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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테크놀로지를 만났을 때 _ 신보슬

패션이 테크놀로지를 만났을 때
- 웨어러블 테크놀로지에 대한 스케치


글  신보슬

올 여름 유난히 출장이 잦았던 나는 한번 제대로 사고를 친 적이 있다. 너무 중요한 일을 앞두고 떠난 유럽 출장길에 노트북의 파워케이블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케이블을 놔두고 왔음을 알았고, 그것을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었었다. 발을 동동 굴리며 대책을 찾았지만, 대책은 없었고, 결국 면세점에서 제일 싼 서브 노트북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올 여름 내내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광고가 하나 있다. 세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검정색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선탠을 즐기고 있다. 그 여자 곁에 연인인 듯 보이는 남자가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게임을 하던 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변한다. 아! 결정적인 순간에 파워가 나간 것이다. 그 때 곁에 있던 여자는 아무 걱정 말라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컴퓨터에서 나온 케이블을 자신의 비키니 상의에 연결시킨다. 아~ 여자의 비키니는 그냥 비키니가 아닌 태양열 전지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내게도 그런 비키니가 있었다면, 그날 난 서브 노트북을 사지 않았었어도 되었으련만.

최근 한 미술관에서 <착하게 입자>라는 전시가 있었다. 패션과 환경보호의식을 아우르는 주제였던 것으로 들었는데, 사실 미술과 패션과의 연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가깝다. 물론 미디어아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웨어러블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다양한 실험들은 ‘옷’을 ‘단순한 옷’ 이상으로 만들며, 지루한 일상에 톡 쏘는 탄산수 같은 역할을 한다. 지하철을 많이 타는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해본다. 티셔츠에 MP3가 있어서 이어폰 잭을 꽂으면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거나, 혹은 LED 같은 패널이 있어서, 자신이 내리는 곳을 알려준다면, 종점까지 가는 사람 앞에서서 그 사람이 언제 내릴까 연연하며 눈치보지 않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상상. 그런데 사실 이런 공상은 그저 공상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많은 실험적인 작업들을 통해서 이런 웨어러블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이 속속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1. 'Lags', by Teresa Almeida, photo copyright by artist

그림 2. (왼쪽) 'Taikanam' Hat, by Ricardo Nascrimento, Ebru Kubak, Fabiana Shizue, photo copyright by artists
그림 3. (오른쪽) 'Cooling Pants', photo copyright by Kouji Hikawa


사비네 세이무어(Sabine Seymour)의 저서 <패셔너블 테크놀로지:디자인 패션, 과학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만남>은 다양한 일렉트로닉 텍스타일과 웨어러블 테크놀로지의 사례들을 잘 소개하고 있다. 테레사 알메이다(Teresa Almeida)가 제작한 시차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면 보조 안대인 ‘Lags’에서부터 리카르도 마시멘토(Ricardo Nascimento), 에브루 쿠어박(Ebru Kurbak), 파비아나 시쯔에(Fabiana Sizue)가 공동제작한 라디오 시그널에 반응하는 깃털달린 모자 ‘Taiknam Hat’, 코우지 히카와(Kouji Hikawa)의 우주복과 쿨링 팬츠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소개하는 패션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다양한 패션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을 소개한다.


그림 4. 'SKORPIONS', an XS Labs project by Joanna Berzowska and Di Mainstone, photo by Nico Stinghe, This photograph is licen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그런가하면 이런 실용적인 것보다 훨씬 예술적이고 조형적인 실험을 하는 디자이너도 있다. 디 마니스톤(Di Manistone) 같은 디자이너이다. 마니스톤은 런던의 센트럴세인트 마틴 컬리지 오브 아트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했다. 셀프리지(Selfidges)나 어번아웃필터스(Urbanoutfilters) 같은 곳에서 패션디자이너로서 그녀가 내놓은 옷들이 판매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녀를 더 주목하게 하는 것은 다양한 협업을 통한 가능성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캐나다 반프 뉴미디어 센터에서 사라 다이아몬드(Sara Diamond)와 함께한 웨어러블 테크놀로지에 대한 실험을 통해 ‘이모셔널 타이 Emotional Tie’와 같은 다양한 일렉트로닉 패션과 장신구들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XS 랩(XS Labs)의 설립자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는가 하면, 일렉트로닉 텍스타일 전문가인 조이 베르조프스카(Zoey Berzowska)등과도 함께 작업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마니스타는 ‘스코르피온스(SKORPIONS)’와 같이 천천히 움직이는 키네틱 전자 옷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스코르피온스’는 실험적인 테크놀로지의 활용에서도 주목할만 하지만, 매번 변화되는 옷의 모양이 시각적으로도 대단히 아름다워 마치 하나의 키네틱 조각을 보는 느낌을 자아낼 정도이다.

이처럼 웨어러블 테크놀로지의 활용은 그저 티셔츠나 청바지에 어떤 센서를 붙이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커넥터와 USB, 태양열 전지판으로 모듈화 된 미래의 웨어러블 테크놀로지는 마치 퍼즐을 맞추듯 상대방의 옷과 연결되어 데이터 교환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감정 교류까지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실험하기도 하고, 옷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거나 형태 실험을 하며 단순한 옷 그 이상의 ‘옷’을 제안하기도 한다. 나아가 이렇게 제안된 실험적인 형식들과 개념은 미래의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며, 어떤 가치와 의미들을 중요시하는가를 반영하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주목해볼만 하다. 인간의 가장 무한한 능력인 상상력은 ‘몸’과 가장 밀접하게 만나는 옷/패션과 테크놀로지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신보슬_큐레이터

10년도 넘게 미디어아트라는 녀석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많은 전시와 작품을 만나며, 일상에 많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해왔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그 신나고 즐거운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몇몇 괴짜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나아가 사람이 더불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Tag
#패션 #웨어러블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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