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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 슈퍼스타 키스해링전, 아시아 최대규모로 열려



소마미술관은 오는 6월 17일부터 9월5일까지 아시아 최대규모로 ‘팝아트 슈퍼스타, 키스해링展’을 개최한다. 본 전시는 에이즈로 31살에 요절한 키스해링의 사망 2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으로 키스해링의 분야별 대표작 판화 130여점과 작가 영상자료, 조각 등 총 150여점이 소개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전시 뿐 아니라 어린이 체험프로그램, 정원극장 등 시민들이 참여하며 즐길 수 있는 종합문화예술축제 형식으로 진행된다.



키스해링 (Keith Haring, 1958-1990)


1958년 5월4일, 펜실베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난 키스해링은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배운 기본적인 카툰 기술과 닥터 수스, 월트 디즈니와 같이 주변에서 쉬이 접하는 대중문화로부터 드로잉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197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피츠버그 아이비 상업예술학교에 입학하지만, 상업적인 그래픽 아티스트가 되는데 흥미가 없음을 깨닫고 2학기 만에 중퇴한다. 홀로 독학하며 작업 활동을 하던 중 1978년 스무 살의 나이에 피츠버그 예술공예센터에서 자신의 첫 개인전을 갖는다.



그 해 뉴욕시로 이주해 시각예술학교(School of Visual Arts)에 입학한 해링은 뉴욕 거리와 지하철, 클럽 등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기존 제도 밖에서 번성하고 있는 대안예술 커뮤니티를 발견하고 동참한다. 1980년에는 지하철역에 검은 종이로 가려놓은 빈 광고판을 보고, 그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린다. 늘 고민하던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때로 하루 40여개의 ‘지하철 드로잉’을 제작하며, 80-85년 사이 빠르고 리드미컬한 선으로 된 수백 개의 드로잉을 완성하였다. 뉴욕시를 채워간 이런 이미지의 흐름은 사람들에게 친숙해졌고, 사람들은 작업 중인 해링과 마주칠 때면 멈춰 서서 그와 대화하며 소통하였다. 지하철은 단순한 선으로 된 그의 아이디어와 시도들을 작업하기 위한 ‘실험실’이 된 것이다.

1980년과 1989년 사이 해링은 개인전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전에 참여하였고, 상파울로 비엔날레, 휘트니 비엔날레 같은 전시회에 참가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또한 타임 스퀘어 전광판에 선보인 애니메이션부터 극장이나 클럽의 세트, 배경디자인, 스와치 시계 디자인,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 및 전 세계 수십 개 도시의 자선단체와 병원, 어린이센터, 고아원 등에서 50개 이상의 벽화 및 공공 작품을 제작하였다. 뉴욕, 암스테르담, 런던, 도쿄, 보르도의 박물관 및 여러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 워크숍을 열고 , 많은 문맹퇴치 프로그램과 기타 공공 서비스 캠페인을 위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86년에는 예술활동의 확장으로 팝샵을 열어 그의 이미지가 담신 티셔츠와 장남감, 포스터, 뺏지 등을 판매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가까이 접하게 했다. 88년 에이즈 진단을 받은 해링은 89년 키스해링 재단을 설립하여 에이즈 기관과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시작하였다.

키스해링은 80년대에 걸쳐 10여년의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100회 이상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과 작업을 그 누구보다 왕성하게 선보인 작가이다. 탄생과 죽음, 사랑과 성, 전쟁 등의 보편적인 개념들을 단순 명쾌한 메시지로 선을 이용해 표현함으로써 다양하고 폭넓은 사람들을 끌어 당겼고, 그의 형상이 지닌 접근성과 지속성으로 그의 이미지는 20세기의 보편적 시각언어가 되었다. 대중과의 소통을 열망하며 작업했던 그의 작품을 통해 키스 해링은 지금까지도 전세계 사람들과 호흡하며 소통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에 자유를, FREE SOUTH AFRICA (1985)_ Lithograph_ 101.6×81.3㎝



이 작품은 198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며 제작되었다. 해링은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가정 출신이지만, 과거 백인들의 잘못을 비난하며 백인보다 오히려 다른 인종에게 더 큰 애정을 가졌다. 1985년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며 이만장의 포스터를 제작하여 다시금 센트럴파크에서 무료 배포하였다. 어릴 시절부터 유난히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해링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포스터 제작뿐 아니라 경찰에 의해 살해된 아프리카계 낙서화가 마이클 스튜어트의 죽음, 존 레논의 살해 사건, 사회 보수층들에 대한 비난 등 사회성 짙은 작품을 다수 제작한다. 실제 사건들을 직접 다룬 이 작품들의 간결하고 단순한 표현 뒤에는 동시대의 역사가 냉철하게 반영되어 있다.



무제, UNTITLED (1987)_ Silkscreen_ 15×15㎝

<무제 Untitled> 1987년 작품은 대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키스 해링의 작품 중 하나이다. 화면 중앙에 크게 자리한 붉은 하트는 두 사람 간의 우정과 믿음, 신뢰와 사랑을 나타낸다. 하트에서 뻗어져 나오는 분명한 선들은 사랑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침묵 = 죽음, SILENCE = DEATH (1989)_ Silkscreen_ 99.1×99.1㎝

화면에는 동성애자 모임의 상징인 분홍색 삼각형이 검은색 바탕에 뚜렷하게 대비되어 나타난다. 그 위에 손으로 눈과 귀를 막은 회색 윤곽선의 인물들이 얼기설기 그물처럼 퍼져있다. 눈과 귀를 막은 사람들에게서 에이즈에 대한 무관심과 잘못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해링은 사람들의 이런 무관심으로부터 에이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해링은 죽기 1년 전인 1989년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키스해링재단을 설립하였고, 지금까지 에이즈 및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오고 있다.


 

빨강과 파랑 이야기, THE STORY OF RED AND BLUE (1989)_ Lithograph_ 41.9×55.9㎝



『빨강과 파랑 이야기』는 독일의 아트 딜러, 한스 마이어의 자녀들을 위해 제작된 그림 시리즈이다. 이 작품에서는 색을 중심으로 한 부드러운 소통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빨강과 파랑의 한 색만이 화면에서 교차되어 나타나다가 이어 빨강과 파랑이 한 화면에 함께 모여지고, 마지막에는 두 가지 색깔이 혼합된 보라가 형성된 후 작품이 마무리된다. 색의 교차와 더불어 색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각각의 이미지들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보는 이로 하여금 색이 들려주는 자유로운 상상을 제한없이 펼치게 하는데, 이것이 이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아이콘, ICONS (1990)_ Silkscreen_ 63.5×53.3㎝



아이콘 시리즈는 키스 해링이 창조해 낸 이미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순수예술 분야와 상업 분야에 서 모두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지하철 낙서 시절 가장 자주 사용되었던 기어가는 아기 형태의 서명은 시인 르네 리카르드(Rene Ricard)가 ‘빛나는 아기’라 명하면서 그 이름으로 흔히 불러지게 된다. 빛나는 아기 도상은 간결한 윤곽선으로 아기의 형상을 단순화하고 동작선을 통해 빛을 발산하는 모습을 전달하고 있다. 이 아기 형상은 힘없는 인간이나 어린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함과 젊음, 에너지와 능력, 힘과 인간의 악함으로부터의 자유 등을 표현하고 있다. 

 


All Haring Works ⓒ Keith Haring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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