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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제부터 진짜 유망직종은 농부?! _ 박성윤

[일본] 이제부터 진짜 유망직종은 농부?!


글  박성윤, 사진 Paul April


어쩌면 20세기는 감각보단 지능, 감성보단 이성, 감정보단 합리, 직관보단 논리, 창조보단 분석, 상상보단 비판, 총업보단 분업 등 좌뇌형 인간에게 적합한 환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렇게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따져 들고 좌뇌형, 우뇌형으로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20세기적 발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21세기는 어떤 업종과 직업이 주류가 될 것인지 궁금하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농업 관련 붐을 들여다보면 그간 젊은 인력들이 치중해왔던 공업, 상업, 금융업, 서비스업 등에서 눈을 돌려 줄곧 외면해왔던 농업, 수산업, 축산업의 필수 불가결성을 인정할 시기의 도래가 머지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림 1. 일본의 농촌 풍경

최근 프랑스관광협회가 선정하는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 프로젝트가 전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그와 관련한 가이드북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가 하면, 파리의 도회 생활에 염증을 느낀 파리지앵을 비롯해 유럽 곳곳에서 귀농・귀촌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시부야 센타가이(センター街)를 장악한 채 요란한 패션은 물론이고 튀게 염색한 헤어스타일과 짙은 메이크업,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요상한 은어 등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별난 ‘시부야갸루(渋谷ギャル)’들이 주체가 되어 아키타(秋田)에서 농사를 짓는 이벤트를 열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농사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도회의 화려한 패션으로 치장하고 벌레나 거머리에 꺄~ 꺄~, 기겁하기 일쑤인 그녀들이 여름 내내 땡볕 아래서 직접 농사를 지은 것도 대견한데, 하물며 이번 가을에는 직접 추수한 시부야미(渋谷米)을 선보인다는 흥미로운 뉴스다. 언제나 그들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일본 미디어들도 앞다투어 그들의 농활을 취재하고자 전쟁을 벌일 정도니 대형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집 베란다에서 야채를 재배해 소개한 블로그가 엄청난 히트 수를 자랑하며 인기를 얻고, 백화점 옥상에서 야채를 재배하거나 양봉을 하는 획기적인 뉴스가 들리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농업 관련 이벤트가 열리고, 각종 잡지에서는 ‘산으로 갈까? 바다로 살까?’ 같은 재치있는 제목을 붙여가며 귀농・귀촌이나 다운시프트적인 라이프를 특집으로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 쿠니타치점과 에비수점에 이어 지난 7월 1일, 신쥬쿠3쵸메(新宿3丁目)점을 선보인 ‘노카노다이도코로(農家の台所)’라는 이름의 야채 전문 레스토랑 오픈 소식까지 더해져 도쿄는 농업 붐의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다.

특히 노카노다이도코로는 최근 방송이나 잡지 등 일본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수의 미디어에서 핫이슈로 소개될 만큼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고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와 관심도 높은 데다 그 컨셉트도 매우 이색적이다. 신쥬쿠 이세탄 백화점 건너에 대칭적인 글래스 커튼월 구성으로 근미래적인 이미지를 가진 빌딩 4층에 위치한 노카노다이도코로는 무엇보다 20~30대의 젊은 층들이 즐겨 찾아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농가의 부엌’라는 뜻으로 점장인 무라타(村田)씨가 이야기하는 레스토랑의 컨셉트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진다.

