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이 가장 많이 본 디자인 뉴스
디자인 트렌드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 아이콘 인쇄 아이콘

현대 정보 디자인의 원형 - 런던 지하철 지도

이미지

 

 

70여 년 전 영국의 헨리 벡이 디자인한 런던 지하철 지도는 아직까지도 전 세계 정보 지도의 기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정보 지도는 복잡한 정보를 명쾌하게 축약하여 대중이 아주 빠르게 한 눈에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미지

 

오늘날 전 세계 모든 지하철 지도는 한 가지 뚜렷한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모든 노선은 수직과 수평, 45도 각도로 표현된다. 곡선으로 표현된 노선은 없다. 도심을 흐르는 구불구불한 강조차 수직, 수평, 45도 각도의 도식적 그래픽으로 표현된다. 모든 역과 역 사이는 일정한 간격으로 표현된다. 즉 실제로 도시 외곽의 역 간격은 도심의 그것보다 몇 배나 긴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사실에 충실한 정보는 지하철 지도에서 무시된다. 종로5가역과 종로3가역은 매우 가까운 편이지만, 그보다 훨씬 긴 원당역과 삼송역 사이와 똑같은 길이로 표현되어 있다. 환승역 역시 실제 거리와 관계없이 그냥 하나의 역으로 표현된다. 3, 4호선 환승역인 충무로역은 실제로 매우 가깝고, 2, 5호선 환승역인 충정로역은 실제로 수백 미터나 걸어 가야 하지만 이런 사실은 지하철 지도에 표현되지 않는다. 런던, 파리, 모스크바, 바르셀로나, 홍콩, 도쿄, 서울 어디를 가든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지하철 지도가 이런 형식으로 만들어졌을까? 그렇지 않다. 오른쪽 페이지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초기의 지하철 지도는 실제 지리 정보를 충실히 표현했다. 노선은 구불구불한 곡선이며 역 간격도 실제 정보이므로 제각각이었다. 이 지도의 장점은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다는 점이지만, 그 덕에 지하철역이 집중되어 있는 도심이 복잡해 보이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또한 도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변두리 역은 아예 지도 안에 표시할 수 없어 네모 박스 안에 지명만 넣을 수밖에 없었다.(사진의 왼쪽 위쪽 구석을 보라!)

 

 

 이미지
헨리 벡이 디자인하기 전 런던 지하철 지도.

 

이미지
헨리 벡이 디자인한 런던 지하철 지도, 1931년.

 

1913년 전까지 런던의 지하철 노선은 각각 다른 회사가 운영했다. 그러다 1913년 165개에 달하는 런던 지하철과 버스 운송 회사들이 하나로 통합돼 런던 운송 회사가 탄생했다. 런던 운송 회사는 더 많은 사람이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도록 이미지 통합 작업을 시작했다. 바로 이 작업에서 에드워드 존스턴의 저 유명한 런던 지하철의 레일웨이 서체언더그라운드 심벌이 탄생했다. 이런 이미지 통합 작업의 일환으로 런던 운송 회사는 헨리 에게 지하철 지도를 다시 디자인해 달라고 의뢰했다.

 

헨리 벡은 이전의 지하철 지도와 다르게, 실제 지리 정보를 과감히 무시하고 이해하기 쉽게 기호적인 해석을 했다. 가장 핵심적인 혁신은 도시의 중심이 변두리보다 확대된 점이다. 그 결과 역이 집중되어 있는 도심이 한결 보기 쉬워졌다. 아울러 역 간격을 일정하게 함으로써 멀리 변두리에 떨어진 역도 지도 안에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노선을 직선으로 표현하여 지도가 단순하고 간결해졌다.

 

이미지
헨리 벡의 지하철 지도에 빚지고 있는 서울시 지하철 지도.
세계 대부분의 지하철 지도들은 약간의 변형과 차이는 있지만 사실상 모두 헨리 벡의 후손들이다.

