수했다. 필자인 세바스찬 카터는 스탠리 모리슨의 오랜 동료였던 존 카터의 조카로, 그 자신 뿐 아니라 스탠리 모리슨과 가까이 지냈던 여러 사람들의 사적인 견해를 들려준다. 종합하면, 스탠리 모리슨은 극단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동석한 사람을 불편하게 할 만큼 단정적인 견해을 고집하지만 자신의 말과 모순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그 주변 사람들 중에는 그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퍽 많다고 한다. 모리슨의 괄목할만한 업적은 후대의 찬탄을 강요하게끔 걸러졌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는 위대한 인간이긴 해도 전능한 신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여러 뒷이야기 중 하나로, 타임즈 뉴 로만은 모리슨이 놀랄 만큼 교묘한 로비를 벌인 결과, 10년 가까이 지나서야 이 신문의 커미션을 따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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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AST 2 | 러시아 아방가르드 서적과 현대화된 마야 문자

 
러시아 아방가르드 서적 예술

20세기 초반 이래로 러시아의 현대 예술가들은 책을 그들의 무대로 삼은 활동을 펼쳐왔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즉 미래주의자, 구성주의자, 절대주의자들에게 있어 서적이란 자체의 가치를 가진 독립 예술의 한 유형이었고, 그들의 서적예술에서는 그래픽적 구성 요소, 일러스트레이션, 인쇄의 품질 등 디자인을 대하는 복합적 접근방식의 차이가 엿보인다. 미카일 카라식은 미래주의, 구성주의, 절대주의 서적 양식의 성격과 상호 영향 관계,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서적디자인에 사용된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 회화, 광고 포스터, 일러스트레이션, 사진이 결합해가는 과정을 역사의 유기적 흐름을 따라 제시한다.

 
픽토그램으로 표현한 마야 상형문자

프리다 라리오스의 에세이로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시간과 공간은 기원전 300년 전 메소-아메리카로 이동한다. 마야의 문자는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아름답고 지적인 표기체계로 꼽힌다. 엘 살바도르 출신 프리다 라리오스는 이미 해독된 마야의 상형문자들 수십 개를 추려, 의미 별로 분류한 후 각각 색상코드를 부여했다. 예컨대 TOK’PAKAL이라는 문자는 ‘전쟁’을 의미하는 상형문자 군으로 분류하여 노란색 색상코드로 표현했다. 그녀는 마야 상형문자들의 자갈 같은 형태와 고유한 의사 전달 방식으로부터 모티프를 취하여 어린이를 비롯한 일반인들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픽토그램들을 컴퓨터 벡터 이미지로 만들었다. 픽토그램이란 주지하다시피 현대적이고 체계화된 상형문자, 즉 그림문자를 뜻한다. 그리고 자신이 개발한 이 픽토그램들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분류된 엘 살바도르의 마야 유적지에 관광 사인시스템으로 적용했다. 그녀는 이 표기 체계에 ‘새로운 마야 상형문자들(New Maya Hieroglyph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현대화된 상형문자들은 마야 유적지를 찾는 오늘의 방문객들에게, 저 먼 옛날 그곳에 살았던 마야인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시의성을 다투는 뉴스를 다루기보다는 연간지답게 주기가 큰 흐름을 포착하며, 엄선된 필자들의 글 몇 개만을 컴팩트하게 담은 이 얇은 중철 노트 형식의 저널 <타이포그래픽>은, 현란한 디자인으로 모종의 심리적 위기감을 조성하는 다른 대다수 디자인 잡지들에 비해 정돈되고 아늑한 독서 환경을 제공한다. 다음 호를 얼른 손에 쥐고, 기분 좋게 읽고 싶도록 만드는 저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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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픽> 통권 66호

목차

03   Introduction
04   Michael Harvey  Meeting Jack Stauffacher
10   Sebastian Carter  Stanley Morison
16   Mikhail Karasik  Russian Avant-garde Books
24   Frida Larios  New Life for Maya Hieroglyphs
30   Notes
31   Contributors / Im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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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ISTD #타이포그래픽 #타이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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