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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예술가, 고든 마타 클락(Gordon Matta-Clark)의 런던 바비칸 전시



2011년 3월 3일 부터 5월 22일까지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서는70년대 뉴욕의 다운타운(Pioneers of the Downtown Scene, New York 1970s)을 표류했던 세명의 천재들(Laurie Anderson, Trisha Brown, Gordon Matta-Clark)의 실험적인 퍼포먼스가 선보이고있다. 필자는 오늘 이 지면을 빌려, 젊은 나이로 요절한 천재 건축가 고든 마타 클락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고든 마타 클락 (Gordon Matta-Clark)

뉴욕의 소호를 예술가들의 공동체로 만든 선구자로, 폐가옥을 반으로 가르거나, 폐공장의 벽체를 기하학적 모양으로 뚫는 등, 상상을 넘어서는 스케일의 작업으로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작가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쌍둥이 형제 바탄(1943∼1976)과 함께 태어났다. 생전의 작가는 가부장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부친의 권고로 코넬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긴 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닮아서’ 예술가로 전업했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로베르토 마타가 아들의 작품에 침을 뱉으며 “네가 예술이 뭔지나 아냐”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1971년 고든 마타는 자신의 성을 마타-클락으로 변경했다.

고든-마타의 예술적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대학 재학 중 파리에 있으면서 겪었던 당시 세계 지성사의 중심이었던 파리에서의 체험과 69년 코넬에서 열렸던 “대지 미술(Earth Art)"전 이었다. 파리 솔로몬 대학에서 1년간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던 도중에 당시 새로운 사조, 특히 기이 드보르(Guy Debord)가 중심이 된 상황주의자들의 공간에 대한 유토피아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에 돌아와 코넬 대학을 졸업할 무렵 대학 뮤지엄(Andrew Dickinson White Art Museum)에 이타카 지역의 현장을 바탕으로 설치를 하던 당시의 일련의 개념 예술가들, 로버트 스미드슨, 로버트 모리스, 마이클 하이저, 한스 하케, 데니스 오펜하이머등과 교류하면서 조수로 일했다. 마치 르 코르뷔지에 아래서 일하던 로베르토 마타가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서 초현실주의 화가가 되었듯이, 고든 마타-클락이 대지를 미디움으로 하던 개념 예술가들을 만나서 건축을 미디움으로 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우연치고는 기묘할 뿐이다.

아버지는 그림으로 건축을 버렸지만 아들은 건축으로 건축을 버린 것이다. 두 부자의 작품은 2006년 미국 샌디애고 뮤지엄에서 나란히 전시되었다. 절단이 공간적 상황과 구조적 요소들을 재정의를 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가 되는 만큼 마타-클락에게 건축은 예술을 수행하는 방법이고, 해머와 전기톱은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타-클락에게 건축은 무엇인가를 구성하고 만든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이미 만들어진 건물을 변경시키고 해체시키는 그 무엇이다. 변경과 해체가 건축적 방식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건축 그 자체에 내포된 내적으로 완결되고 총체적으로 완공되어야 한다는 근대 건축의 이념과 관행이 마타-클락의 과격한 개입에 의해서 하나씩 변경되고 해체된다. 그래서 구성하고자 하는 의지와 행위 속에 가려지거나 배제된 공간과 공간이 부여해 내는 시각적 이미지가 새롭게 구성된다.

그렇게 제작되고 설치된 마타-클락의 작품은 이내 철거되어 폐기된다. 그것은 마타-클락이 철거될 운명에 처해있는 건물에 들어가서 그 건물을 자르고 깎고, 파내고, 부숴 건물 자체의 구조를 급격하게 변경시키는 행위 자체가 예술화되면서 생겨난 예술품 자체에 이미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타-클락의 개입 행위도 “사라지는 행위(disappearing act)"가 되는 것이다.





Splitting: Exterior (in 6 parts).  gelatin silver prints, mntd

1974년 뉴저지 잉글우드에 있는 평범한 2층 목조주택을 딱 둘로 나누는 “둘로 쪼게기(Splitting)"
 
마타-클락은 사람들이 건물에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관념에 도전 하여, 그들의 통념과 고정 관념, 또는 건물이 건축되어 있는 방식 때문에 가려워져 있던 시각적 진실을 드러내 왔지만 그 진실은 곧 다시 사라지면서 기록처럼 하나의 흔적으로만 남을 뿐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둘로 쪼개기(Splitting)"는 74년 3월에서 6월 뉴저지 잉글우드에 있는 너무나 평범해서 봐도 기억조차 남지 않을 2층 목조주택을 마치 금강도로 두부 자르듯이 중간에서 딱 반으로 자른 작품이다.
 