 

이런 변화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더욱 많이 이용하게 되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는 도심에서 외곽까지 거리가 굉장히 멀지만 이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아주 짧아 보여,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는 데 부담을 덜어주었다. 실제로는 수백 미터를 걸어 가야 갈아탈 수 있는 환승역도 아주 짧게 표현되어 역시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었다. 이것은 사실 정보를 왜곡한 결과이기도 하다. 일종의 속임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보 디자인의 긍정적인 힘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지도의 특별한 힘은 지하철 회사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낳았다. 이후 모든 도시의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에 영감을 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모든 도시처럼 우리 서울시의 지하철 노선도 역시 헨리 벡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미지

 

런던 지하철
객차와 터널의 둥근 모양이 마치 튜브와 같다고 하여 ‘튜브’라는 이름으로 즐겨 불리우는 런던 지하철은 1863년 1월 10일에 메트로폴리탄 라인의 운행으로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도망이다. 총 287개의 지하철역과 415km의 선로로 이루어져 있다.

 

에드워드 존스턴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 1872~1944은 영국 출신의 서체 디자이너로 런던 지하철의 전용서체인 ‘레일웨이 서체Railway Type’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서체는 빅토리아 시대의 서체 개념을 넘어선 20세기 최초의 산세리프체라는 평가를 얻고 있으며 에릭 길Eric Gill, 1882~1940의 길 상스Gill Sans 서체에도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에 뱅크스 앤드 마일스Banks & Miles 사의 에이치 코노Eiichi Kono에 의해 다시 디자인되면서 ‘뉴 존스턴New Johnston’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고 이후 디지털 폰트로서 다양한 버전으로 개발되었다.

 

레일웨이 서체
레일웨이 서체Railway type는 에드워드 존스턴이 1916년에 개발한 서체로 기하학적인 단순함을 기본으로 매우 견고한 인상을 주는 서체이다. 존스턴은 달리는 열차 안에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읽히는 서체를 만들고자 했으며, 런던 지하철에 사용된 레일웨이 서체는 기업 및 도시 아이덴티티에 최초로 전용서체가 사용된 사례이기도 하다.

 

언더그라운드 심벌
언더그라운드 심벌Underground Symbol로 널리 알려져 있는 런던 지하철 심벌은 1908년에 레일웨이 서체를 디자인한 에드워드 존스턴이 ‘라운델Roundel’이라는 이름으로 터프넬 파크Tufnell Park 역의 로고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이후 1913년부터 다른 역에도 사용이 되었다. 오늘날 라운델은 지하철뿐만이 아니라 버스 등 런던의 공공교통수단 로고로 사용되고 있으며, 역이나 정류장의 위치를 멀리서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사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역할 이외에 런던이라고 하는 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 심벌이자 중요한 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헨리 벡
런던 지하철 회사에서 전기 엔지니어링 기술자로 일하던 헨리 벡Henry Beck, 1903~1974은 1931년에 자발적으로 런던 지하철 노선도를 새롭게 디자인했으나 같은 해 기업의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실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디자인한 노선도는 동료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아서 벡은 회사에 자신의 노선도를 채택해줄 것을 거듭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 회사에서는 벡의 노선도가 너무 혁신적이고 추상적이라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몇 차례 건의한 끝에 드디어 회사는 1933년 1월에 그의 지하철 노선도를 시범삼아 인쇄하여 시내 중심가의 지하철역 몇 곳에 무료로 배치했는데 이 노선도는 런던 시민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헨리 벡은 1937년에 노선도에 대한 저작권을 회사에 넘겼고, 사망하기 전까지 노선도를 수정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갔다. 오늘날 그의 작업은 전 세계적으로 대중교통 노선도의 원형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미지

 

참고 사이트
런던 지하철 공식 웹 사이트 www.tfl.gov.uk
런던 교통박물관 www.ltmuseum.co.uk
런던 지하철 노선도에 관한 정보 www.20thcenturylondon.org.uk

 

참고 자료
『디자인앤솔러지』 중 ‘런던 지하철 노선도: 현대적 시공간에 대한 상상’, 박해천 외 엮음, 시공사, 2004

Tag
#런던 #지하철 #헨리 벡 #레일웨이 서체

목록 버튼 이전 버튼 다음 버튼
최초 3개의 게시물은 임시로 내용 조회가 가능하며, 이후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임시조회 게시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