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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람과 테크놀러지의 관계맺기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참 흐뭇하다. 서비스 디자이너 박지혜, 그녀 역시 함께 있는 사람을 흐뭇하게 하는
좋은 에너지를 가졌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테크놀러지의 관계맺기, 커뮤니케이션, 진화하는 서비스 만들기와 탱고를 즐기며 서비스 디자인을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그녀, 박지혜. 영국과 미국, 스페인과 한국 등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열정 가득한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로 사람들에게 따뜻하면서도 그녀만의 사랑 가득한 에너지를 전파하고 있다.






에너제틱하다, 똘똘, 열정적이라는 평이 많은데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타이틀이 뭐가 됐건 서비스 디자이너라고 생각을 하구요. 서비스 디자이너로서 제가 하는 일은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용하는지 간에 ‘물건과의 관계 맺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과 물건의 관계 뿐 아니라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어떤 컨셉 안에서 사용을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 환경 자체도 함께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콰미콥 kwamecop>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있어요. 디자인과 리서치, 개발을 한꺼번에 다 하는 회사예요. 50%는 외부 클라이언트 일을 주로 하구요 나머지 50%는 스타트업 Start-up, 즉 좋은 아이디어에 투자를 하고 있는데요 자체 프로젝트일 수도 있고 외부에서 온 프로젝트일 수도 있어요. 저는 최종적으로 여러 가지 디자인팀들이랑 일을 하면서 다양한 일을 한꺼번에 보고 있구요. 디자인 디렉터이지만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역할이기도 해요. <콰미콥>은 올해 5월부터 일을 함께 했어요. CEO인 콰미 kwame와는 예전 <피요르드>에서부터 알고 지낸 동료였구요. <콰미콥>은 런던, 리스본, 샌프란시스코 세 군데 있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도 샌프란시스코에 일이 있으면 디자인팀을 데리고 가서 클라이언트랑 일을 하면서 진행하기도 해요. 어떤 경우에는 회사에 컨설턴트로 들어가서 하나의 팀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구요. 그런게 다른 디자인회사랑 조금은 다른 것 같아요.
저희의 아이디어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저희끼리 펌을 만들기도 하구요, 저희가 투자자본이 있고 투자자를 유치를 할 수 있는 투자 펀드가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볼 때 “아, 이 아이디어 정말 좋다” 그러면 그 아이디어를 믿고 그 프로젝트를 성사를 하는 거죠. 지금 예를 들면 ‘임파서블 impossible (www. impossible.com)’ 프로젝트가 있어요. 영국의 슈퍼모델 릴리 코엘(www.leweb.co/2013/community/lily-cole)이랑 <위키피디아> 만든 지미 웰스와 같이 하는 프로젝트인데요. 음, 항상 받는 것만 하다 보니까 받는 것이 너무 쉽더래요. 그러면 주는 것을 하고 싶은데 나도 뭔가를 주고 싶다고. 그래서 순수한 네트워크를 만든거죠. ‘기프트 꾸러미를 기반으로 하자, ‘I Wish’라고 해서 누군가의 위시를 선물하자’
누군가가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서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는 거죠. 누군가의 위시를 누군가가 들어주는 거예요. 그 위시를 들어준 사람에게 ‘땡큐’를 하면 그의 감사가 소셜 커런시 Social Currency,화폐가 되는 것이구요. 페이스북에서 ‘좋아요’가 소셜 커런시인 것처럼 여기서는 ‘감사’인 거죠. 일단은 이런 식으로 소셜 네크워크가 형성이 되는 거예요. 어쨌든 커뮤니티가 가장 필요한건 공감대가 형성이 돼야 하고 뭔가 우리가 지향하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커런시가 필요한 것이구요. 그것이 게임 등의 포인트가 됐던 진짜 돈이 됐던 뭔가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 있어야 교환이 가능하고 그래야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땡큐’가 처음에는 그냥 게임처럼 “나는 땡큐가 10개가 있어”, “난 100개가 있어” 그런식으로 사람들이 자랑하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는. 그렇게 시작해서 나중에는 오프라인으로 가져오는 거죠. 사실 가장 좋은 디지털 서비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크로스오버 될 수 있을 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서비스 디자인을 사랑에 빠지는 과정으로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음, 제가 생각할 때 서비스 디자인은 사용자들한테 ‘진정한 가치’를 줄 수 있는, 그런데 제가 그냥 ‘진정한 가치’라고만 하면 굉장히 추상적이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가치는 예전에는 그 가치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모르는 가치라도 그 사람들의 행동을 우리가 관찰해서. 예를 들면 지금 녹음하는 이 녹음기만 보더라도 저와 이 기계와의 관계는 단순히 녹음도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우리 두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녹음을 하는 제품이잖아요. 서비스 디자인이란 어떤 공간이 됐던 공간에 따라서, 한 명을 인터뷰할 때와 여러 명을 인터뷰할 때의 서비스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콰미콥>으로 회사를 옮기고 오픈디자인 프로젝트를 약간 더 많이 하다 보니까 느낀 건 단순히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치를 찾아내서 주는 것도 있지만 가장 좋은 서비스 디자인은 사용자가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디자인, 그게 서비스 디자인이고 그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기도 하구요. 처음에 우리가 만나는 건 이 제품이 너무 좋아 보여서, 나와 이 제품의 관계가 뭔가 통하는 게 있어서 나중에 데이팅 하는 관계가 되는데요. 사용하는데 있어서 너무 좋다, 그런데 나중에 이게 여러 가지 서비스라든지 여기에 다른 서비스를 제공을 해서 제가 사용할 때 정말 저한테 맞는 서비스가 된다면 그게 사랑을 이어가는 트루 러브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사용자들한테 가까운, 그런 가치를 찾기 위해 테스팅을 많이 하고 노력을 하는 거죠. 그냥 겉에서 보이는, 단지 생각만 해서 나오는 그런 가치가 아니라 정말, 정말 필요한 가치가 뭔지, 아니면 그런 가치를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 수 있게끔 플랫폼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그 서비스는 진화할 수밖에 없어요.






