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이 가장 많이 본 디자인 뉴스
디자인 트렌드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 아이콘 인쇄 아이콘

색채의 마법사 -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

 

 

 

■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 (1928-2000) 그는 누구인가?

  

 

 

 

 

훈데르트바서는 192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는 7세의 나이에 몬테소리 교육을 받으며 자연에 대한 밀접한 관계를 설립하고 색채에 민감한 감각을 개발하였다. 어머니가 유태인이었던 그는 1938년, 만 9세의 나이에 독일군에 의해 어머니와 함께 도나우스트라세에 있는 할머니의 집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1943년 전쟁 중에 69명의 친척이 몰살당하게 되고 이는 그로 하여금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신념을 심어주게 된다. 그의 원래 이름은 프리드리히 스토바사였으나 추후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라는 뜻의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로 스스로 개명하였다. 그는 유럽 전 지역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설립해 나갔다. 그 후 그는 적극적인 연설과 서명 운동을 통하여 획일화된 세상에 대항하였으며 자연과 어우러진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세상에 피력하기 시작하였다. 화가, 건축가이자 환경 운동가였던 그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확고한 주제 의식을 갖고 작품 활동을 펼쳤으며, 환경 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로서도 일생을 바쳐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의 회화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유기적 형태로 강렬한 인상과 여운을 남기며 그의 건축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표를 제시해준다. 그의 활발한 환경 운동은 점차 세상에 그 영향력을 키워나갔으며 1980년 워싱턴 D.C의 시장은 11월 18일을 ‘훈데르트바서’의 날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로도 그는 여러 기부 운동을 이끌었으며 반핵운동 등 적극적인 운동을 이어나갔다. 훗날 그는 자신의 꿈의 나라,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작업 활동을 하였으며 2000년, 뉴질랜드에서 유럽으로 오는 도중 퀸 엘리자베스 2세호 갑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의 유언에 따라 뉴질랜드에 있는 그의 정원 “행복한 죽음의 정원”의 튤립나무 아래서 묻혀 영원히 자연으로 돌아갔다.

 

일생을 환경 보호와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바친 훈데르트바서와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통하여 지상낙원,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을 보여 줄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한국 전시가 2010녀 12월 5일부터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60점이 넘는 오리지널 페인팅, 건축 모형 작품 8점, 오리지널 그래픽 30여 점, 태피스트리 5점 등 통하여 국내 최초로 화가, 건축가이자 환경운동가였던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및 철학 세계를 집대성한 심도 깊은 전시를 선사한다.

 

 

 

■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세계

 

 

- 건축모형 작품  I  블루마우 온천, 반지의 제왕 호빗마을의 시초가 되다

 

 

 

 

 

 
건축가, 아니 건축 치료사로서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은 그가 품었던 꿈, 세상을 향한 메시지의 결실이다. 그 중에서도 블루마우 온천장은 그의 건축관을 한 눈에 아우를 수 있는 훈데르트바서 건축의 집대성이다. 알록달록 벽면과 2,400개의 각기 다른 창문들, 직선은 찾아 볼 수 없는 자연의 선을 따라 지어진 블루마우는 반지의 제왕 호빗마을의 기본적인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모든 건물의 지붕은 잔디와 나무로 덮여있다. 정원을 걷다 보면 지붕으로 지붕을 걷다 보면 정원으로 이어지며 꿈과 같은, 마법과도 같은 세상을 소개한다.

 

 

 

- 건축 모형 작품 II

 

 

 

 

 

훈데르트바서가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기능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현대 건축들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는 신념이 녹아있다. 그는 도시의 메마른 건축들을 치료하여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동거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크고 작은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되면서 ‘건축 치료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의 예술이 ‘행복한 삶의 추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였을 때 그가 인간이 실질적인 삶을 영유하는 공간인 건축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자연의 굴곡을 그대로 보존하고 바닥의 갈라진 틈 사이에 식물이 자라나며 불규칙하며 둥글게 굴려진 구석과 모서리’ 등 그가 추구한 공간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행복한 공간이다. 지상낙원을 향한 그의 꿈을 실현시킨 건축. 훈데르트바서는 건축물을 실현시키기에 앞서 전문가와 함께 자신이 직접 건축 모형을 제작하였다. 이는 현재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으며 그 웅장한 스케일에서 실제 건축물 앞에 서는 것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전시에서는 8개의 대표적인 건축물의 모형 작품이 전시 되어있다.

 

 

  

 

 Kunsthauswien

 

 

 

ARCH68/1 (1989)
240*175*130
1:20

 

 

- 회화 작품

 

 

 

 

 

 

 


훈데르트바서의 회화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훈데르트바서는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것을 단순히 즐기기 때문에 붓을 들었던 작가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붓과 캔버스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였다.
정규 교육을 오랫동안 받지 않았던 ‘덕분에’ 그는 색상 선택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자유로웠으며 사용한 재료 또한 자신이 직접 안료를 섞고 자연의 재료 - 흙, 식물 ? 을 섞어 만들었으며 값비싼 캔버스가 아닌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종이 봉투 또는 상자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그저 아름다운 회화 작품이 아닌 그가 일생 몸소 실천한 행복한 삶으로의 길을 담고 있기에 그의 작품들은 강한 에너지를 갖고 따뜻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관람객과의 보다 친밀한 관계 형성을 위해 그의 모든 작품들은 벽에 밀착된 죽어있는 모습이 아닌 10~12센티미터 떨어져서 걸려있으며 강렬하면서도 마음 속을 울리는 그러나 결코 자신을 뽐내지 않는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본 전시에 포함된 작품은 훈데르트바서 비영리 재단이 보유한 80% 이상의 작품과 일본 각처의 미술관에서 보내졌으며 작가가 일본에서 거주할 당시 혼인을 맺었던 이케와다 님 또한 작품을 보내주었다.

 

 

Tag
#전시회 #훈데르트바서

목록 버튼 이전 버튼 다음 버튼
최초 3개의 게시물은 임시로 내용 조회가 가능하며, 이후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임시조회 게시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