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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으면 행복해진다, 내 인생의 융합Ⅰ







음악은 오랫동안 한국대중문화에 이바지해 왔다. 1920년대 당시 상업적 문화 보급이 어려웠던 여건 속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 ‘사의 찬미’와 영화 ‘아리랑’이 있지 않았나.

그동안 시대도 많이 바뀌었다. 10년 전만 해도 아시아에서 K-POP 열풍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1990년대 후반 SM 이수만 대표가 아시아 제패를 내걸자 기자나 평론가모두가 그를 비웃었을 정도다. 과거 워크맨 시대에는 가사와 멜로디 위주로 떴지만 음악을 비주얼로 즐기는 유튜브 시대가 오자 K-POP이 대세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음악을 알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국문과를 나와서 대학원은 음대를 갔는데, 사실 왜 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웃음). 1980년대 당시는 사는것이 너무 암담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때 기분에 멋있어 보여서 시작한 것이 바로 영화판이었다. <장산곶매>는 운동권 독립영화를 만들던 단체로,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 결국 도망 다니고 쫓겨 다니다 보니 세월이 흘러 버렸다.

1993년에서 1994년 즈음 우연히 음악에 대한 글을 쓴 것이 반응이 좋아 음악평론가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한다. 어떻게 보면 시간의 흐름에 몸과 정신을 맡겨 지금의 위치에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지금의 내게서 음악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서 음악을 뺀다면 어떻게 될까. 그만큼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음악은 융합의 결정체 역할을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당신의 인생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면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음악과 그리고 영화 등을 많이 접하길 권한다. 그리고 음악 속에서의 이런 융합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포괄적인 접합점들로 인해 인생 또한 풍요로워질 것이다.












“ 학부 때 무슨 전공 하셨어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사연이 있다. 사회혁신 관련 일을 하고 있는 현재의 나와 역사(한국사)를 전공한 과거의 나와의 연결고리를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단어 하나로 표현하면 대부분은 수긍하는 편이다. 그 마법의 단어가 바로 융합이다.


역사라는 인문학 전공으로 졸업한 내게 한국사회는 꽤 냉정했다. 사회과학도 아니고 인문과학 전공자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입사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자의반 타의반 다른 전공이나 분야와 섞여야 생존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과 사회의 삶을 소위 통사적으로 배웠으니, 이제는 세계의 현재 이슈를 통시적으로 배워보고자 국제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서른 살에 운이 좋게도 유엔에 들어갈 수있었다. 처음에는 비즈니스를 끔찍이도 싫어했지만, 유엔에서 근무하면 할수록 비즈니스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 후 런던에 있는 경영대학원에서 비즈니스 뿐 아니라디자인 씽킹을 배웠고, IDEO의 인간중심디자인 툴킷(HCD Toolkit)을 활용해 해외 적정기술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음식은 섞으면 맛이 떨어지지만, 지식은 섞으면 살맛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자인 씽킹을 컨설팅하며 디자인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스토리텔링을 강의하고 동화책을 쓰고,국제 이슈와 적정 기술을 기획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는 나를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도 다양하다. 디자이너에서 문화기획자, 작가, 사회적 기업가, 적정 기술 코디네이터, 사회 혁신 컨설턴트까지. 어쩔 수 없어 시작한 융합이 이제는 내게 너무나 기대되고 즐거운 과정인 셈이다. 섞으면 섞을수록 행복하다.


*융합 관련해 도움이 될 추천 사이트와 책
사회적 임팩트를 위한 디자인 -  www.ideo.com/work/design-for-social-impact-workbook-and-toolkit
디자인이 어떻게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을까 - www.designother90.org
<소외된 90%와 함께 하는 디자인: 도시편> 2012,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2010 (에딧더월드)












두 가지 좌우명이 있다. 하나는 대학교 시절 교회에서 많이 듣고 부르던 복음성가의 제목인 ‘내일 일은 난 몰라요’다. 가사와 같이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고 하루하루 매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자는 의미다. 두 번째는‘ 조금이라도 남에게 보탬이 되는 인간이 되자’다. 디자인계에 몸담게 된 이후 ‘디자인계의 파이를 100배 더키우자’로 바뀌었다. 이를 은퇴할 때까지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디자인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한다.


산업공학, 인간공학, 그리고 공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쌓은 세상의 지식, 한국과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한 동서양 문화의 차이, 그리고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의 교수로서 창의적인 학생들과의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경험과 우수한 외국 교수들과의 협력을 통해 얻은 체험적 지식이 융합시대의 핵심 요소인 디자인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융합 에피소드로는 당연히 나와 완전히 다른, 그러나 같은 가치관을 가진 집사람과의 융합, 즉 결혼이었다. 완전히 다른, 보기에도 두 사람의 융합의 결과인 (저와 집사람을 절묘하게 반반씩 닮은) 두 아들이야말로 융합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융합적 소양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책을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관점으로 그리고 어떤 자세로 읽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느 책이나 융합적 소양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인터넷보다는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현장으로 가야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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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융합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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