스페인의 서비스디자인전문회사인 <피요르드>에서 서비스디자인 팀장을 역임했는데요. 그곳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피요르드>는 런던, 헬싱키, 베를린, 마드리드, 파리, 이스탄불,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세계 9개 도시에 오피스를 가지고 있는 회사예요. 저는 런던에서 4년, 마드리드에서 2년 있었구요. 리서치 하는 방법, 그리고 하나는 서비스 디자인을 디자인 하는 과정. 생각해보니 이 두 가지가 연결이 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리서치를 굉장히 좋아해요. 과학적인 탐구도 좋아하구요. 특히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 말고,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게 굉장히 많다고 생각을 해요.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그냥 답을 하지만 관찰을 하다보면 무의식 중에 하는 것들에 있어서 ‘어, 저 사람 왜 저것을 하지?’ 그 포인트를 캡쳐해서 그때 물어보면 사람들이 “아, 나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같이 생각하면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거예요. 무의식 중에 사람들이 행동하는 어딘가에서 제가 물어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공감대를 사람들하고 대화를 통해서 영감을 얻는 것, 첫째는 영감을 얻는 것이구요. 둘째는 제가 과학적인 리서치를 할 때는 그 바운드리 Boundary를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리서치를 항상 얘기를 하면 “오케이, 그럼 이 리서치에서 답이 뭐예요?” 라며 항상 A, B, C, D로 답을 원해요. 그러면서 그것을 가격으로 돈을 매길려고 해요. 그리고 고객이 생각하는 것은 “왜 내가 리서치에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를 해야 돼요? 당신들은 몇 년 동안 일을 했으면 노하우가 있을 거 아냐? 그러면 그것으로만 디자인 하면 안 돼요?” 라고 얘기를 해요.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하면 항상 비슷한 디자인만 나오겠죠. 특히 이건 마드리드에서 배운 건데요. 2년 동안 금융서비스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때 제가 클라이언트한테 말씀드린 건 “리서치는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마지막 바운드리를 알려줘서 이것을 넘어가면 이건 아니다 라고 알려주는 거죠” 라고. 사실 답만 구하는 리서치는 좋은 리서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과학도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잖아요.





