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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과 공공성 _ 나조영

열린 광장과 공공성


글 나조영

지난 8월 1일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개인적인 약속 때문에 광화문에 나가게 되었다. 버스가 정부종합청사를 지나 세종문화회관에 다다를 때쯤, 그날이 서울시에서 그렇게 홍보하던 ‘광화문 광장이 시민에게 열리는 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인파가 광화문에 모여들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자리를 차지하고 개막공연을 기다리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종로와 광화문 광장을 오고 가면서 광화문 일대를 즐기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의 옆으로는 역사의 물길이 흐르고 있었고,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는 그의 용맹을 상징하는 12.23 분수가 더운 여름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다른 편에는 플라워 카펫이 넓게 펼쳐져 있었으며, 토피어리로 제작된 서울시를 상징하는 해치 또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 조성된 선큰 광장은 넓은 도로 위에 만들어진 어찌보면 다소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공간에 조형적 변화를 제공했다.


그림 1. 광화문 광장 2009 © heech moon

앞으로 이 곳에 세종대왕 동상이 조성된다고 한다. 그리고 광화문이 복원 완성될 쯤이면 광화문을 포함한 세종로 일대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에 대한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할 것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이 광화문 광장은 단지 광화문에만 머물지 않고, 청계 광장에서 시청광장 그리고 서울역과 용산공원 그리고 한강으로 연결되는 국가상징거리로 확장될 예정이라고 하니, 서울 중심 공간에 대한 커다란 인식의 변화가 실제로 우리 눈앞에 펼쳐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확실히 광장이 시민에게 열린 날의 풍경은 자유로웠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동차들만 다닐 수 있었던 도로를 자유롭게 건넜고, 그곳에 멈춰 서서 도시의 풍경을 돌아볼 수 있었다. 공간이 한층 유연하게 변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개장 이후 발견된 문제점들은 차차 보완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에 서서 이 공간의 공간 구조를 보니 이 곳이 시민에게 열렸다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역사에 봉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는 ‘위대한’ 한국적인 것들만 존재할 뿐,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차이의 가치들과 민주주의를 작동케 하는 인류 보편의 가치들은 이 곳의 공간 구성원리에는 배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2. Jaume Plensa, Crown Fountain 2004 ⓒ City of Chicago

2004년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등장한 스페인 조각가 자우메 플렌사(Jaume Plensa)의 <크라운 분수 (Crown Fountain)>는 광장에서 기념비적 설치물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함께 어떻게 민주적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좋은 예들 중 하나이다. 이 분수의 조형적 형식은 매우 간단하다. 공원 내 비어있는 넓은 직사각형의 공간에 두 개의 기둥을 설치하고 그 공간 전체가 분수 및 풀장이 되는 형식이다. 그러나 인상적인 것은 이 15미터의 두 개의 기둥이 단지 기둥이 아니라 LED 스크린으로 구성된 커다란 전광판이자 분수이며 조각이라는데 있다. 고전적인 공공 조각이 역사적 영웅을 조형적으로 형상화한다면, 이 LED 기둥 조각에는 시카고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마주하며 기념된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종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을 갖는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모집하고 그들의 얼굴을 촬영하여 이 기둥에 투사했다. 코믹한 것은 촬영된 시키고 시민들을 이 기둥에 투사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입에 물을 가득 머금고 친구들에게 장난 삼아 쭉 뱉는 것과 같은 모습을 화면에 투사한다. 그리고 그 입에서 실제로 물이 뿜어져 나온다. 이 표정은 미국 작가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의 1966년 작품 <분수로서 초상화 (Self-Portrait as a Fountain)>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사에 대한 코믹하고 대중적인 전유로도 여겨질 수 있다. 하여튼, 자우메 플렌사의 이 프로젝트는 열린 공간인 공원을 더욱 시민의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진지하지만 유머스러운 실험이다. 더욱이 이 분수의 이름이 크라운인 것은 이 분수를 제작하도록 많은 금액을 기부한 사람의 성(姓)이 크라운(Crown)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 사회에서 왕관은 특정 역사적 위인이나 부유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림 3. Antony Gormley의 One & Other 프로젝트 장면. 이 프로젝트는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중계된다. photos 2009 ⓒ James O'Jenkins

2009년 현재 런던의 트라팔가 스퀘어의 북서쪽에 위치한 ‘제4대좌(The Fourth Plinth)’에는 영국의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영국의 상징적 광장인 트라팔가 스퀘어의 제4대좌는 1841년 조성 당시 기마상이 안치될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정에 의해서 대좌만 만들어지고 1999년 까지 비어있는 채로 남겨져 있었다. 영웅을 기념하기 위한 잠재적 장소로서 비어 있었던 이 대좌는 1999년 영국 왕립 예술 상업 공업 진흥회(Royal Society for the encouragement of Arts, Manufactures and Commerce)의 커미션으로 제작되고 임시 설치된 마크 왈린저 (Mark Wallinger)의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를 시작으로 공공적 가치에 대한 논쟁적 이슈들을 생산해내는 가장 실험적인 예술 무대가 되었다. ‘제4대좌’ 프로젝트에 초대된 많은 작가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의 의미와 영웅을 표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는 인간 보편의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위하고 가꾸어가야 하는 민주적 가치의 의미에 대해서 창조적 질문을 던졌다.

지난 7월 6일 시작해 오는 10월 14일 까지 진행될 안토니 곰리의 프로젝트 "One & Other"는 100일 동안 2400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하는 도전적인 실험이다. 단순히 영국인 뿐만 아니라 영국에 거주하는 16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진 이 프로젝트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타자의 의미를 재확인하게 할 뿐만 아니라 미술에 있어서 기념 조각상에 대한 의미를 반문하게 한다.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들 중에서 임의로 최종 선정된 ‘대좌 위의 사람들(Plinthers)’은 ‘제4대좌’ 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한 시간 동안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누구는 그곳에서 디제잉을 했고, 누구는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드러내기도 했다. 아니면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이러한 개인들의 목소리들을 통해서 지난날 대영제국이라는 제국주의적 표상원리에 의해서 고안된 트라팔가 광장이 갖는 패권적이고 남성적인 의미는 전복되는 것이다.


현재 광화문 광장의 조형적 원리는 시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민족국가로서 한국의 가치와 영광만이 표상되는 쇼룸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영웅이 안치되고, 가치있는 한국적인 것들이 표상되는 그곳에서 한국의 위대한,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민족적 영광이 표상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식민경험을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민족적 가치에 대한 패권적 재현원리 보다 인류보편성을 향한 화합과 생성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은 아닐까. 광장은 언제나 비어있고, 그곳을 채우는 것은 그 공간이 위치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세계관일 것이다. 그들이 오직 자신들만의 가치만을 바라본다면, 그 곳은 열려있어도 열려있는 곳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피켓 시위마저도 제지하는 최근의 조치는 새로운 광장에 대한 매우 씁쓸한 사건으로 생각된다.



나조영_문화연구 및 문화 인류학 전공. paul.jy.nah@googlemail.com

문화 인류학적 시각으로 동시대 사회문화현상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트렌드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지만, 그 트렌드를 쫓아 가기 보다 사회 문화를 분석하는 틀로 삼고자 할 뿐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적용 전유 가능한 또 다른 시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Tag
#광장 #공공성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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