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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과 더불어 살기 _ 나조영

노인들과 더불어 살기

글 나조영

2002년 개봉된 영화 ‘죽어도 좋아’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을 욕망하는 주체로 그렸다는 데서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외로운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서로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 전부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연인이 젊은이가 아니라 일흔이 넘은 노인이라는데 있다. 이 영화는 단지 ‘나이가 들어도 성적 욕구는 줄어들지 않는다’와 같은 단편적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이 영화가 많은 논쟁점들을 드러냈던 것은 우리 사회가 인식하는 노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림 1. 영화 <죽어도 좋아> 포스터 이미지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노인 공경’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공손히 받들어 모셔지는 대상이거나, 이제는 늙어 쓸모 없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무용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포장된다고 할지라도 기실 우리 사회에서 적극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고려되거나 호명된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 명절이나 선거철이 다가오면 그들은 언론에 표상되지만, 그것은 단지 사회가 규정한 노인의 범주와 규정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고는 우리가 노인을 개별적 주체로 인식하기 보다 자연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들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으며,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언제나 되돌아가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자연과 같은 대상 말이다. 반면 이와 대비되는 노인에 대한 인식은 2007년에 발생했던 보성연쇄살인사건과 같은 엽기적인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될 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노인들이 자행한 사건과 사고를 보면서, 노인 문제를 본래적으로 사고하기 보다 오히려 ‘노인네가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하며 치를 떨 뿐이다. 여기에는 동시대인으로서 노인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사회에서 노인들은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좀비와 같은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인은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그 비중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00년 전체인구의 7.2%을 넘어섰고, 2019년에는 14.4%, 2026년에는 20.2%에 도달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것은 비단 경제인구의 감소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상적 삶의 조건에서 노령계층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본래적인 사고를 요청하는 것과 같다.
 

그림 2. 일본의 고령운전자 스티커
최근 보험 개발원이 발표한 노령인구의 자동차 보험 가입자 수치의 변화는 이러한 사고의 변화가 왜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험 개발원에 따르면, 개인용 자동차 보험 가입자 중 60대 이상 비율이 3월 말 8.8%로 1년만에 0.6%가 높아졌으며, 70대 이상의 운전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도로에서 고령 운전자를 쉽게 만날 수 있고, 그들로 인한 교통사고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인네가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자동차를 끌고 나오다니’라고 비난하기 보다, 어떻게 고령 운전자들과 같이 도로 위에서 운전할 것인가에 대한 본래적 사고를 해야 할 때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운전의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 영역으로 확장될 것임에 분명하다.
  

지난 5월 한국 문화관광연구원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문화정책 개발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서 문화적 차원에서 노인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기획됐다. 이 연구는 고령인구를 단지 무용한 인적 구성으로 바라보지 않고 품격 높은 인적 자원으로 인식하면서 사회 통합의 적극적인 주체로 변화시키고 더불어 문화적인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한국에서 노인에 대한 인식과 정부 부처의 노인정책 등에서 대해서 살펴보고, 서구 및 일본의 사례를 검토한다. 우선 이 보고서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호칭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노인을 지칭하는 언어 및 호칭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청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노인을 지칭하는 다양한 용어가 존재하지만, 가치 편향적이거나 의미와 어감면에서 부적절한 것이 많아 고령층에서도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길 꺼린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노인층 전체를 아우르면서도 사회적으로 새로운 함의를 포함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한다. 이러한 진단과 요청은 사용하는 언어에서 노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청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보고서는 노인과 관련된 문화 복지 정책에 있어 유엔이 1991년 선언한 ‘노인을 위한 원칙’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노인에 관한 유엔 선언의 요점은 ‘자립 Independence’, ‘참가 participation’, ‘돌봄 Care’, ‘자아실현 Self-fulfillment’, ‘존엄 Dignity’으로 구분한다. 이 요점이 언급하는 것은 사회와 가족의 지원은 노인의 자립을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노인 복지 정책 수립에 노인이 직접 참여하는 것에 덧붙여 자신의 은퇴시기와 은퇴를 준비하기 위한 교육 및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안전한 주거와 생존을 위한 돌봄은 필수적이며, 은퇴 이후에도 자아실현을 위한 다양한 직업 및 봉사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하며, 노인들의 지식과 기술을 젊은 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구비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인의 존엄이 확보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법적 경제적 사회적 보호장치를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요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인을 단순히 수동적인 객체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의 조건에 맞는 자발적 주체로 인식의 전환을 요청하는 것이며, 노인과 사회의 고령화의 문제가 단지 고령연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의 문제로 고려되어야 함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노인에 대한 문화 복지 고용 정책은 대부분 노인을 수동적인 객체로 파악하고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문화의 경우 노인을 창조적 주체로 보기 보다 문화 향유에 집중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며, 복지의 경우도 고령계층을 수혜자로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보고서에서는 고령계층을 복지 정책의 적극적 행위자로 사고를 전환 할 필요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용정책에서도 단순 일자리 제공과 같이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보다 빈곤 고령자를 위한 일용직 제공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 역시 자신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을 떠나서 어떤 방식으로도 자신의 자아를 새롭게 구성하고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객체로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2004년 OEDC 보고서와 통계청 자료를 비교 분석해 보면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회원국 중 가장 높다고 한다. 2003년 한해 동안 65세 이상 노인의 3천 6백 5십3명이 자살했고, 같은 연령대의 노인의 10만 명당 71명 꼴이다. 반면 미국과 호주의 경우는 10만 명당 10명이라고 한다. 노인의 자살 증가율 역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대부분 노인 자살의 원인은 만성 질환의 고통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소외감과 외로움에 따른 심리적 요인도 강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한 통계자료에서 보면, 노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에 대해서 질문하자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날 때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가족관계에서 노인들은 가장 행복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재로 노인들 역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 홍대 앞에서 열린 ‘나이 없는 날’ 포스터 이미지

지난 4월 23일 홍대 일원에서는 ‘제2회 나이 없는 날'이 개최됐다. 지금 홍대 앞은 클럽과 인디 밴드, 펜시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지만, 이곳은 본래 전형적인 주택가였다.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고 이곳이 급속하게 상업 공간으로 변화되는 시점에서 이제는 나이 들어 늙어 버린 지역 주민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문화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젊은이들의 문화라고만 치부했던 공간에 노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초대함으로써 서로 같이 홍대 앞이라는 문화적 공간을 즐기고 새로운 지역 공동체를 꿈꾸자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시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인들도 스스로 방을 박차고 나올 필요가 있고, 소년들도 기꺼이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소년은 노인이 아닌 모든 연령대의 사람을 지칭한다.

 
나조영_문화연구 및 문화 인류학 전공. paul.jy.nah@googlemail.com

문화 인류학적 시각으로 동시대 사회문화현상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트렌드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지만, 그 트렌드를 쫓아 가기 보다 사회 문화를 분석하는 틀로 삼고자 할 뿐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적용 전유 가능한 또 다른 시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Tag
#노인 #고령화 사회 #정책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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