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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의 비범함 - 일상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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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 속 지극히 평범한 사물에도 디자인의 원칙이 잘 구현된 경우가 꽤 있다. 너무나 평범해서 디자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작은 클립, 포스트잇, 장바구니에 깃들어 있는, 평범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그래서 더 비범한 디자인의 원리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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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1년 어느 날, 부동산업자였던 미국인 제이 소렌슨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잡았다가 너무 뜨거워 무릎에 커피를 엎지르고 말았다. 씩씩거리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재생 판지였다. ‘바로 이거야!’ 소렌슨 씨는 아내 콜린과 함께 판지를 오려 일회용 종이컵 둘레에 맞게 종이컵 홀더를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 요즘 우리가 커피 전문점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종이컵 홀더이다.
#2. 1849년 뉴욕의 기계공 월터 헌트는 철사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15달러의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3시간 동안 철사를 구부렸다, 폈다 반복하던 헌트가 갑자기 무릎을 쳤다. ‘철사 가운데를 돌돌 감고 한쪽 끝을 걸쇠에 넣으면 찔릴 염려가 없는 핀이 되겠네!’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쓰는 안전핀옷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삶에서 진정 중요한 디자인은 거창한 담론을 이끌어내거나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화제를 모으는 디자인이 아니다. 너무나 평범해서 디자인의 시선으로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생필품. 어쩌면 그 속에 숨어 있는 디자인이야말로 많은 이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는 점에서 정말 위대한 디자인일지 모른다. 요즘 디자인 과잉으로 인해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디자인 본연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자성이 일면서, 이렇게 작지만 필요한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전시회나 개념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MoMA의 디자인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는 2004년 포스트잇, 추파춥스 막대사탕, 주사위, 바비핀실핀, 거품기, 티백 등 100개의 생활용품들을 모아 ‘디자인, 일상의 경이Humble Masterpiecess’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MoMA라는 저명한 미술관에 어쩌면 잡동사니로 치부할 수 있는 작은 소품이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지만, 당시 전시 작품의 요건은 그 어느 전시보다 까다로웠다고 파올라는 이야기한다. 이미 모든 관람객이 소장하고 있고 저렴하면서 마트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물건이어야 했으니까. 물건 하나하나마다 숨어 있는 ‘디자인 족보’를 찾아내는 작업은, ‘디자인은 어렵고, 전문가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선입견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최고의 히트 문구류로 꼽히는 포스트잇은 1977년 3M의 신제품 개발 담당자 아트 프라이가 스펜서 실버 박사가 잘못 만든 접착제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고, M&M’s는 1930년대 포리스트 마스가 스페인 여행 중 병사들이 먹던 알록달록한 초콜릿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등 스토리 자체가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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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에서 전시됨으로써 그 심플한 디자인을 인정받은 추파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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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한국의 때 미는 목욕문화를 만든 이태리타월. 가운데는 허리가 볼록한 한국의 장독을 닮은 바나나맛 우유 용기.
감성 디자인의 대표적 예이다. 아래는 꼭 필요한 기능만 담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 ‘디자인 민주주의’를 실현한 모나미
볼펜.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일본의 후카사와 나오토와 영국의 재스퍼 모리슨이 기획한 전시회 이름이자 이들이 고안한 개념인 ‘슈퍼노멀Super Normal’ 역시 비슷한 발상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두 디자이너는 화려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실생활과는 동떨어져 있는 디자인보다는 친숙한 끌림이 있는 디자인, 결국 우리의 삶을 흔드는 디자인을 진정 훌륭한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바로 ‘슈퍼노멀’이다. 평범함에 들어 있는 기본 조건인 순수성과 기능성을 무시한 채 이뤄지는 디자인 집착에 대한 경종인 셈이다. 두 디자이너가 이런 의도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한 작품은 플라스틱 장바구니, 병따개, 후추통, 욕실용 고무 슬리퍼 같은 소소한 생활용품이었다. 어쩌면 ‘디자인, 일상의 경이’ 전시회와도 비슷한 이 전시는 디자인계에 조용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디자인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많은 디자이너에게 귀감이 됐다.

