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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부엌의 발명 - 프랑크푸르트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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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주방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하고 편리하고 기능적이다. 이는 프랑크푸르트의 한 여성 건축가가 현대 생활에 알맞은 새로운 주방을 디자인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스타일의 주방 가구가 출시되지만, 아직도 이 프랑크푸르트 주방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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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아파트가 우리 주거문화의 중심이 되기 전만 해도, 한국의 주부는 재래식 부엌에서 고된 가사노동에 시달렸다. 강남에 단독주택이 막 들어서기 시작한 1970년대까지도 대부분의 주부 또는 이른바 ‘식모’는 방보다 낮은 곳에 있는 부엌으로 내려가 일했다. 그리고 상을 들고 계단을 통해 다시 부엌에서 방으로 올라와야 했다. 그 무거운 상을 들고 계단을 오르고, 또 식사가 끝난 뒤에 다시 상을 들고 내려가는 일을 반복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원시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그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연탄 아궁이 방식의 난방 시스템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어서 쾌적한 환경이란 아예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아파트는 이 비효율적인 부엌을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부엌은 주방으로 거듭났고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주방기기를 수납하고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주부들이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를 더 선호하고 아파트의 금전적 가치도 더 높다. 바로 이 편리한 주방에 대한 선망의 시선이 주부의 마음속에 원초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 한국의 주부가 가장 부러워한 것이 바로 현대식 주방이었다. 당시 그것은 부의 상징과 같았다. 이제 주방은 거실보다 더 중요한 가족의 중심 무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 건축가인 마가레테 쉬테-리호 츠키가 현대식 주방 시스템을 디자인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주방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서양이라고 해서 부엌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쾌적하고 효율적인 환경이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도 부엌은 단지 가사노동을 책임지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요리를 하고, 물을 끓이고, 물건을 수납하는 고된 작업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서양의 부엌은 공간이 꽤 큰데도 복잡하고 비효율적이었다. 이런 비효율적인 공간에 대한 개선은 독일에서 처음 일어났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집을 잃은 수많은 사람의 집 수요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했다. 이에 1926년부터 독일에서는 대규모 사회 주택 건설  사업이 시작되었고, 재능 있는 건축가들이 이 사업에 동원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고통 받는 민중을 위해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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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전통적 부엌의 모습. 여성들에게 큰 노동부담을 주었던 구조이다.

 

쉬테-리호츠키는 일찍이 미국 산업에서 일어난 테일러리즘의 합리성에 공감하고 있었다. 테일러리즘은 공장에서 부품과 공정, 노동 등을 모두 표준화하여 근로자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과학적 관리 시스템이다. 쉬테-리호츠키는 주택에서도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최소의 공간으로 활용도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주택난이 심했던 당시로서는 가장 적절한 연구 과제였다. 이런 연구의 결실이 바로 프랑크푸르트 주방이다.

 

일단 기존 주방의 크기를 대폭 축소했다. 쉬테-리호츠키는 주부가 수납장에서 도구를 꺼내고 가스레인지에서 요리를 하고 그릇에 음식을 담고 식탁에 가져가는 일련의 활동과 그에 따른 동선의 길이를 연구했다. 그리고 주부가 가장 짧은 거리를 움직이고 가장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도록 가스레인지와 개수대, 식기건조대, 수납장의 위치를 신중하게 결정했다. 또한 쾌적한 주방을 위해 후드가 달린 가스레인지를 기본으로 했고, 쓰레기 버리는 곳도 별도로 마련했다. 수납장의 재료와 색상도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따라 결정되었다. 밀가루 보관용 서랍장은 벌레에 저항성이 있는 참나무로 만들었다. 주방가구의 색상을 코발트블루로 선택한 이유는 박테리아 숙주인 파리가 싫어하는 색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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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식 주방 문화를 선도한 한샘의 초기 시스템키친 광고.

 

이렇듯 프랑크푸르트 주방은 철저하게 실용성과 효율성, 경제성을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따지고 연구해 디자인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여러 곳에서 현대식 주방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쉬테-리호츠키의 프랑크푸르트 주방보다 뛰어난 주방은 없었다. 곧 이 주방은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잡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서구 사회에서 효율적이고 쾌적한 프랑크푸르트 주방은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에는 첨단의 주방, 아름답고 낭만적인 주방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기본이 프랑크푸르트 주방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부엌 문화를 가진 아시아 국가조차 이제는 모두 이 주방 방식으로 대체하고 있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주방을 가정의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시작을 만든 것이 바로 프랑크푸르트 주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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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Margarete Schüette-Lihotzky, 1897~2000는 20세기 초에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현재의 비엔나 미술응용학교의 전신인 K.K 예술산업학교를 졸업하고 건축가로서 활동을 했다. 그녀는 사회, 정치, 인간의 생활과 여성 등의 주제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자신의 작업에 적용했다. 1926년 조립식 설비를 갖춘 ‘프랑크푸르트 주방’을 설계하면서 ‘주방 건축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1938년에는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침략에 맞서 저항운동을 하기도 했으며 1940년에 독일군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뒤 『저항의 기억』이라는 책을 냈다. 이후 세계 평화운동을 위한 공로상 등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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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독일의 주택 건설 사업
독일에서는 1926년에 대규모 주택건설사업이 실시되었는데 이 사업의 목적은 주택 부족의 해결만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을 지닌 젊은 건축가들로 하여금 현대 주택건축에 있어서 기술적이고 미학적인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당시 대부분 만 45세 이하였던 젊은 건축가들은 다양한 건축 자재와 최신의 기술을 실험적으로 사용하여 현대 건축의 새로운 양식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테일러리즘
과학적 관리법이라 일컬어지는 테일러리즘Taylorism은 미국의 엔지니어였던 프레드릭 테일러Fredrick W. Tayler, 1856~1915가 사무실 공간을 설계하면서 업무의 효율적 진행과 손쉬운 감시 감독 기능을 염두에 두었던 데에서 시작되었다. 테일러는 넓은 공간에 많은 노동자들을 배치하고 사장이 개인 사무실에서 이를 감독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테일러리즘에서는 최소의 노동과 비용으로 최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경제적 합리성을 중시한다. 1920년 경 헨리 포드Henry Ford는 테일러리즘의 분업화, 표준화, 전문화 방식을 자동차 생산 공정에 도입하였다. 이후 통신판매회사나 보험사, 정부 공공기관 등이 이 방식을 채택하여 널리 확산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주방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는 일반 주택의 부엌도 열차 내의 부엌처럼 기능성을 최대한 높여 6.5 평방미터 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추어진 일체형 표준설비를 갖추고자 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프랑크푸르트 주방이다. 이 주방은 1931년에 열린 ‘독일 건축박람회’에서 획기적인 것으로 높이 평가되었으나 나치 시기 동안 독일에서는 각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1930-40년대 동안 미국과 스웨덴, 스위스 등 외국에서 꾸준히 발전하면서 더욱 규격화된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완벽한 세트 구성은 전 세계에 3개 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2008년 9월에 금호미술관에서 열렸던 ‘유토피아’ 전시회에서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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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환경 #주방 #부엌 #프랑크푸르트 #테일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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