“농업 개혁을 위해 설립된 ‘쿠니타치 팜(国立ファーム)’이라는 회사에서 프로듀싱한 이곳은 간단하게 말해 농가(農家)가 주역인 레스토랑입니다. 일종의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려 색다른 재배법으로 맛있는 야채를 키워내는 농가의 농민들말입니다.
자, 가게 천장을 한 번 보실래요? 저기 걸린 것들이 바로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저희와 교류하고 있는 지역의 농민들 각각의 캐릭터이고, 마치 전국시대 무사 가문의 문장(紋章)처럼 각 농가의 문장을 만들어 걸어두었습니다. 또 선거 후보 포스터처럼 농민들 실제 모습을 촬영해 벽에 붙어놨지요. 이분들이 없으면 절대 안 되는 곳이 바로 저희 레스토랑이니까요.
저희와 관련된 농민들은 유기농 재배로 몸에 좋은 각종 비타민 성분을 많이 함유한 오가닉 야채를 키워 비싼 값에 팔아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잡초를 뽑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서 밭의 흙을 부드럽게 만든다거나 염수를 사용해 일부러 채소에 스트레스를 줘서 단맛을 강하게 한다거나 해서 기존의 농사 상식을 깨고 새로운 재배법을 발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지 강한 젊은 농민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농산물은 주로 원산지의 생산자로부터 중간 유통이나 농협 등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게 되는데, 저희는 농산물 생산자, 즉 농민으로부터 직접 공급받은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들로 개성적인 메뉴를 선보이고 있지요. 또한 어떤 과정을 통해 야채가 우리의 입 속으로 들어오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채소의 좋은 점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참, 산지직송이라고 해서 유통 마진이 빠지니 다른 곳보다 저렴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수많은 실패를 거치면서 새로운 재배법으로 시도한 결과로 얻어지는 색다르고 좋은 채소가 절대적으로 소량이고 그 과정에서 농가의 투자비도 많이 들기 때문에 이미 저희가 그들에게서 받아오는 채소 가격은 도매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꽤 비싼 편입니다. 그래서 점장인 저도 놀랄 정도로 음식 가격도 비싼 편이고요. 효율성이나 경제성, 일반 논리와 상식 선에서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노카노다이도코로란 바로 이런 곳입니다.”

또 무라타씨는 새까맣게 탄 자신의 팔뚝을 내보이면서 자신을 포함한 레스토랑의 모든 직원들이 전국 곳곳의 농가를 누비며 주 2회, 하루 9시간 이상, 실제로 농사를 지어보고 농업이나 농가의 어려운 점들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체험을 통해 직원들의 식재에 대한 고집이 남다를 뿐 아니라 그저 식재를 넘겨 받아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는 일반적인 레스토랑의 직원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무래도 농가에서 직접 농민들과 부대끼다 보면 스스럼없이 친해지기 마련이고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채소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저의도 물론 깔고 있을 것이다.


그림 2. (왼쪽) ‘밭의 아이돌(畑アイドル)’ 포스터, (오른쪽) ‘걸 팜(Girl Farm)’ 포스터

이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어떤 채소와 과일 등 농작물을 취급하는지 널리 알리기 위해 손님을 대상으로 농업 이벤트도 심심찮게 열고 있는데, 지난 여름에는 옥수수밭 주말 농장을 개최해 신청자만 수백 명이 몰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뿐이랴? 치바의 젊은 농사꾼들을 모아 ‘밭의 아이돌(畑アイドル)’이라는 농업청년단을 결성해 농업 이벤트를 열기도 하고 농사에 흥미를 가진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야마가타(山形)에서 농사를 체험할 수 있는 ‘걸 팜(Girl Farm)’이라는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지금 일본 농업 붐의 최선두에 쿠니타치 팜과 노카노다이도코로가 있는 것이다.


그림 3.
(왼쪽) 노카다이도코로가 위치한 근미래적 이미지의 빌딩
(오른쪽) 입구에 위치한 전통적인 나무 간판


그러면 이 즈음에서 개성 만점의 노카노다이도코로 레스토랑의 구체적인 구성과 메뉴가 슬슬 궁금해질 터. 초현대식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일본의 전형적인 농가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격자 문양의 나무 문과 가게 이름이 적힌 나무 간판이다.


그림 4.
(왼쪽) 일본 방방곳곳을 돌며 어렵게 찾아낸 특산물 코너.
(가운데) 각종 채소과 과일 씨앗, 작은 농기구 등을 판매하는 코너.
(오른쪽) 희귀한 종류의 특선 브랜드 야채나 과일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야오야(八百屋) 코너.


그리고 일본 방방곳곳을 돌며 어렵게 찾아낸 특산물 코너와 각종 채소와 과일 씨앗, 작은 농기구 등을 판매하는 코너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슈퍼마켓이나 일반 시장에서 쉽게 손에 넣기 어렵거나 희귀한 종류의 특선 브랜드 야채나 과일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야오야(八百屋) 코너가 나온다. 매일매일 농가로부터 공수되는 야채들을 언제나 최상의 신선도로 유지하기 위해 코너 전체를 냉장 시설로 꾸민 점이 인상적이다.