전 세계적인 화두로 ‘융합’에 대해서도 관심들이 많은데요. 디자이너에게 융합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사실 글라스고우, 파리, 쾰른, 헬싱키, 밀란, 스톡홀름 등 유럽 6개 대학이 디자인 통섭교육을 위해 설립한 MEDes(Master       of European Design) 코스를 거쳤는데요. 글라스고우에서 3년, 쾰른에서 1년, 헬싱키에서 1년을 공부했어요. 독일에 있는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1년을 ‘프락티쿰 Praktikum’이라고 해서 인턴십을 해요. 많은 지역에서 대학가기 전 의무교육으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전공분야가 되어도 좋고 일단 일을 해요. 돈을 버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돈을 받지 않더라도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돈 버는 현실을 배우는 거죠. 그렇게 돈을 벌어보고 나면 ‘공부하는 게 쉽구나’를 느끼는 거예요. 저 역시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지?’, 그리고 ‘이것을 할려면 무슨 공부를 해야 되지?’를 많이 고민을 했는데 그래서 그때 나도 그럼 이 일을 해봐서 정말 내가 서비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안 하고 싶은지를 미리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서비스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게 실제 제가 사회에 나가서도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미리 테스트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50군데 정도 디자인 회사에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2군데 정도 왔어요. ‘그래, 그럼 일단 답이 2군데 밖에 안 왔으면 다음번엔 300군데 정도 보내면 답이 좀 더 오겠네’ 그래서 그렇게 보낸 것 같아요. 그랬더니 꽤 많이 왔어요. 답은 15군데 정도 왔구요 그 중에 정말 좋은 대기업에서도 오고. 뉴욕의 디자인 에이전시 에서도 인턴십을 했는데요. 미국은 오픈을 많이 하고 젊은이들을 믿는 문화가 있어요. “저는 모델링도 할 줄 알고 리서치도 할 줄 알고 그리고 리서치 펌도 할 줄 안다”고, “그래서 서비스 디자이너, 디자인 매니지먼트로 일하고싶다”고 말했죠. 그런데 이것이 제가 헬싱키를 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죠. 헬싱키 학교가 왜 대단하냐면 그냥 디자인학교로서 프로젝트를 하지 않아요. 디자인학과, 경영학과, 그리고 공학과 이렇게 세 전공의 학과가 모여요. 기업들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면 항상 학생들을 활용해요. 사실 학생들은 클라이언트가 있는 것 하나라도 굉장히 동기가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그 프로젝트를 하는 것에 있어서 클라이언트가 오면 클라이언트 미팅을 디자인, 경영학, 공학 이렇게 세 학생이 그룹을 항상 짜요. 그렇게 짜져야 하구요. 그리고 기업 설명을 함께 받으면 우리가 모여서 프로젝트 미팅을 할 때 포커스 자체가 같이 맞춰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한명은 디자인을 해야 되고 또 다른 한명은 이것으로 비즈니스가 되겠어? 다른 한명은 도저히 이것은 의미가 없어? 그때 이미 우리가 사회에 나가면 겪어야 되는 모든 것들을 거기서 다 미리 겪는 거예요. 서로 자기 것만 아니까, 자기 얘기를 피력하고 싶어하는 가운데 그 사이에서 우리가 뭔가 밸런스를 맞춰가면서 디자인을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 정말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아, 정말 디자이너는 그냥 디자인만 하면 되는 게 아니구나’,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구요. ‘일단 제품이 나오려면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야 되는구나’를 그때 경험했죠.
