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후통 속 디자인 들여다보기 : 템플 호텔(Temple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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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 Temple Hotel
저벅저벅, 밤이 깊어가는 허름한 골목길. 발걸음 소리를 따라가 보니, 자금성에서 한 블록 남짓 떨어진 곳에 붉은색 문 하나가 나온다. 중절모를 쓴 신사가 말없이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문 틈으로 살며시 비집고 나오는 섬광 같은 불빛, 작은 병사들의 손에 들린 것은 창이 아니라 작은 불기둥과 같은 전등이다.
Mainhall 이미지 제공 © Temple Hotel
베이징 후통 속 템플 스테이, 템플 호텔(Temple hotel)
템플 호텔의 역사는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명청시대의 법당과 부처상이 모셔져 있던 곳을 비롯한 다수의 공간들이 문화혁명 이후 새롭게 재건되었다. 2008년 호텔과 식당을 개점한 이래 2013년 호텔 서비스가 재개될 예정이다. 이곳은 600년 역사의 건축 골조 위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되었다. 정부의 역사지구보존 방침에 따라 주변 지역을 보존하는 곳이자 새로운 부띠크 호텔이 되었다. 특히 템플 호텔은 베이징 내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숨겨진 부띠크 호텔 명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템플 호텔은 크게 다음과 같은 공간으로 나눠진다. 프랑스식 식당(TRB : Temple Restaurant in Beijing), 만남의 장소, 호텔, 상점 등이다. 이곳은 오래전 사찰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도록 전통과 현대성을 잘 변주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호텔은 총 8개의 게스트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마다의 개성으로 꾸며져 있다. 만남의 장소는 중국의 문방사우에서 기인한 이름에서부터 중국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보여준다. 먹(Ink), 종이(Paper), 붓(Brush)이라는 이름의 방들은 전시 및 회의 장소로 용도 변경이 용이하다.
템플 호텔 공간 스케치, 좌측 상단에 위치한 식당의 일부분만 새롭게 지어진 것이고, 기타 공간은 기존의 공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이미지 제공 © Temple Hotel
평면도에서 보이는 메인홀이 사찰이다. 이미지 제공 © Temple Hotel
이곳은 삼청동 미술관 거리를 걸어가듯 미술관(美术馆) 거리를 돌아서면 다다르는 허름한 골목 뒤안길에 자리해 있다. 템플 호텔 입구에 다다르면 중절모의 신사가 미술관 관람과 식당 예약 손님인지를 간단히 묻고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입구 안쪽에서는 왕슈깡의 작품 4개가 무서운 사천왕을 대신하여 반기고 있다. 템플 호텔 내부에 있는 그의 작품은 단 하나도 같은 표정과 모습을 한 것이 없다. 이미지 제공 © mido, Temple Hotel
갤러리와 식당 중간에 위치한 중정, 최근 스위스 출신의 사진작가 아이린 쿵(ene Kung)의 전시가 진행된 바 있다. 베이징의 사원 식당(Temple Restaruant in Beijing)은 흔히 TRB라는 약자로 불린다. 이미지 제공 © mido
사찰을 변경한 메인홀은(直追撕, Zhizhuisi) 이 호텔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장소는 주로 퍼포먼스나 영화 상영 등의 특별한 이벤트 홀로 이용 중이다. 입구에 설치된 작품들 역시 중국의 현대 작가 왕슈깡의 작품이다. 이미지 제공 © Temple Hotel
메인홀의 내부는 붉은 색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사면의 벽 앞에는 중국식 가구가 진열되어 있다. 약 10미터 가량의 높은 천장을 가로지르는 보에는 명나라 시대의 검은색 단청화가 채색되어 있다. 이미지 제공 © Temple Hotel
메인홀에서 라운지로 가는 길 사이의 단 위에는 왕슈깡(王书刚, Wang Shugang)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베이징 출신의 조각가로서 CAFA를 졸업 후, 독일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위 작품은 행복으로 도세요(Turn to happiness)라는 작품의 일부 변형된 것이다. 이미지 제공 © mido
브러쉬룸의 외관 이미지 제공 © Temple Hotel
라운지 내부 모습, 베이징 국제 디자인 위크(BJDW) 2012의 릴리의 골동품(Lily"s antique)의 텍스타일 전시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미지 제공 © Temple Hotel
http://thetemplehotel.com/
베이징 서민들의 고향, 후통(胡同)
서울의 약 600년 보다도 지난 역사를 가진 베이징. 천년고도 베이징은 전통과 현대화의 묘한 경계선에서 하루가 다르게 현대화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13억 중국인들의 수도로서의 자부심은 실로 대단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베이징이 가장 중국스러운 곳이며, 가장 전통스러운 곳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장 중국스럽다고 여기는 베이징의 요소는 무엇일까? 필자는 베이징의 만리장성과 후통이라고 생각한다.
후통(胡同)이란 한마디로 뒷골목을 뜻하는 말이다. 몽골어의 우물을 뜻하는 호톡이 변형된 것으로 고대인들은 우물 주변에 모여 사는 경향이 있었다. 원나라가 베이징을 수도로 정한 이후 오늘날까지 800년 동안 서민들의 주거지로 이용 중이다. 한때 3,000여 개에서 6,000여 개로 늘었던 후통은 현대화로 인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전통적인 사합원(四合院, 쓰허위엔)은 베이징 후통 속에 있는 사각형의 독특한 건축물이다. 최근에 쓰허위엔은 게스트하우스, 상점, 술집, 식당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베이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중국 현대 디자인의 원천
후통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든다. 베이징의 예술지구 798의 군수 공장단지와 달리 이곳은 태생적으로 중국 디자인의 새로운 요람 역할을 해주고 있다. 가장 중국스러운 것이 가장 세계적임을 시공을 초월하여 보여주는 듯 하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오랜 역사 속에서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다. 이율배반적이지만, 가장 서민적인 공간 속에서 일반인들이 동경하는 또 다른 삶이 재현되고 있다.
베이징의 후통하면 의례 삼청동과 유사한 난뤄구샹(南麓故乡)을 떠올리기 일쑤다. 하지만 그 규모적으로 몇십배 이상 달하는 후통은,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모색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디자인 인큐베이터와 같다. 특히 앞으로 베이징은 물론 중국의 특색이 가득한 디자인들을 이곳에서 선보일 것이 자명하다. 이와 같은 디자인 및 디자인 외적인 개발 사례 등은 앞으로 한국적인 디자인이 무엇일지 함께 모색할 수 있는 기회로써 한국의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연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