마타-클락의 딜러였던, 우리에게는 백남준의 마지막 딜러로 알려진 홀리 솔로몬(Holly Soloman)과 호레이스 솔로몬(Horace Solomon) 부부가 투자로 사 두었던 폐가를 사용했다. 건물의 중심을 지탱하는 건축적 구조물을 제거하여 네 코너의 힘으로 건물을 지탱하게 한 후, 반으로 잘려진 윗부분에 빛이 새어나오도록 건물 뒷부분을 약간 낮게 내린 후에, 정중앙에서 전기톱을 사용하게 반으로 잘랐다.
 
비록 잘려진 집 몸체는 뒤에 완전히 철거되어 지상에서 사라져 비디오와 사진으로는 남아있지만, 잘려나간 네 귀퉁이는 샌프란시스코 모마에 소장되어 남아있다. 절단에 따른 행동과 경험이 물질화되어 조각적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아나키텍처의 공간 개념에 입각하여 보다 시각적으로 스펙터클하고 공공적 의미를 확장해나가는 작업을 뉴욕 허드슨 강 항만 52에 방치된 물류 창고(Day" End(1975)), 파리 퐁피두센터가 건설되는 인근 철거된 아파트 두 동(Conical Intersect(1975)), 벨기에 안트벨프의 운수회사 건물(Office Baroque(1977), 시카고 현대 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에 연접한 3층 브라운스톤 건물(Circus 혹은 The Caribbean Orange(1978) 등에서 수행하였다.
 
비록 사진과 슈퍼 8미리 영사기로만 볼 수 있는 작업이지만 그 시각적 충격은 엄청나다. 바닥과 벽면 그리고 천정에 파낸 커다란 원의 형태나 구멍이 입체적으로 배열되면서 표면과 허공과의 가녀린 관계가 활성화된다. 관객은 변환된 건물에서 단순히 그 건물이 변한 효과를 체험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간 자체를 자기 자신의 보는 행위 속에 통합시키면서 관객 자신이 건물 내 순환하는 허공 속에 통합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27-29, rue Beaubourg, Paris courtesy of David Zwirner, NY and
the Estate of Gordon Matta-Clark

그리고는 철거되어서 지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마타-클락의 모든 작품은 경과적이고 일시적이다. 대부분 작업이 과정으로, 현장 설치로, 퍼포먼스로만 진행이 된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소위 포스트 아방가르드들의 현장설치(site-specific), 과정 예술(process art), 미니멀리즘(minimalism), 개념 예술(conceptual art)의 발흥에 나란히 마타-클락의 예술 행위는 전개되어 왔다. 소위 예술 오브제의 제거를 강조하고 작품의 물질적 형태보다 예술 대상의 개념을 특권화 하는 예술을 받아들인 마타-클락은 사회적 공간이나 건물에 대하여 스스로 예술적으로 개입하면서 그 환경이나 맥락을 새롭게 만들어 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조건으로서 공간에 대한 상상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심리적이고 창의적이며 물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장소라는 공간에 대한 유토피아 관념을 예술을 매개로 실현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소호가 있기 이전에 소호에 예술 대안 공간과 “푸드(Food)"란 식당을 설립하여 예술과 음식을 매개로 시각 예술가뿐만 아니라 필립 그라스나 테레사 브라운 등과 같은 공연 예술가까지 포괄하는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려했다. 부친의 부재와 무책임에 대한 반동에서든 아니면 자기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당시 뉴욕에서 가장 긴박한 공공의 이슈였던 도심의 몰락과 재개발에 얽힌 시대적 문제에 지식인으로 대응이었든 마타-클락에게 예술은 그 자체가 삶이었고 삶을 예술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를 멈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뉴욕 허드슨 강 항만 52에 방치된 물류 창고  "하루의 끝  Day"s End" 1975.

글쓴이 : 김황

디자이너 김황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서 일했다. 2007년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왕립예술학교(RCA)의 제품 디자인과(Design Products)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차세대 디자인 리더 8기, 아르코 영 아트 프론티어 2기로 선정되었다. 현재 Philips Amsterdam / Singapore 에서 Senior Interaction Designer로 활동하고 있다.

+44 (0)759 0039 380 | www.hwangkim.com | hwang.kim@network.rca.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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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don Matta-Cl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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