그리고 그때 자신이 어떤 타입의 사람이냐, 굉장히 유명한 성향 조사 같은 것인데요. 그 테스트를 했는데 저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 성향은 지휘자, 아이디어, 채찍자였어요. 그래서 내 속에 내재된 이런 성향들을 잘 살려서 매니지먼트 프로젝트를 하면 괜찮겠다,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흔쾌하게 저한테 “그래? 그러면 내가 클라이언트를 너한테 소개해 줄테니 그 사람을 한달 동안 매니지먼트 해봐” 그러는 거예요. 뉴욕에는 유명인들 초상화들만 찍는 포토 에이전시들이 굉장히 많아요. 포토 에이전시들을 저한테 소개해 주더라구요. 마침 거기서는 뭔가 새로운 캠페인을 하는 웹사이트를 열고 싶어 했어요. 어머니와 아들이 하는 에이전시였어요. 어머니는 굉장히 트레디셔널하고 구찌, 프라다 막 이런 스타일이었고 치와와 안고 다니는 그런 분이셨구요. 굉장히 클래식한 분이세요. 반면에 아들은 모토바이클 타고 다니고 히피 스타일의. 아들이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우리는 굉장히 전통이 오래됐다.그래서 너무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새로운 캠페인을 하고 싶은데...” “그러면 게릴라 캠페인을 하면 어떨까요?” 이후 3개월 동안 정말 재밌게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시각 디자이너 한명과 함께 그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저는 그때 그 경험들, 저를 그렇게 믿어준 게 고맙고 그때 저의 자신감이 많이 플러스가 된 것 같아요. ‘아, 그냥 하면 되는구나.’ 주니어일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실패를 가장 두려워해요. 어린 디자이너들은 사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되잖아요.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실패를 두려워하게 돼요.
그냥 저를 던져놓고 ‘그래, 너 알아서 해봐’ 라고 했던게, 물론 그렇게 던져놔서 안 되는 경우도 사람에 따라서, 성향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한테는 스스로 뭔가 찾아가서 스스로 내가 뭘 만들지 않으면 그것으로 안녕인 거죠. 그때도 <엔진>에서 서비스 디자인 인턴십을 할까, <피요르드>에 인턴십을 할까, 아니면 일본을 갈까? 그렇게 여러 군데를 생각하다가 삼성은 늦게 지원해서 안 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피요르드> 제의를 수락하자마자 삼성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했죠. 고민을 하다가 피요르드에 전화를 했어요. 솔직한 것이 가장 좋은 거니까. 전화를 해서 “죄송하지만. 그리고 나를 일하게 해주신 것 굉장히 감사하지만 삼성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물론 제가 생각할 때는 저는 대기업보다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인턴십은 대기업에서 하는 게 제가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기업이 나한테 맞을지 아닐지 지금 나 자신을 테스트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얘기를 하고 “인턴십이 끝나고 나면 <피요르드>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피요르드>에 가게 되면 저에게 좀더 좋은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더니 너무나 흔쾌하게 당연하다고. 가서 열심히 하고 오라고. 그래서 저는 런던에 있는 <삼성 디자인연구소>에서 인턴십을 하고 <피요르드>에 갔죠. 삼성 인턴십은 유럽에서도 굉장히 유명해요. 그리고 프로그램도 굉장히 좋아요.




