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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 오면, 융합

최근 가장 유행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융합(Convergence)’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막상 융합의 의미와 특징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식상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지만 융합은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있어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키워드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전적인 의미는 ‘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 또는 그런 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과거의 칸막이가 명확한 전문화 패러다임의 반대 방향이라고 이해를 하고, 무엇인가를 연결지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 융합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융합과 소통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문화, 학문,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과 소통의 가치를 담아내기 위한 갖가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사회에서 중요시되던 가치와는 다르게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각자의 의미가 하나하나 부각되고 이를 통합적인 사고의 틀로서 이해하는 것을 시장과 사회가 모두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융합에 대해 다소 잘못된 접근 방법을 취하는 경우를 간혹 목격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적은 하고 넘어가야 할듯싶다. 소통이 목적 없는 단순한 교류가 아니듯이 융합 또한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른 것을 무조건적으로 뒤섞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것들의 협업을 유도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융합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모든 학문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목표는 대개 하나이기 보다는 다수인 경우가 더 보편적이다. 일반적으로는 학문 자체적인 발전과 심화를 위한 목표와 그 학문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사람과 조직, 분야 간의 관계의 발전 그리고 확장과 관련된 목표가 있을 수 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분야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방법과 수단에 따라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지만, 그 목표가 하나 이상일 경우에는 여러 학문간의 융합과 소통이 필수적이다. 그 대상은 ICT 기술이 될 수도 있고 서비스나 디자인일 수도 있으며 건축이나 도시도 그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목표를 이루거나, 이를 위해 다양한 영역과의 소통과 융합을 시도하는 수단이 반드시 특정 학문의 학위를 따고 논문을 저술하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니다. 융합은 거꾸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가치를 위해서 여러 가지 학문을 사용하는 것이지, 다른 학문의 개별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소통하고 융합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는 학문들도 적극적으로 융합하고 통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과와 이과로 분리시켜 놓은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조금 극단적으로 본다면 대학도 학과 없이 가능하다면 몇개의 통합학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융합을 해야 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해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하고 싶다. 반이 맞다고 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배우고 연결시키는 융합적 역량이 어떤 것을 전공하고,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미래의 인재에게 있어 제일 중요하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반을 틀리다고 한 것은 모두가 융합을 전공하고, 융합을 주된 경쟁력으로 내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융합에 대해 언급할 때 항상 ‘ 구슬 목걸이’를 이용해서 비유를 하는데, 전문가들이 예쁜 구슬을 많이 만들고, 융합을 하는 사람들이 이 구슬들을 멋지게 꿰어 내야 최종적으로 많은 가치가 있는 구슬 목걸이가 나온다. 실이 없이 구슬만 잔뜩 있어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고, 반대로 실만 있고 구슬이 부족해도 제대로 된 구슬 목걸이는 나오지 않는다. 융합을 주된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도 된다. 다만 현재 우리 사회에는 융합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의 수가 너무나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부각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인 측면에서의 융합의 미덕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디자인과 융합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융합을 어떤 공통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서로 다른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나 산업, 학문 등이 협업을 통해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 공통의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바로 이런‘ 공통의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과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다. 필자가 다양한 융합과 관련한 강의를 할 때, 일단‘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와 디자인 도구들의 사용 방법을 먼저 가르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융합을 이야기하면서 초점을 맞추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결국에는 관련된 사람들이 느끼고, 겪는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과 현재 사용 가능한 다양한 재료와 능력들을 연결 짓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 디자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반대로 디자이너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를 많이 제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과 산업을 많이 이해하고, 이를 설명해서 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과 개방적인 태도를 가진 훌륭한 팀이 있어야 한다.

명지병원 암통합치유센터 # 이미지 출처 gansam.tistory.com
예를 들어, 명지병원에서 암환자들을 위한 IT융합 시스템을 기획했을 때에도 이런 문제 의식과 다양한 기술들을 접목하는 넓은 시각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의료서비스겠지만, 공간 자체로서의 기능이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이 시스템 탄생의 기초가 됐다. 명지병원의 경우 맞춤형 조명과 음악, 아로마 등을 통해 해당 공간에서의 치유적인 기능을 높이고, 동시에 이를 개인화해서 기록하기 위해 적절한 IT기술을 접목했다. 이런 전체적인 기획을 실질적인 공간 내에서 빛나게 해 주는 건축 디자인이 잘 만났을 때 해당되는 시공간이 기능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치유 효과를 얻게 된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결과적으로 명지병원의 암 통합치유센터는 NFC(Near Field Communication) 기술을 기반으로 환자 개인에게 맞춤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다양한 색상의 조명과 음악, 영상, 향기 등이 환자의 감성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고를 확장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개념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융합은 시작된다. A에서 B로 변해가는 것은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옵션을 주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 기회를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융합은 많은 이해 당사자들과의 관계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줘야 시작될 수 있다. 이들이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통해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고, 다양한 형태로 공동 창조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서, 같이 호흡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와 디자인 정책가, 경영자 등에게 융합적 소양을 키우기 위한 몇 가지 충고를 하고자 한다. 융합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러나 만나고 대화하는 것만으로 진정한 융합은 시작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어떤 목표와 가치를 가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약간의 실패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실패가 결국 융합적 소양을 기르는데 가장 중요한 교훈을 선사할 것이며, 작은 성공은 융합을 몸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다.
글.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 소장,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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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융합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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