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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녹색 토끼의 비밀 _ 신보슬

형광녹색 토끼의 비밀
-트랜스제닉 아트
 


그림 1. 형광토끼 알바(Alba),   Photo from Chrystelle Fontaine

2000년 뉴 밀레니엄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토끼 한 마리가 출현했다. 흰 토끼도 집토끼도 아닌, 형광녹색의 토끼 알바(Alba). 알바는 에듀아르도 카츠(Eduardo Kac)가 기획했던 ‘GFP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변종 토끼이다. GFP프로젝트는 북서태평양에 사는 해파리에서 추출해낸 녹색의 발광 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을 활용하는 프로젝트인데, 이것을 흰 토끼에게 주입시켜 만들어진 유전자 변형 토끼가 바로 알바다. 예상할 수 있듯이 카츠의 이 작업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이냐, 과연 알바의 출현과 더불어 소위 말하는 ‘트랜스제닉 아트’를 과연 새로운 예술형식으로 볼 수 있느냐 등등 알바를 둘러싼 논쟁은 끝이 없었다.

카츠는 이 뜨거운 논쟁에 이론적으로 대응했다. 사실 알바의 출현은 새로운 종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으며, 마치 신처럼 새로운 종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겠다는 야망과도 다른 것이었다. 오히려 카츠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생명체들을 통해서 인간이 바꾸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좀 더 극단화시키고, 이를 계기로 여러 사회적인 이슈들을 다루려는 것과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림2. 카츠의 집 앞에 달린 <알바 깃발 The Alba Flag> (2001), photo from www.ekac.org

알바의 탄생은 이후 카츠가 알바를 통해, 그리고 알바와 함께 전개하는 다양한 사회적 포용 프로젝트의 시발점에 지나지 않았다. 카츠는 토끼가 하얀색이건 갈색이건 형광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알바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포용하고 받아들이며,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며 반문했다. 그리고 갈색 토끼와 흰 토끼에 대한 긴 글을 하나 발표했다. 흰 토끼는 일종의 돌연변이로, 자연에 두었을 때는 멸종할 수밖에 없었는데, 인간이 흰 토끼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흰 토끼가 더 많이 살아남고, 갈색 토끼가 더 귀해졌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것은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 개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결국 이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것,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형광토끼 알바를 집에 데려와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프리 알바(Free Alba)> 라는 대형 사진 드로잉 프로젝트, 알바의 모습을 깃발에 새겨 넣은 <알바 깃발(Alba Flag)> 등등 알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드러내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다.


그림 3. <창세기 Genesis>, photo from http://www.ekac.org

카츠의 ‘트랜스제닉 아트’ 시리즈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창세(Genesis)>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업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세기에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는 구절을 모스부호로 바꾸고, 이를 다시 DNA 코드로 변형시켜 만들어낸 ‘예술가의 유전자’를 박테리아에 이식시켜 UV라이트를 쏘여서 변형을 일으키게 한 다음, DNA코드를 모스 부호로, 모스 부호를 다시 알파벳으로 바꾸어 텍스트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은 생물학과 믿음체계, 정보 테크놀로지, 인터넷, 윤리학 사이의 미묘한 관계들을 짚어내고 있다. 특히 이 작업에서 텍스트의 의미가 바뀌는 변형과정은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형식 안에서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꾸고자 한다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림 4. Edunia, photo from Rik Sferra

알바가 태어난 지 9년 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창세기>라는 작업으로 황금상(golden nica)을 거머쥔 지 딱 10년 만에 카츠는 다시 <이니그마의 자연사(Natural History of the Enigma)>로 대형 사고를 쳤다. 그리고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그에게 다시 한 번 황금상을 주었다. <이니그마의 자연사>시리즈는 에듀아르도 카츠라는 인간과 페튜니아(식물)의 유전자 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에듀니아(Edunia)’라는 새로운 식물 이야기이다. ‘에듀니아’는 분자 생물학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여느 페츄니아 꽃처럼 밝은 분홍색의 꽃잎이 화사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페튜니아와는 달리 꽃잎 위에 마치 실핏줄처럼 붉은 색 선들이 퍼져 있다. 인간의 실핏줄을 닮은 이 가는 붉은 선들은 바로 카츠가 자신의 혈관에서 추출해낸 유전자가 이식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에듀니아는 마치 카츠의 아이가 카츠와 유전자를 공유하듯, 카츠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림 5. Edunia Seed Pack,
photo from
www.ekac.org

<이니그마의 자연사>에는 ‘에듀니아’외에도 ‘싱귤라리스(singularis)’도 있다. 이것은 광섬유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3차원 대형 조각물인데, 생명체의 유한함과 대형조각의 영구성의 대조를 보여주는가 하면, 페츄니아 꽃 안에서 보여지는 독특한 형식을 확대한 것이기 때문에 ‘에듀니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알바를 사회 안에서 포용하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던 것처럼, 카츠는 ‘에듀니아’가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하기 위해서 에듀니아 씨앗을 담은 패키지 <에듀니아 씨앗 팩>도 만들었다. 머지 않아 판매도 할 예정이란다.
 
그렇다면 에듀니아는 인간일까 꽃일까. 카츠는 왜 인간도 꽃도 아닌 아니, 인간이면서 꽃이기도 한 ‘에듀니아’를 만들었을까.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왜 식물과 인간의 교배(?)는 이렇게 당혹스럽기만 한 것일까. 우리는 ‘에듀니아’를 통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예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예술이란 무엇일까.


신보슬_큐레이터

10년도 넘게 미디어아트라는 녀석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많은 전시와 작품을 만나며, 일상에 많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해왔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그 신나고 즐거운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몇몇 괴짜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나아가 사람이 더불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Tag
#알바 #에듀아르도 카츠 #창세기 #에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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