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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을 이룬 신호등 - 베를린 암펠만

 



독일 통일 후 동독의 모든 산물은 서독에 비해 열등하다고 인식됐다. 하지만 어린이의 교통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동독의 신호등 캐릭터 암펠만은 사장 직전에 가까스로 한 서독 디자이너에 의해 부활되면서 잃어버렸던 동독의 가치를 극적으로 부활시켰다.


베를린 시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암펠만 신호등.


1995년 어느 날 독일의 조명 디자이너 마르쿠스 헥하우젠은 새로운 조명에 쓸 재료를 구하느라 베를린 시가지를 걷고 있었다. 유리, 나무, 돌멩이…… 눈에 들어오는 건 모조리 머릿속에 담아 조명으로 변신시켜 봤지만, 어느 하나 이렇다 하게 새롭지 않았다. “에이, 오늘도 글렀군.” 터벅터벅 동네 어귀를 돌아오는 길, 헥하우젠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무심코 바라본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반짝이는 작은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헥하우젠은 시커먼 먼지로 형체조차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이 망가져 있던 그 물건을 망설임 없이 손으로 집어 번쩍 들어 올리며 쾌재를 불렀다. “야호, 바로 이거야! 이 세상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나의 보석!”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폐기 직전 헥하우젠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물건은 바로 깨진 신호등이었다. 훗날 이 신호등은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베를리너(베를린 사람)가 되었다.


헥하우젠이 나락에서 건져 올린 그 신호등은 통일 전 구 동베를린에서 사용하던 신호등이었다. 세계 각 국의 신호등 사람 캐릭터를 보면 얼굴과 몸집, 걷는 모습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형태는 거의 엇비슷하다. 하지만 이 동베를린의 신호등 속 사람은 한눈에 봐도 머릿속에 각인될 만큼 독특한 모습이다. 배는 톡 튀어 나왔고,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있다. 정지 신호 속 사람은 지나는 사람을 가로막기라도 하듯 팔을 양 옆으로 쫙 벌리고 있고, 보행 신호 속 사람은 두 팔을 휘저으며 씩씩하게 걷는 모습이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암펠만. 녹색과 빨간색 두 종류의 암펠만은 각각 이름도 갖고 있다. 보행 신호 속에 있는 녹색 캐릭터는 ‘게어’, 정지 신호에 있는 빨간 캐릭터는 ‘슈테어’이다.


이 예사롭지 않은 형태 뒤에는 깊은 사회적 고찰이 숨어 있다. 1961년 동베를린은 교통심리학자 카알 페글라우 박사에게 의뢰해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교육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신호등 아이콘을 만들었다. 친근함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시력이 나쁜 노인이나 지각 능력이 성인에 비해 떨어지는 아이를 위해 색이 차지하는 면적을 최대화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통통한 배불뚝이 모양의 암펠만이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취지에서 탄생한 암펠만도 흡수 통일이라는 역사의 운명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통일 이후 동독의 사회 시스템이 서독식으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신호 체계도 예외는 아니었고, 결국 1994년 독일 정부는 암펠만을 평범한 모양의 서독 신호등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신호등 캐릭터에서 훌륭한 디자인 아이템으로 부활한 암펠만.
암펠만 숍은 베를린에 관광 온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풍전등화와 같던 암펠만의 운명을 극적으로 살려낸 이가 바로 헥 하우젠은 암펠만이 분명 재미있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훌륭한 아이템인데 법보다 더 위력적인 ‘승자의 논리’ 앞에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암펠만의 부활을 이끌어냈다. 처음에는 암펠만 조명에서 시작해 열쇠고리, 컵, 티셔츠 등 다양한 물품에 암펠만 디자인을 적용했고, 암펠만 레스토랑까지 생겼다. 어찌 보면 단순한 재활용 디자인에 그칠 수도 있었던 암펠만의 부활은 독일 통일 뒤 동독인의 마음에 남아 있던 피해 의식과 문화적인 향수에 불을 지피면서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잊혀졌던 ‘동독의 유산’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결국 1997년 독일 정부는 구 동베를린 지역에 암펠만을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고, 암펠만은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서 구 동독 사람이 겪는 문화적 공황을 해소해주는 역할까지 하면서 동·서독 사람의 마음 속 깊이 팬 감정의 골을 메우며 진정한 문화 통일을 이루어냈다.


암펠만의 부침浮沈 스토리는 디자인의 사회적인 임무를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아이와 노인도 쉽게 분간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는 일종의 유니버설 디자인이고, 쓰레기통에서 나와 조명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는 재활용 디자인 개념도 녹아 있다. 무엇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디자인이 두 사회 체제의 균열을 봉합하는 동시에 그 사회가 지닌 역사를 스토리화 해내는 역할까지 했다는 사실은 디자인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자, 이제 우리의 현실을 한 번 생각해보자. 남북이 통일되고 난 뒤, 우리 주변에서 디자인적으로 의미를 가질 ‘제2의 암펠만’은 없을까.



아래 위로 쌍을 이루고 있는 세계 각국의 신호등 캐릭터들.
가운데 암펠만과 다른 것들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시각적으로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쿠스 헥하우젠
현재 암펠만사(Ampelmann GmbH)의 대표인 마르쿠스 헥하우젠Markus Heckhausen은 1997년에 카알 페글라우와 함께 암펠만의 역사와 구제에 관한 책인 『암펠만의 책(Das Buch vom Ampelmannchen)』을 펴냈다. 1999년에 첫 번째 암펠만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된 암펠만은 곧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후 암펠만은 베를린을 찾는 독일 사람들과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에게 베를린에 대한 추억으로 꼭 사가지고 가야만 하는 베를린의 대표 상징 상품이 되었다.


암펠만
신호등이라는 뜻의 독일어 ‘암펠Ampel’과 사람을 뜻하는 ‘만Mann’이 합성된 이름으로 말 그대로 ‘신호등 사람’이다.


카알 페글라우
1961년에 암펠만을 개발한 카알 페글라우(Karl Peglau, 1927년생)는 독일 바트 무스카우Bad Muskau 출신으로 독일이 통일 되기 전까지 약 32년간 구 동독의 교통의학사업(Medizinischen Dienst des Verkehrswesens)을 이끌어온 심리학자이다.


참조 사이트
암펠만 웹사이트 www.ampelmann.de
암펠만 갤러리 숍 온라인 쇼핑몰 웹사이트 www.ampelmannshop.com


암펠만 캐릭터를 단순화시켜 만든 캐릭터 상품.

Tag
#조명 #환경 #베를린 #캐릭터 #독일 #신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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