영국과 스페인, 미국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해외에서 글로벌 디자이너로 활동하는데 어떤 장점이 있나요?


열정? 근면? 글쎄요, 전 제가 한국인이냐, 아니냐라는 고민은 특별히 안하고 살아온 것 같아요. 물론 사람과 관계 맺을 때, 예를 들면 사람을 좀 잘 사귀는 편이예요. 공감대, 음 다른 사람한테 공감대를 많이 보여준다고 해요. 저는 클라이언트들한테 절대 첫마디로 ‘노우’라고 말하지 않아요. 일단은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듣고 “아, 그럼 이래서 이렇게 말하시는 거예요?”라고 어떻게 보면 제가 리서치 하는 것이랑 비슷해요.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라고 의중을 물어봐요. 대부분 클라이언트들이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얘기를 했을 때 “노우” 라고 대답을 하면 그들은 기분이 나쁜 거예요. 대신 그렇게 하지 않고 “왜 그것을 원하세요?”라고 물어보고 “아, 이것을 원하시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떠세요?”라고 다른 답안을 내놓으면 그 사람이 이렇게 선택을 할 수 있잖아요. 아니면 그 사이에서 다른 옵션을 만들 수도 있구요. 그런 거.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들이 저랑 얘기를 하면 “우리를 많이 도와줄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많이들 얘기하세요. 그리고 제 삶이 한 가지만 하지 않고 유학 와서도 그렇고. 친구들도 굉장히 다양한 다문화적이었어요. 거기다가 대학도 다문화, 다양한 과목들이 좋아서 쾰른에서 1년, 헬싱키에서 1년을 공부했고 그 이후로도 뉴욕에서 일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일을 많이 했어야 했거든요. 브라질에서 특히 많이 했었고, 그렇게 하면서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것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디자이너로서 가장 위험한 것이 ‘에고 ego’거든요. 에고가 너무 없으면 자신감 있는 디자인이 안 나오기도 하지만 뭔가 다른 목표가 필요하잖아요. 저는 그 목표가 아까 제일 처음 말씀드린 ‘가치’라고 생각을 해요. ‘사용자 가치’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제 에고는 자연스럽게 사라져요. 왜냐하면 디자인이 됐던 뭐가 됐던 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게 사용자 가치에 말이 돼?’라고 물어보면 어쨌든 답은 좁혀질 수 밖에 없거든요. 이런 점들이 클라이언트랑 얘기 할 때 굉장히 큰 무기가 돼요.





아이디어가 잘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세요?

머릿속은 굉장히 넓고 생각할 게 많잖아요. 반면에 두뇌는 너무 작아요. ‘스페셜 메모리’라고 저는 그 스페셜 메모리가 좀 뛰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머릿속에 이렇게 뭘 생각을 하면 갇힌 기분이 들어요. 일단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놔야 해요. 저는 큰 벽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뭐가 안 풀리면 내가 안 풀리는 물건들을 다 벽에 둬요. 일단 크게 놓고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떠오르는 그런 경우가 있구요. 그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열심히 트레이닝을 시키는 그런 때구요. 그렇게 해서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구요. 정말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에는 탁구를 친다거나 해요. 탁구는 저에게 향수예요. 제가 어릴 때 집에 탁구대가 있었어요. 오빠가 있는데 주말에는 저희 네 가족이 항상 탁구를 쳤던 기억이 나서 좋아해요. 또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에는 얘기를 해요. 친구들이랑 그것에 관해서. 우리는 그것을 ‘사운딩 보드 Sounding Bord’라고 하는데요. 누가 얘기하면 돌아가면서 다른 사람도 얘기를 할 거잖아요. 그렇게 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이것이 잘 되는 동료들이 몇몇 있는데 그래서 또 제가 작년부터 시작한 것이 있는데요. 항상 녹음을 시작해요. 그럼 나중에 다시 들으면 좋은 얘기들이 들려요. 물론 저도 포스트잇에 메모를 해서 붙여놓는데요. 뭔가 생각이 날 때마다 쓰는 거예요. 이렇게 쓰고 나서 나중에 문득 그냥 보면 ‘아, 그래서 이렇게 되는 거구나’ 그렇게 되게. 그러니까 ‘비주얼 마인드’라고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을 그냥 시각적으로 보는 거죠.







외교관이 어렸을 때 꿈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 디자이너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나요?

