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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섬을 살린 문화의 힘 - 일본 나오시마, 아와지시마

  

  

 

사양 산업으로 황폐화되었던 두 섬이 디자인과 건축을 만나 소생했다. 학습지를 만들던 출판 기업 베네세는 디자인이라는 산소호흡기를 달아 도시화의 변방이었던 버려진 섬을 되살렸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두 사례의 중심에 모두 일본의 대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지자체들이 제각기 디자인 도시를 꿈꾸면서 경쟁적으로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나 디자이너 모셔오기가 붐이다. 기업 역시 경쟁적으로 이들 스타 건축가나 슈퍼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면서 디자인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순수한 목적으로 이들을 통해 이상적인 도시나 제품을 만들려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이미 만들어진 이들의 유명세에 편승해 의도적으로 도시 마케팅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처럼 얄팍한 상혼은 장기적으로 결국 도시에 깃든 숨결을 해치는 결과를 빚게 된다. 이와는 달리, 요즘 문화계 인사들의 필수 견학 코스처럼 된 일본의 두 섬 나오시마 아와지시마는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마을을 위해 기업과 건축가, 예술가가 어떻게 협력하고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나오시마와 아와지시마의 공통분모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안도 다다오는 전 세계적인 건축 트렌드가 된 노출 콘크리트 기을 집대성한 작가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스타 건축가이다. 안도는 토사와 광물 채취로 황폐화된 두 섬에 문화라는 산소호흡기를 달아 소생시킨 주인공이다. 예술 인프라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만큼 문화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두 섬은 이제 전 세계 예술 애호가들이 순례하는 ‘문화의 성지’가 됐다.

 
인구 3,900여 명의 외딴 섬 나오시마는 예술 작품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꺼내 들고 보물찾기하듯 섬을 누비고 다니는 관광객으로 늘 북적거린다. 2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당시 나오시마는 금속 제련소로 인해 여기저기 민둥산으로 넘쳐났다. 이런 나오시마의 풍경을 바꾼 계기는 베네세가 1989년 시작한 ‘아트 프로젝트’이다. 학습지를 만들어오던 출판 기업인 베네세는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나오시마를 자연과 예술을 일체화시킨 ‘문화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안도 다다오에게 그 중추 역할을 부탁했다. 처음에 아트 프로젝트를 제안받은 안도는 과연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일까 의구심을 품었지만, 베네세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를 보고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백미는 2004년 완공한 지중미술관이다. 안도는 자연의 능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지하에 파묻힌 미술관’이라는 파격적인 개념의 미술관을 만들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술관이라고 하기에는 작품 수가 턱없이 적은 데도 불구하고 수백, 수천 점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보다 관객에게 훨씬 강렬한 감동을 주도록 설계한 안도의 창의력이다.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은 인상파 화가 끌로드 모네의 작품 세 점, 조각가 월터 데 마리아의 작품 한 점, 빛을 이용한 작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 세 점 등이 고작이다.

 

위는 자연의 능선을 해치지 않기 위해 지하에 만든 지중미술관.
오른쪽은 안도의 건축 특징이 잘 드러난 베네세하우스의 수변공간 오벌Oval이다.

 

 

안도는 스스로를 ‘제4의 아티스트’라 말했듯, 각각의 작품을 위한 공간이면서도 건축 자체로서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안도는 작품을 관람하는 예식마저 또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전시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집에 들어가듯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하얀 대리석을 작은 타일처럼 깎아 끼워 넣은 바닥의 질감을 최대한 느끼도록 고안해낸 방법이다. 펜을 들고 메모를 하면 구석에 있던 스태프가 큰일이라도난 듯 달려와 연필을 건넨다. ‘순백의 숭고미’를 보존하기 위해서란다. 문화 자산의 부족으로 고민하는 지자체에게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며,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먼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함을 환기시키는 대목이다.

 

베네세하우스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공간 풍경.
해변가에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호박>은 나오시마를 찾는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대상이기도 하다.