 

알고 보면 한국에도 이런 생활 속 디자인들이 많다. 질문부터 하나 던져보자. 한국 사람은 언제부터 때를 밀기 시작했을까? 100년 전? 조선시대부터? 아니다. 예상 외로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원래 한국에서는 지금처럼 때를 빡빡 미는 문화가 없었다. 40여 년 전 때수건일명 ‘이태리타월’이 나오면서 때를 미는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때수건이 개발되기 전에는 그저 일반 수건을 손에 감아 문지르는 정도였다고 하니, 이태리타월이 우리 목욕문화에 공헌한 공은 혁혁하다. 작은 발상으로 전 국민의 생활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는 점이 바로 이태리타월의 업적이라고 하는 디자인 전문가도 있다. 아디다스 운동화의 삼선三線처럼 이태리타월에 정체성을 불어넣는 시각적 요소는 4개의 가는 실선이다. 시각적으로 손이 들어가는 곳을 보여주기 위해 넣은 것이다. 이론을 체계적으로 반영한 디자인은 아니지만, 버내큘러 디자인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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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한국의 장독을 닮은 바나나맛 우유 용기, 지극히 간편하고 싼 가격으로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주장한 디자이노크라시를 실현해 준 모나미 볼펜 등 알고 보면 우리의 일상에도 작지만 훌륭한 디자인이 즐비하다. 이처럼 ‘디자인은 거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보면, 일상에 용해돼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생활 속 걸작, 평범함 속에 담긴 비범함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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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MoMA는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의 약칭으로 애비 앨드리치 록펠러와 릴리 플러머 블리스, 메리 퀸 설리번 등의 수집가들이 1929년 설립하였다. 초대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가 미술관 건물을 바우하우스 스타일로 건축하여 이후 근현대 미술관의 모범으로 자리를 잡았다. 총 15만여 점의 작품과 30만여 점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연간 관람객 수가 250만여 명에 이른다.

 

후카사와 나오토
후카사와 나오토1956년생는 일본의 타마미술대학교에서 제품디자인을 공부한 후 활발한 활동으로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50번 이상 수상한 바 있다. 일본 생활용품 브랜드인 MUJI의 벽걸이형 CD플레이어를 디자인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 최근 삼성의 미니노트북 N310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일본의 장난감회사, 출판사와 함께 ‘±0’을 만들어 일상에 쓰이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재스퍼 모리슨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 1959년생은 영국 출신의 제품디자이너로 가구와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실용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정직한 디자인을 해오고 있다. 1986년 런던에 오피스 포 디자인Office for Design을 설립한 후 알레시, 무지, 비트라 등 유럽과 아시아의 유명 회사를 위한 디자인을 맡아서 진행하였다. 평이한 소재, 단순한 디자인, 합리적인 기능, 세심한 제작으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따뜻한 감수성을 담은 감각적인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케아, 로웬타, 소니 TV 등의 콘셉트 디자인을 했고 또한 한국에서는 2007년 삼성 휴대전화sgh-e590 디자인에 참여하여 유럽, 중국, 동남아 지역에 출시하였다. 현재 재스퍼 모리슨 사Jasper Morrison Ltd는 런던과 파리에 지사를 두고 있다.

 

카림 라시드
카림 라시드Karim Rashid, 1960년생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고 1982년 캐나다 오타와의 칼턴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후 캐나다 KAN 산업디자인에서 7년간 일했고 1993년에 뉴욕에 자신의 회사를 세워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몬트리올 장식미술관, 뉴욕 쿠퍼휴잇 국립 디자인미술관 등에서 전시된 바 있다. 필라델피아 예술대학, 프랫인스티튜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온타리오 예술대학 등에서 디자인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강연 및 출판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디자이노크라시
디자이노크라시Designocracy는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정리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대중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실용적인 디자인 상품을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곧 디자인 민주주의라고 말한 바 있다.

 

참고 자료
『디자인, 일상의 경이』(파올라 안토넬리, 이경하 외 옮김, 다빈치,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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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MoMA #후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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