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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위해 텍스트 밖으로 달아나기

 

 

얼마 전, 한 장의 패션 사진을 오래도록 보았다. 다음날에도 다시 보았다. 아무리 봐도 요상하고 독특한 스타일의 옷이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도 수백 건이 넘게 달렸다. 사람들은 이상하다거나 해괴하다는 거북한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누구든 하나의 개념에 빠지면 그 수렁 속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내게 사진은 생각의 여백 혹은 틈을 내는 자극이다. 놓쳤거나 떠올리지 못했거나, 예상치 못했던 무엇과 맞닥뜨리게 한다. 그렇기에 나는 텍스트를 쓰기 위해 텍스트 밖으로 달아난다. 도망친 뒤 이미지란 거대한 성에 들어가 어슬렁거리다가 영감이라 불리는 것, 또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구해서 돌아온다.

 

나는 카피라이터다. 내 첫 직업이자 아직 유효한 밥벌이 도구 중 하나다. 막 일을 시작했을 때는 폼 나는 글을 쓰고자 애를 썼다. 텍스트 안에서 장렬히 전사라도 할 태세로 말이다. 좋은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바르고 훌륭한 광고 문안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벤치마킹을 위해 스크랩한 신문 광고와 책들,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글로벌 브랜드의 슬로건과 캐치프레이즈가 담긴 두 권의 책, 그리고 인터넷 검색엔진 사이트인 ‘구글’이 그 당시의 나의 즐겨찾기였다. 한계에 휩싸인, 상상력이 부재된 즐겨찾기일 수밖에 없었다. 텍스트에 갇힌 채로 텍스트를 생산하는 꼴이랄까.

 
마케팅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다. 광고의 중심에 언제나 소비자인 사람이 설득의 대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건조한 언어든 말랑하고 따스한 언어든, 데이터에 근거한 논리 정연한 콘셉트든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된 콘셉트든 궁극적으로는 마음의 심지를 툭 쳐야만 성공에 다가갈 수 있다. 어디 광고만 그렇겠는가. 세상 모든 일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말처럼 쉽던가? 그러나 내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통찰을 끄집어내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텍스트 안에 갇혔던 내 관심이 경력이 쌓이자 텍스트 밖으로 달아나게 되었다. 사람을 둘러싼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디자인과 사물, 사진과 미술, 음악과 시, 패션과 액세서리, 오래된 도시, 그 속에 사는 사람과 삶까지로 말이다. 내직업이 카피라이터, 작가, 디자이너, 사진작가 등으로 확산된 것도 아마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이미지의 성에는 텍스트에 없는 것들이 산다. 텍스트보다 말초적인 장면들이 시신경을 자극하고 불현 듯, 느닷없이 나를 빅뱅 속 같은 상상력의 세계로 인도한다. 나는 이제 습관처럼 즐겨찾기하던 텍스트에서 떠나 스트리트 패션 사진이 올라오는 <The Sartorialist>, 사진 공유 사이트인 <500px>나 예술작품들이 자주 올라오는 와 같은 이미지의 세계를 바람처럼 쏘다닌다.

 

 

 

 


<The Sartorialist>는 패션계에서 에디터로 활동했던 스코트 슈만Scott Schuman이 운영하는 블로그 사이트이다. 2005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거리에서 마주친 패션 피플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올리고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유명인뿐만 아니라 공사현장의 인부라든지 청소부, 때로는 산책 중인 주민 등 평범한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패션계와 보통 사람의 패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는 스콧 슈만의 블로그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블로그 중 하나로 하루에도 수많은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패션에 문외한이지만 내 관심은 뜨겁다. 블로그 속 낯선 사람과 개성 넘치는 그들의 옷차림은 내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매트릭스처럼 그 모든 것이 내게 메시지고 디자인으로 읽힌다. 동시에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상상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슈만의 사진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은 사진의 배경이다.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 서울, 도쿄, 두바이, 뭄바이, 델리. 그의 블로그는 최신 패션 트렌드는 물론이고, 제각기인 사람과 공간까지 덤으로 보여준다. 틈이 생길 때마다 들러서 흥미롭게 관찰한다. 때로는 얼마 전에 걸었던 타국의 거리가 거짓말처럼 등장한다.

 
한편, <500px>는 플리커flickr와 같은 사진 공유 사이트이다. 세계의 수많은 프로 및 아마추어 작가들이 매일 사진을 올린다. 순수 사진에서 인물사진, 풍경사진, 패션사진, 캔디드 등 온갖 사진들의 성찬이 차려진다. 심플한 사이트 구성은 방문자에게 쉽게 사진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사진에도 관심이 많아서 틈나는 대로 들어가 낯선 사람, 낯선 공간, 낯선 삶, 낯선 풍경과 만난다. 감동적인 장면도 있고, 아름다운 색채와 놀라운 상상도 있다.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릴 수도 있고, 구매를 원하는 사람에게 판매를 할 수도 있다. 물론 몇 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쳐야하지만 말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낯선 것의 자극을 받는 건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행복 그 자체다. 아스라한 거리에서 손짓하는 미지의 영역은 일상적 생각으로부터 탈출을 시도케 한다. 다양한 스타일의 사진에서 내가 만나는 건 다름 아닌 민낯의 텍스트다. 생기로 가득한 이미지의 텍스트다.

 
텍스트 정보를 머릿속에 넣은 뒤, 디자인과 사진 관련 서적을 뒤적이며 아이디어를 숙성시키던 지난날의 습관이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이미지인 동시에 메시지다. 시각화 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보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비우고 이미지와 마주함으로써 뜻밖의 메시지나 영감과 만나는 경우가 잦다. 좋은 글을 쓰기위해 단순히 엉덩이의 힘만 믿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상상력이 발휘된 글이 절실할수록 나는 잡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상품이나 서비스와 관련 없는 거리로 나가거나 텍스트 밖 이미지의 세계를 쏘다닌다.

 

 

 

 

자칫 텍스트에 취해있기 쉬운 이에게 시각예술은 이미지로 만들어진 거대한 보물창고다. 카피라이터는 글을 쓰는 직업이면서 텍스트로 이미지를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다. 카피라이터는 흩뿌려져 있는 무수한 자료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솎아내고, 그 중심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와 콘셉트를 이끌어내어 텍스트로 치환시키는 존재이기에 텍스트 밖으로 달아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뭐든 잠시 이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말초신경을 툭하고 건드리는 유혹적인 텍스트를 쓰려고 작정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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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연 #The Sartori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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