 

미술관에 앞서 안도가 1992년에 완성한 베네세하우스는 세계 최초로 호텔 안에 미술관이 들어선 건물이다. 백남준의 작품과 리차드 랭의 미술작품 등 베네세 일가가 수집한 40여 점의 미술작품이 호텔로 이어지는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고, 호텔 앞쪽으로는 야요이 쿠사마와 니키 드 생 팔 등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안도는 지중미술관이 닫힌 공간에서 작품과 건축이 서로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정靜적인 공간이라면, 베네세하우스는 자연과 건축이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소통하는 동動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나오시마는 안도의 건축을 지렛대로, 폐허가 된 가옥을 디자인의 실험 무대로 쓰거나 작가들에게 작업실로 제공하고 있으며, 나오시마 아트페스티벌 등 섬 곳곳에서 수시로 문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또 하나의 섬 아와지시마에서는 건축과 디자인이 파괴와 절망의 땅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가운데에서도 안도 건축물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는 유메부타이는 도시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문화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28ha에 이르는 넓은 유메부타이 터는 간사이 공항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토사 채취장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안도는 “인간에 의해 파괴된 상처를 인간의 손으로 재생한다”는 취지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이 찾아왔다. 1995년 1월 17일 그 유명한 한신 대지진이 일어나 진원지와 가깝게 있던 유메부타이 터가 큰 타격을 받았다. 사람들은 도시의 숨이 끊어졌다며 체념했다. 하지만 안도와 효고현은 비극을 주춧돌로 더 나은 도시 미래를 구축하자며 유메부타이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결국 ‘창조적 부흥’의 기치 아래 대규모 계획을 완성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건축을 관람하며 자연스레 비극의 역사를 오버랩시킨다.


폐허 위에 생긴 유메부타이, 지중미술관 등이 오늘날 전 세계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비단 건축물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 땅이 함께 해온 역사를 슬기롭게 포용할 줄 아는 ‘문화의 힘’이 그들의 발길을 이 작은 섬으로 이끌고 있다.

 

   베네세하우스의 내부 공간 모습.

 

 

 

 

나오시마, 아와지시마
나오시마直島는 일본 시코쿠 가가와 현의 섬으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혼슈섬과 시코쿠섬, 규슈섬 사이의 좁은 바다) 동부에 위치한 3천여 개 섬들 가운데 인구 3,900여 명의 조그만 섬이다. 현재 문화예술진흥정책으로 재탄생하여 전 세계 각지에서 연간 3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아와지시마淡路島는 일본 효고 현의 섬으로, 세토나이카이 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유메부타이’와 이탈리아 ‘베네통 리서치센터’가 있다.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Ando Tadao, 1941년생)는 세계적인 일본인 건축가로서 프로 권투선수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여행을 하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1969년 안도 다다오 건축연구소를 설립하였고 미술관, 공공건물, 교회나 사찰 등을 건축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건축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물’과 ‘빛’의 조화가 중심을 이룬다. ‘물의 교회’, ‘물의 절’, ‘빛의 교회’ 등이 대표작이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
콘크리트 자체의 색상, 질감으로 마감하는 건축 시공 기법을 말한다. 콘크리트 타설 후 거푸집을 탈형한 상태를 노출하여 독특한 조형미를 보인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모양, 질감이 다채롭게 변한다.


야요이 쿠사마
야요이 쿠사마(1929년생)는 일본의 전위예술가이자 화가, 소설가이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미술, 패션, 문학, 영화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전위적 정신을 표방하는 활동을 해왔다. 1957년부터 뉴욕에서 활동한 후, 1977년에 일본으로 돌아와 쿠사마 스튜디오를 만들어 창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물방울 무늬와 거대 호박 시리즈 등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유메부타이
28ha에 이르는 대규모 부지에 효고현립국제회의장, 호텔, 식물원, 야외극장, 기적의 별 식물관 등 안도의 건축물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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