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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 타자를 알아가는 과정 _ 나조영

다문화 - 타자를 알아가는 과정


글  나조영


© heech moon

일간지 주말 섹션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기사는 식도락과 관련된 것이다. 인체 기관 중 가장 간사한 것이 혀이기도 한데, 주말을 맞이해서 맛있는 집을 소개하는 기사는 언제나 우리의 미각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 식도락과 관련된 예전의 기사들은 우리가 먹는 일상적 음식이나 향토 음식들 중 원조집을 소개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 등장하는 기사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요즘 식도락을 다루는 기사들은 유럽중심의 음식들에서 에스닉 푸드(Ethnic Food)에 이르기 까지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외국 요리들과 레스토랑들을 소개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러한 기사들은 단지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요리와 맛과 함께 딸려 들어오는 타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같이 소개한다. 홍대 앞에서 만나는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듯한 기사는 대부분 홍대 앞의 일식당과 관련된 것들이고, 이태원과 그 주변의 레스토랑들을 소개하는 기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관심은 가리봉동의 조선족 거리에서 맛볼 수 있는 중국음식과 안산의 외국인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원조 동남아 음식까지 확장된다.

타문화를 체험하는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자극적인 방식은 그 나라 혹은 그 민족의 음식을 접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인 독일에서 케밥은 이제 터키의 음식을 넘어 독일 젊은이들이 영양간식이 된지 오래이다. 피시앤칩스에 길들여진 영국인의 퍽퍽한 입맛에 새로운 자극을 준 것은 인도의 커리와 탄두리라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요리는 전세계 모든 도시에 펴져있고, 세계인들은 광둥요리, 사천요리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 홍콩식 파리식 뉴욕식 서울식으로 변화된 중국요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7,80년대 뉴욕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즐겨먹던 요리는 한국음식이기도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뉴욕에 위치했던 한 한국 레스토랑은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 그리고 늦은 영업시간으로 뉴욕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여겨지기도 했다. 지금은 다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성장한 이 예술가들에게 한국하면 이 레스토랑을 떠올리는 것도 한 문화와 음식이 얼마나 자극적으로 타문화에 대한 인상을 결정 지우는 지를 알려준다.

한국에서 최근 외국 요리에 대한 관심은 다만 음식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이제 외부, 타자로 열려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1989년 해외여행의 자유화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타자의 문화를 접하게 된 것이다. 배낭여행이나 유학, 혹은 해외 출장 길에 먹었던 엑조틱한 음식에 대한 기억을 서울에서도 다시 한번 체험해 보고 싶다는 욕망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수요를 창출하고, 이것은 단지 음식에만 머물지 않고 그 레스토랑에서 그 문화를 접하고 싶어하는 욕망으로까지 확장된다. 또한 다양한 경로로 한국에 거주하게 된 외국인들이 가장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 역시 자신들이 즐겨먹던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을 차리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 사회 역시 다양한 경로로 글로벌화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단지, 에스닉 푸드라는 트렌드를 넘어 우리가 타문화, 즉 타자를 어떻게 만나야 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외국요리라고 하면, 고급스러운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를 떠올리며 이태원이나 청담동 혹은 특급 호텔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와 같이 생활하는 다양한 인종들의 음식들이 이미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도 한 것이다.

지난 5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다문화지표개발연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급격하게 다문화 사회로 변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야기되는 문제점들에 대응하고 새로운 사회 통합의 가치를 개발하기 위해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다문화사회지표’라 함은 국민과 이주민의 다문화에 대한 의식수준을 파악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개발된 표지일 뿐만 아니라, 문화정책관련 정부 기관 및 단체가 다문화 정책 및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있어 자신들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을 측정하고,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다문화’란 동일한 혈통과 문화를 추구하던 단일 문화에 또 다른 문화들이 통합되어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상태를 지칭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다문화는 거시적으로는 사회 구성의 다원주의적 다민족적 진화를 거치게 되며, 미시적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의 정체성이 다원적이며 혼종적으로 변화되는 양상을 띄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다문화 사회’란 국적 민족 인종 등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지칭한다고 정의한다.

