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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그들이 동굴에 간 이유 _ 신보슬

뜨거운 여름, 그들이 동굴에 간 이유 _ biorama

 

글  신보슬

아침 9시. 고속도로. 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고 쌩쌩 달리는 고속버스는 20여분 만에 나를 홍대 입구에 내려 놓았다. 보통 이 시간대에는 고속도로인지 주차장인지 모를 정도로 차가 막히기 마련인데, 8월에 들어서자 마술처럼 거리의 차들이 확 줄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바캉스를 떠나버려 도심은 한층 여유로워 졌다. 사람들이 산과 바다로 떠난 그 자리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어디 하이킹이라도 다녀와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인터넷에 접속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컴퓨터 곁에서야 안정을 찾는 이 테크놀로지 중독자들의 여름은 어떨까. 그들도 모두 산으로 바다로 떠났을까.

2007년 여름. 영국에서 ‘바이오라마(biorama)’라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영국 후더스필드 대학 DRU(Digital Research Unit)의 모니카 벨로(Monica Bello)가 기획한 바이오라마는  예술과 과학, 그리고 테크노로지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생명, 과학, 그리고 디지털 리얼리티를 탐구해온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였다. 컴퓨터와 프로젝터 시설이 잘 마련된 대학의 연구실이나 세미나실에서나 이루어질 만한 행사를 자연과 함께 하는 하이킹으로 시작했다.  


그림1. 2007년의 ‘바이오라마 1’ 하이킹 장면, photo by Anthony Oliver

하루 코스의 프로그램은 오전 9시 15분 후더스필드의 미디어 센터에서 출발하여 2시에 돌아오는 ‘바이오라마 하이크’와 전문 패널들의 발표로 이루어지는 ‘바이오라마 세션들’로 구성되었다. ‘바이오라마 하이크’는 DRU 입주작가로 있으면서, 요크셔지방 서쪽에 있는 마스덴 무어(Marsden Moor)의 페나인 황야지역의 미생물학은 물론 전통적인 디지털 네트워킹 시스템, 인공위성 커뮤니케이션, 환경과 역사, 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등의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던 앤디 그레이시(Andy Gracie)가 약 3시간 가량 참가자들과 함께 마스덴 무어 지역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림 2. C-lab의 [The Martin Rose] 프로젝트, photo from http://www.c-lab.co.uk/default.aspx?id=9&projectid=53 


그림 3. 런던필드워크의 프로젝트들. (왼쪽) [Hexer alter-ego], (오른쪽) [SpaceBaby]
 
하이킹이 끝나고 오후에는 미디어 센터에서 ‘바이오라마 세션들’이 진행된다. 이토이(etoy), C-Lab, 런던필드워크(London Fieldworks)등 7명/팀의 발제자가 참여하여 실제 생명형태(lifeform)와 상상의 생명형태를 가지고 자연환경과 인공적인 풍광, 그리고 상호작용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하는 가운데, 바이오라마의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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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2009년 '바이오라마 2' 진행 장면
photo by Rob Lycett

그로부터 2년 후. 2009년 7월 미디어아트 관련 소식을 전하는 한 웹사이트에 동굴 안에 모여서 심포지엄을 하고 있는 흥미로운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한 여름 동굴 안에서 세미나를 하면 시원하고 재밌겠다 싶어 자세히 살펴봤더니 바이오라마의 두 번째 모임에 대한 기사였다. ‘바이오라마2’ 역시 앤디 그레이시가 기획에 참여했고, 이번에는 후더스필드 대학의 드렉 할스(Derek Hales)도 함께 공동기획자로 참여했다.

6월25일 ‘바이오라마2’ 팀은 영국 더비셔 주(州) 호프 벨리(Hope Valley)에 있는 피크 동굴(Peak Cavern)로 갔는데, 이번 두 번째 ‘바이오라마’ 회동이 야콥 폰 익스쿨(Jacob von Uexkull)이 창안한 ‘환세계(umwelt – 생물체가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주관적인 세계)’라는 개념을 통해서 지하세계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이오라마2’는 동굴이나 탄광의 지하세계는 물론 그러한 장소에서 포함하고 있는 유기적인 생명체를 일종의 병렬적인 육지의 생물학으로 간주하여 ‘병렬과학 parallel science’을 발전시키려고 했다.

미생물학자인 폴 험프리(Paul Hymphreys) 박사는 콘크리트 크랙이나 대리석 기념비들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와 같은 새로운 박테리아에 대한 소개를 했고, 오론 캐츠(Oron Catts)는 생물학적 예술(biological art)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가고 있는 ‘심포티카 SympoticA’의 새로운 프로젝트 <적응(Adaptation)>을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안토니 홀(Anthony Hall)은 인간과 물고기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미생물공학자와 작가, 큐레이터가 함께 참여한 ‘바이오라마’의 컨퍼런스 세션에서 벌어졌던 세부적인 이야기는 너무나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일반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제간이 교류라거나 ‘통섭’이라는 것이 시대의 키워드라 소리 높여 외치기만 할 뿐 실제적으로 다학문 간의 교류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형식적인 심포지엄만 남발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첨단 테크놀로지와 생물학을 근간으로 예술과 과학이 만나 즐겁게 한 판 벌이고 있는 ‘바이오라마’의 기획은 사실 부러울 따름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해하는 것과 질척한 습지도 가보고, 시원한 동굴 안에 들어가 실제로 그러한 환경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를 만나면서 토론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립된 방 안에서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어(networked) 하는 토론과 온 감각을 동원하여 몸으로 참여하는 워크숍도 아주 다르다. 물론 서로 다른 형식이기에 양자택일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뜨거운 여름이기에 그들이 동굴에서 벌인 ‘향연(symposia)’에 한 표를 던지고 싶어진다.

 


신보슬_큐레이터

10년도 넘게 미디어아트라는 녀석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많은 전시와 작품을 만나며, 일상에 많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해왔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그 신나고 즐거운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몇몇 괴짜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나아가 사람이 더불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Tag
#바이오라마 #워크숍 #학제간 교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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