그림 5.
(왼쪽) 미래 농가의 모습을 상상해 재현한 사이버 바.
(오른쪽) 사이버 바의 한켠에 파파야 나무를 실험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다음은 미래 농가의 모습을 상상해 재현한 사이버 바가 나온다.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미래로 여행이라도 온 듯 미래적인 이미지로 충만한데, 무엇보다 사이버 바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유리관 속에서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파파야 나무. 실제로 유리관 내부의 온도와 습도 등을 조절하면서 실험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여기에 손님들이 밭의 흙이 가진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바닥을 푹신푹신한 감촉으로 마감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림 6. 점내에서 채소를 직접 재배하고 있는 미니 하우스.

착시 현상을 일으킬 듯한 거울 벽면 앞에 서면 자동문이 열리면서 드디어 메인 공간이 나타난다. 테이블석과 카운터석이 있고 이곳의 대표적인 코너인 샐러드 바를 비롯해 채소를 직접 재배하고 있는 미니 하우스, 흡연이 가능한 타타미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 7.
(왼쪽) 마치 전국시대 무사 가문의 문장(紋章)처럼 식자재를 공급받고 있는 농가들의 문장을 만들어 레스토랑 천장에 길게 걸어두었다.
(오른쪽) 전형적인 일본 농가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해 놓은 타타미방.


특히 타타미방은 봉당인 도마(土間), 툇마루인 엔가와(縁側)와 타타미(畳)에 토코노마(床の間: 일본 건축에서 객실인 타타미방의 정면에 바닥을 한 층 높여 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 도자기, 꽃꽂이 등을 장식해 두는 곳), 그리고 예전에 우리의 시골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할아버지나 할머니 인물 사진이 걸린 자리에 농가의 농민 사진을 걸어둔 것까지 전형적인 일본 농가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해 농가의 라이프스타일 또는 농가의 주거 문화까지도 체험할 수 있다. 토코노마에는 불단 대신 일본 에도시대 말기의 독농가(篤農家)로 일본 각지의 황무지 개척과 농촌 재건에 힘 쓴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 1787~1856)의 입상(立像)과 함께 희귀한 비보(秘寶) 야채 등이 장식되어 있다.


그림 8.
(왼쪽) 선거 후보 포스터처럼 농민들 실제 모습을 촬영해 붙어놓은 포스터도 재미있다.
(오른쪽) 레스토랑의 벽에는 취급하는 각종 채소의 사진과 함께 설명들이 빼곡히 붙어져 있다.

메뉴 또한 독특한데 가장 인기인 뷔페식 샐러드 바를 비롯해 야채, 생선, 육류의 비율을 4:3:3 또는 6:2:2 또는 10:0:0 등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세트 메뉴 세 종류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세트는 식재 랭크에 의해 매긴 3800엔, 4800엔, 5800엔의 가격으로도 선택할 수 있다. 이외에 일품 요리나 유기농 야채 주스, 와인, 샴페인, 사케 등 드링크류도 구비하고 있다.


그림 9.
(왼쪽) 노카노다이도코로의 가장 인기 메뉴인 뷔페식 샐러드 바. 형형색색의 각종 야채가 눈길을 끈다.
(오른쪽)  야채 6:생선 2:육류 2 구성의 세트 메뉴


귀농・귀촌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맛을 외면한 값비싼 유기농 요리에 진절머리가 났거나, 현재 일본 농업의 첨단을 가늠할 바로미터를 가늠해보고 싶거나, 일본 열도를 달아오르게 하는 청년 농업의 붐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싶거나, 21세기 새롭게 뜰 유망산업을 물색 중이거나 또는 그 유망산업 중 하나가 농업일 것이라는 소견에 진심으로 동감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저 순수하게 신선하면서 희한한 이색 야채나 메뉴를 맛보고 싶다면 이 다음, 토쿄를 찾았을 때 노카노다이도코로 신쥬쿠3쵸메점을 일정에 넣어도 큰 후회는 없을 것이다.

 

Address_ 東京都新宿区新宿3-5-3高山ランド会館4F
Open_ 런치 11:00~15:30, 디너 18:00~22:30
Access_ 丸ノ内線(마루노우치선)・副都心線(후쿠토신선) 新宿3丁目駅(신쥬쿠3쵸메역) B2출구


박성윤_프리랜스 에디터 oz1018@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졸업.
잡지 <마리끌레르 메종> 에디터로 근무 후, 2004년 도일. 2007년 도쿄 가이드북 <동경오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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