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금의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우뚝 선 이면에는 디자인을 위한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디자인 인력을 확보하고 삼성 디자인 멤버십, SADI, 2005년 밀라노 선언까지 삼성전자가 디자인에 투자해온 역사를 살펴보자.

해외에 나간 교포나 주재원은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보다는 삼성이라는 기업 브랜드가 더욱 강력하다고 전한다. 실제로 세계 브랜드 가치를 발표하는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2008년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도 삼성전자가 21위, 현대자동차가 72위에 올라 한국 기업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특히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176억 8,900만 달러로 추정돼 전년보다 5% 늘었다.

반면 안홀트-GMI가 50개 국가를 상대로 국가 브랜드 순위를 집계한 결과 한국은 체코, 이집트 뒤를 이어 33위에 불과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5위이 가장 앞서고 싱가포르24위, 인도27위, 중국28위에도 밀렸다.

이처럼 국가를 능가하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파워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1970년대 삼성전자가 일본 기업들과 기술제휴를 하면서 국내 시장에 첫 TV를 출시했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꿈도 꾸기 힘들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할 때까지도 삼성전자는 품질을 최우선에 둔 기업이었다. 사실상 미국과 일본 기업의 선도 디자인을 베끼기에 급급하던 시절에 디자인은 부수적 요소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장을 점차 세계로 넓혀갈수록 고유의 디자인에 대한 필요는 커져만갔다. 그러다 1996년을 ‘디자인 혁신의 해’로 정하면서 디자인 챙기기가 가시화됐다. 2005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 삼성전자의 여섯 번째 디자인 센터를 오픈하면서 발표한 ‘밀라노 선언’을 통해 디자인 혁신이 최우선에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디자인 인력은 물론 재스퍼 모리슨 등 저명한 국내외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삼성전자만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와 유저인터페이스를 확립하고 있다. 디자인경영센터를 CEO 직속 기관으로 두고 창조적 디자인 역량을 경영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다 규모의 디자인 인력을 내부에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디자인문화 향상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도 추진해왔다. 디자인 전문학교 SADI를 1995년 설립해 세계적인 디자인 인재를 양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비 디자이너에게 자유로운 창작 기회를 제공하는 삼성 디자인 멤버십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꾸준한 디자인 투자는 보르도 TV에서 꽃을 피웠다. 2005년 TV는 네모반듯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TV하단을 V자형으로 장식한 ‘로마Rome’ 시리즈를 출시해 LCD TV 최초로 1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그러다 2006년부터 LCD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경쟁에서 앞서 갈 독창적인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 가구 같은 TV 디자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보르도 TV는 그 이름처럼 와인잔에 살짝 남아 있는 붉은 와인과 조명을 받은 유리잔에서 영감을 얻어 감성적으로 접근해 디자인했다. 대부분 TV가 검정, 회색 등 무채색에 갇혀 있을 때, 화이트 바디에 레드와인 포인트를 주고, 블랙에 블루가 조합된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켰다. 게다가 경쟁기업들이 유리, 금속 등 다양한 고가 외장 재료로 고급 이미지를 만들려고 애쓸 때 오히려 재료를 줄여 원가 경쟁력까지 높였다.

세계적으로 ‘애니콜신화’를 이룩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모델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을 통해 매출액 기준 세계 1위 TV 업체가 됐고, 이제 양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당당한 1위로 우뚝 섰다. 보르도 TV는 대중화된 가전제품으로서의 TV가 기능보다 오브제로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경쟁사들이 잇따라 유사 디자인을 쏟아내면서 오히려 삼성전자 디자인의 독창성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프리미엄 제품군에서의 성공은 삼성전자 브랜드 전체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이후에는 원천적으로 모방을 힘들게 하기 위해 크리스털 TV를 출시했다. 유리공예의 디자인 공법을 적용했고 TV의 시각적 기능을 최대화하기 위해 기능적 요소를 시각적으로 제거한 점이 특징이다. 또 휘발성 도료로 외관을 마무리하던 방식을 없애는 등 소재와 공정을 단순화해 생산과정에서 환경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했다.

삼성의 디자인 혁신 과정에 참여했던 빌 모그리지 IDEO 창업자는 “기업의 디자인 혁신은 삼성처럼 최고경영자 의지에 크게 좌우된다”며 “삼성은 디자인 혁신의 대표 사례인 애플보다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디자인 정체성을 세우는 데 더 많은 기회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삼성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관심은 단지 국내 기업의 성공 여부에 대한 관심 차원을 넘어섰다. 세계 디자인계를 선도할 트렌드 리더로서 어떤 모습, 어떤 제품, 어떤 디자인 철학을 보여줄 것인가가 삼성에 거는 기대이다. 삼성이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를 넘어 디자인 그 자체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삼성의 대답과 응수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삼성 신화’의 한 축이 된 ‘디자인 삼성’의 산실, SADI.

재스퍼 모리슨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 1959년생은 영국 출신의 산업디자이너이다.
1986년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연 후 가구와 주방,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작업을 해 왔다. 하노버 엑스포를 위한 전차tram 디자인 등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비트라Vitra, 카펠리니Cappellini 등의 디자인을 많이 수행했다. 재스퍼 모리슨 사Jasper Morrison Ltd.는 런던과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 삼성전자와 연간 계약을 맺고 미래형 휴대전화 등의 디자인 개발에 참여했다.

SADI
사디SADI는 ‘Samsung Art & Design Institute’의 약자로 삼성전자가 1995년에 글로벌 디자이너 양성을 목표로 설립하여 디자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기관이다.

디자인 멤버십
삼성전자는 디자인 분야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창작활동의 장을 제공하고 이들을 미래 디자이너로 육성하기 위해 1993년부터 디자인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영국, 미국을 비롯 독일, 이탈리아, 중국, 일본의 글로벌 멤버십 제도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참조 사이트
삼성전자 웹사이트 www.samsung.com
재스퍼 모리슨 웹사이트 www.jaspermorrison.com
사디 웹사이트 www.sadi.net
삼성디자인멤버십 웹사이트 www.designmembershi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