아직도 외교관은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법을 공부할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외교관에서 바뀌게 되었냐면요, 영국은 중학교 과정부터 디자인 과목이 있어요. 디자인 선생님 중 한분이 RCA 출신이세요. 제가 열여섯살 때, RCA 전시를 보러 가게 되었는데 그때 너무 놀랐어요. ‘아, 이게 디자인이구나.’ 어쨌든 제 삶에 있어서 그 결정이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중학교 1학년때 영국으로 유학 온 게 첫 번째 결정이었고 중학교 3학년 때 RCA 전시를 본 게 두 번째 중요한 결정이 되었구요. 그때 본 것 중에 아직도 생각나는 것이 있어요. 책상이었어요. 책상 위에 가죽으로 된 데스크 꽂는 것이 있는데 이게 질문카드예요. 꽂으면 이게 인식을 해서 시각 장애인들에게 하는 것처럼 질문을 읽고 답을 얘기해 주는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서비스 디자인인거예요. 카드를 하나 골랐는데 ‘What will I become when I grow up?’ 이었어요. 그 많고 많은 카드 중에 그냥 카드 하나를 뽑은 게 그 카드였어요. 일단은 꽂았는데 ‘디자이너’라고 나왔어요. 그런데 사실 어떻게 보면 RCA 전시였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대부분의 답이었겠죠.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저는 ‘그게 내 숙명이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서비스 디자인은 쾰른대에 가서 버깃 마거 교수랑 공부를 하면서 처음으로 알았어요.







개도국 어린이들에게 디자인을 통해 삶을 개선하고 교육하는 프로젝트 등 디자인을 매개로 사회적 기여를 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이예요. 개발도상국의 ‘드림플라이 dreamfly (www.thedremfly.org)’라는 프로젝트예요. 너무나 재밌고도 보람된 프로젝트이구요. 우마이마 멘트로 Umaimah Mendhro 라는 하버드 출신의 파키스탄 여자분인데요. 파키스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꾸는 꿈을 만들어주고 싶었대요. 그래서 나온게 ‘드림플라이 dreamfly’라는 비영리기구예요. 그리고 학교를 세우기 시작해요. 특히 그녀는 분쟁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그녀가 세운 학교는 무슬림이랑 힌두학생들이 같이 학교를 다녀요. 들어가는 문은 다르지만. 그래서 무엇을 했냐면 컴퓨터랩을 세웠어요. 컴퓨터는 컴퓨터 하나만 사용해야 하는 건데 컴퓨터 랩에는 무슬림과 힌두학생들을 섞어놓는 거예요. 이 드림플라이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의 꿈이 굉장히 추상적인데요 그래서 제가 지금 하는 것은 이것보다 한단계 더 나아가서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에 있는 멘토들이랑 연결시켜주는 멘토십 프로그램이예요. 6개월 동안 이 멘토십을 통해서 “정말로 너가 하고 싶은 꿈이 그 꿈이 맞어? 그리고 이 꿈이 정말 너가 원하는 꿈이야? 그리고 이 꿈을 어떤 식으로 너의 환경에 맞게 우리가 바꾸어갈 수 있을까?” 제일 마지막으로 “너가 너의 꿈을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왜 그 꿈을 이루고 싶은지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그것에 대한 계획을 짜보자, 내가 너를 도와줄께” 까지. 그리고 ‘드림 저니’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꿈의 여정’인데 모든 사람들에게 “꿈이 뭐였어요?” “지금 꿈을 이루고 계세요?” 라고 꿈을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왜냐면 어릴 때 생각했던 꿈이랑 지금 현재가 다르다고 보통은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또 참 특이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꿈을 꼭 두 개씩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직장과 관련된 꿈이예요. 하나는 그냥 막연하게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었던 꿈이요. 누군가가 질문을 해주면 분명히 뭔가 재미난 스토리들이 나와요. ‘꿈의 여정’이 뭐냐면 컨셉이 지도인데, 멘토와 멘티가 함께 여정을 같이 나가는 거예요. 멘토가 왜 그 꿈을 꾸었는지 지금 자기의 자리를 재조명해볼 수 있는 것을 함께 생각하면서. 그래서 제일 처음에 시작을 할 때 멘토들은 자기의 꿈의 여정을 먼저 보여줘요. 내가 원하는 꿈을 이미 이룬 사람들의 여정을 따라가보는 거죠.멘토와 멘티 둘다 선택을 해야 되요. 선택을 하면서 여정을 따라가 보면서 멘토의 어떤 갈림길에서는 멘티들이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는 거죠. 나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까, 아니면 나는 다르게 했을까, 만약 저한테라면 “왜 하필 영국을 가기로 했어요? 그래도 나중에 법을 하고 싶지 않았나요?” 그렇게 멘토와 멘티가 서로를 알아가는 거예요. 서로를 알아가는 제일 처음은 영감이예요. 내가 꿈을 꿨을 때 그 당시의 느낌, 꿈을 리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는 그런 그림, 키워드들을 적어서 서로의 공통된 점을 찾는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멘티의 여정을 찾는 거예요. 그러면서 멘토도 생각을 하는 거죠. ‘얘는 이런 것 때문에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렇게 다시 스스로를 재조명 해 볼 수 있는 그런 시간.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한국적 디자인, K-DESIGN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 어떤 노력을 더해야 할까요?