이 보고서는 다문화지표 개발을 위해서 다문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 논문과 해외 정책 동향 그리고 한국의 다문화에 대한 현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외의 다문화 정책에 대해서는 구미의 다문화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와 유사한 문화적 조건을 갖고 있는 일본과 대만의 다문화 정책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미국의 다문화 정책이 1950년대까지 ‘용광로(melting pot)’라는 개념아래 동일한 미국의 가치를 강조했다면, 이제는 내용물이 제각각 그 맛을 그대로 보존하는 '샐러드(salad)'로서 다문화를 인식하고 그에 따른 문화 정책을 펼친다는 것이다. 즉 다양한 인종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미국적 가치 아래 통합되는 것을 강조했던 정책에서 벗어나, 이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이 제각각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본래적인 문화 다원주의 정책으로 이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과정도 소개한다. 보고서는 한국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된 시점을 1990년대 산업연수생 제도의 시행으로 보고 있다. 이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 외국인이 귀화하거나 거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단지 개인적인 조건의 변화일 뿐 그러한 결합이 한국 사회를 다민족 사회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고 본다. 오히려, 90년대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유입된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 사회를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로 변화시켰다고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화된 농촌 총각들의 결혼 문제는 외국에서 신부들을 수입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가정들이 한국 사회를 농촌에서부터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로 변화시켰다고 언급하고 있다. 부족한 노동력의 수입을 통해서 야기되는 다문화 사회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사회의 어떤 단면을 떠올리며, 신부 수입은 80년대 일본의 농촌에서도 야기된 동일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보고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매우 양가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단일 민족이라는 관념이 강해 고유하고 유일한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 타문화에 대한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가 부족하다고 우선 진단한다. 그러나 소비 수준이 높아지고 교육과 해외여행의 경험이 확대되면서, 젊은 계층과 고학력 계층을 중심으로 문화 다양성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개방성이 소위 선진국에 편향된 경향을 강하게 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언급은 오래 전에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동남아 노동자로 분했던 개그맨이 외국인 남편도 백인이 아니면 외국인 프리미엄이 붙지 않는다며 우스개 소리를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러한 인식에는 동양인이면서도 백인적인 것을 선망하고 자신이 백인이라는 환상을 갖는 바나나 정치학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이 보고서는 또한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 대해서도 진단하는데, 한국의 다문화 정책이 과거 시혜적이고 온정주의적 태도에서 엄격한 체류질서를 확립하고 사회통합을 중시하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자국내 노동자를 보호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통제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보고서는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서 특이할 만한 사항으로 외국인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뿐 다문화 사회에서 중요한 문화적 차이에 대한 본래적 이해에 기반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다문화 정책들이 외국인에 대한 인권과 문화권 존중이라는 본래적인 개념을 반영하기 보다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시적인 프로그램들만 추진된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정책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적응하기 위한 한국어 강좌와 같은 프로그램은 존재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외국인, 외국인 노동자관련 프로그램에서 노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외국인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은 그 근본 취지야 서로 알아가는 문화적 장을 만들자는 것에 있지만, 내용을 찬찬히 살펴 보면 모두다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인, 한국적인 것들에 대해서 절대적인 사랑의 고백을 강요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서 한복을 입고 김치나 홍어회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는 드디어 그들을 한국인들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한국을 너무 사랑하는 회교도에게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우리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이 110만 명을 넘어섰고, 최근 귀화한 외국인이 공공기관의 사장으로 입명되기도 했다. 이제 단순히 외국인은 우리와 다른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삶은 영위하고 그 조건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타자에 대한 인식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언제나 양가적이다. 선진국 중심의 선호도와 개방성은 단지 경제적 문제를 떠나 인종적 차별에 이르기 까지 한다. 오래 전에 해외동포 관련 법규를 만들 때, 구미 지역의 동포와 중국 및 중앙 아시아 지역 동포들에 차별조항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또한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흑인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할 줄 아는 백인을 외국어 학원에서 선호한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타자를 알아가는 과정으로서 타자를 우리의 일부로 맞이하는 태도가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타자에 그들을 끼워넣고 그들을 평가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부야베스(bouillabaisse)와 태국의 똠얌꿍(ต้มยำกุ้ง Tom Yum Kung) 사이에는 어떤 문화적 위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의 위계를 결정하는 우리의 그릇된 문화적 인식일 뿐이다.


나조영_문화연구 및 문화 인류학 전공. paul.jy.nah@googlemail.com

문화 인류학적 시각으로 동시대 사회문화현상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트렌드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지만, 그 트렌드를 쫓아 가기 보다 사회 문화를 분석하는 틀로 삼고자 할 뿐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적용 전유 가능한 또 다른 시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Tag
#다문화 #타자 #외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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