음, 군더더기가 좀 더 줄어들어야 할 것 같아요. 한국은 선의 미학이잖아요. 그리고 절제의 미학. 우마에마의 말을 인용하자면 ‘자기의 루트로 돌아가라’고 해요. 우리는 스스로를 항상 재개발하잖아요. 재개발하고 그게 발전이라고 생각하고요. 내가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서 내 뿌리를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내가 왜 이렇게 발전해 나가고 싶은지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를 하고 난 후에. 디자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꼭 우리의 전통적인 선을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인 것에 대한 마음가짐, 우리의 전통을 일단 이해를 하고 왜 우리가 그런 디자인에 더 끌리는지이해를 한 다음에 디자인을 한다면 그게 미니멀이던 모더니즘이 되었던 뭐가 되었던 뭔가 우리만의 것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조만간 스타디자이너의 탄생이 예견되어 보이는데요.

사실 디자인이라는 건 오거나이제이션 Organization 이라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게 디자인이 되었던 기업이 되었던 말이죠. 오가닉 Organic 이라는 말의 어원을 보면 몸속에 있는 장기도 오가닉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오가닉이 어떤 식으로 같이 일을 하느냐에 따른 건데 사실은 우리 몸속도 마찬가지로 모든 기관들이 각각의 기능과 능력을 갖고 있잖아요. 저는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혹 누구는 이것만 해야 되고 저것만 해야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장기처럼 모든지 뭔가 룰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필요한데 그 안에서 유연할 수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뇌가 많은 장기들하고 연결이 되지만 뇌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이처럼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이 안 들어요. 그래서 저는 스타디자이너를 안 믿어요. 하지만 저를 또 스타디자이너로 예견해 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하.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떤가요?

저는 그냥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콰미콥>에서 일 하는 것도 너무 좋은 게 반은 클라이언트 일이고 반은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거든요. ‘드림플라이’도 그렇고 그게 너무너무 좋고, 너무 많은 얘기도 하고 싶고 너무 많이 물어보고도 싶구요. “이게 좋아? 이런 식이 좋아? 이거 이해가 돼? ”라고 물어보고 같이 디자인도 하고 싶구요. 또 무언가 작은 변화를 주고 싶어서 탱고를 배우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가정을 갖고 싶구요. 디자인은 사실은 커뮤니케이션이예요. 그게 제품이 되었든, 서비스가 되었든. 제가 디자이너로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거라면 탱고는 제 몸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구요. 저도 얘기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좋은 디자인으로 서로 연결되기가 참 좋다고 생각을 하구요. 또 거기 연장선상이 되는 게 예전에는 제가 부르던 음악이라는 분야를 통해서였다면 지금의 탱고도 마찬가지인 거죠. 탱고는 정말 소리 없는, 많은 사람들이 탱고는 관능적이고 센슈얼 하고 어쩌구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그냥 커뮤니케이션이예요. 저의 탱고 선생님이 그러세요. 탱고가 ‘허그’래요. ‘누군가와 하는 허그’.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허그를 해 보래요. 그러면서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거죠.







지혜씨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탱고 출 때가 제일 행복해요. 하하. 두 가지가 있는데요. 탱고 출 때랑 제가 발표할 때 굉장히 행복해요. 발표할 때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지금처럼 얘기를 하는 것도 행복하구요.






글. 한국디자인진흥원 정보홍보실 김향희 기획전문위원/ 사진. 디자인전략연구실 김진우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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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디자인 #서비스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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