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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빈 병 재활용 시스템

 

독일에서 생활한 지 4년이 넘었다. ‘일터에서는 영어로 모든 의사소통을 하기에…’라는 핑계로 4년째 독일어는 늘 제자리걸음이지만, 생활면에서 아주 익숙해졌고 독일 생활에서 배울 것들과 한국에서는 익숙하지만, 이곳에서는 포기하거나 버려야 할 것들이 명확해졌다. 가끔 방문하게 되는 한국의 친근해야 할 것들이 낯설어지게 되어버린 최근, 한국으로 출장을 다녀온 필자는 너무나도 반가운 24시간 편의점에서 플라스틱병에 담긴 보리차를 하나 샀고 이내 마시고 난 병을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처음 독일 뮌헨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생수 한 병을 사면서 ‘물 하나가 뭐 이리 비싸?’하며 불평하고는 다 마신 병을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쓰레기통에 버린 필자는 숙소로 가는 길목에서 길가에 놓인 빈 병들을 수집(?)해가는 행인을 목격했다. 이쯤 해서 벌써 눈치를 챘다면 좋았을 일이지만, 그 이후로도 한참을 같은 행동을 계속한 필자는 뮌헨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재활용 천국 독일의 빈 병 재활용 시스템을 경험하게 되었고, 2009년 8월 31일 (필자가 독일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부터 약 열흘 가까이 길거리에 비자발적 기부해버린 돈을 아까워하게 됐다.

 

독일 생활에서 배운 것들 중 하나, 다 마신 병도 다시 보자.

 

전 세계에서 자원 재활용, 생태 에너지 활용, 친환경과 관련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가 독일이다. 한국에 대한 조건 없는 부정과 외국에 대한 이유 없는 찬양을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래 우리도 잘하고 있지만, 더 잘하고 있는 남이 있다면 좀 배우자.’라는 입장을 전제로 하고 이번 리포트를 써내려갈까 한다.

 

 

 

한국에서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친구들과 동네 곳곳의 빈 병들을 주워다가 슈퍼마켓에 팔고 모인 돈으로 떡볶이를 사 먹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한국의 공영방송에서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독일의 재활용 시스템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방송사에서 실험한 결과, 서울 시내 어느 슈퍼마켓, 편의점 중 실험 대상이 되었던 어느 점포에서도 빈 병을 가져다 되팔려 했을 때 받지 않더라는 점이다. 방송은 반대로 독일의 경우에 재활용이 가능한 빈 병을 모아다가 다음번 장을 볼 때 다시 슈퍼마켓에 가서 돌려주고 최초 구매 시 냈던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이 일상이더라는 것을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정부 관료와의 인터뷰, 독일 전역에 위치한 커다란 슈퍼마켓 브랜드의 사장의 인터뷰, 독일 가정의 엄마와 어린 딸이 다 마신 병을 따로 수집하고 병 보증금을 돌려받는 일과를 통해서 정부와 기업, 국민들이 어떻게 시스템을 만들고 지켜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는 독일인의 국민성에 비추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자연을 생각하고, 절약하며 재활용된 것들에 대한 가치를 높게 사는 독일인의 국민성을 생각할 때 적절한 비유다. 덧붙여서 필자와 같은 이방인 역시 이 시스템 안에 녹아들게 만든 것은 국민성을 넘어서 이 모든 시스템이 얼마나 잘 계획되었고, 기업과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어졌는지도 중요하다.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된 초기 계획과 필요한 모든 환경을 갖추었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적절한 동기부여를 지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이 국민성을 시스템으로, 시스템을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하나의 문화로 변화시킨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 Pfand 표시 (Image ⓒ google) : 유리와 플라스틱병에 담긴 음료를 구매할 때 확인할 것은 병에 붙어있는 다음과 같은 모양의 라벨이다. 이는 재활용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 표시가 있는 음료를 살 때는 독일어로 “Pfand(퐌트)”, 영어로는 “Deposit”, 한국어로는 “보증금”을 내야한다. 예를 들어 1유로짜리 플라스틱 병에 담긴 음료수를 살 때, 25센트의 보증금을 함께 지급하고, 후에 반납하면 25센트를 다시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어린 시절 빈 병을 모아서 슈퍼마켓을 돌며 팔았던 것과 같은 방식이지만 모든 것이 이 표시가 있는 라벨에 근거한다. 라벨이 없어지거나 훼손된 병으로는 보증금을 받을 수 없다.

 

 

 

슈퍼마켓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빈 병 반납과 보증금 환급이 이뤄질까? 필자가 직접 빈 플라스틱병을 가지고 체험하는 상황으로 설명하려 한다.

 

 

 

 

 

슈퍼마켓 (Image ⓒ google) : 가까운 슈퍼마켓을 찾았다. 독일 대부분의 슈퍼마켓에서 모두 재활용병을 회수하고 보증금을 환급해준다.

 

 

 

 

 

빈 병 반환기계 (Image ⓒ 필자) : 대부분의 슈퍼마켓의 매장 한편에는 이미지에서 보이는 반환기계가 있다. 필자는 빈 플라스틱 물병 세 개를 반납하러 왔는데, 반환기계 전면에 보이는 투입구에 병을 투입하면 내부의 컨베이어벨트가 병을 좌우로 돌려가며 레이저 스캔을 하기 좋은 위치로 이동시킨다. 바코드 라벨을 인식하면 기계의 건너편 안쪽 컨테이너로 병을 떨어뜨리고 새로운 병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투입구 옆의 화면에는 병에 대한 정보와 환급받는 금액이 표시된다. 기계의 하단부에 위치한 커다란 투입구는 상자 채로 빈 병을 반납하기 위함이다.

 

 

 

 

반납 완료 (Image ⓒ 필자) : 세 병의 반납을 마치고 초록색 버튼을 누르면 반납이 완료됐음을 의미하고, 기계로부터 보증금과 바꿀 수 있는 영수증을 받게 된다. 종종 버튼이 두 개 있는 기계도 존재하는데 이는 환급받은 금액을 본인이 받을 것인지, 혹은 사회에 기부할 것인지를 선택하기 위한 장치이다.

 

 

 

 

환급 증명서 (Image ⓒ 필자) : 물병 세 개를 반납하고 75센트의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 필자.

 

 

 

 

환급 과정 (Image ⓒ 필자) : 발급받은 영수증을 계산대에 보여주면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고, 혹은 다음에 구매하는 물건의 값을 치를 때 제출하여 그 금액만큼 할인받을 수 있다.

 

 

 

 

▲ Pfand의 기부화 (Image ⓒ 필자) : 위 포스터는 특정한 행위를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포스터의 왼쪽 아래에 익숙한 Pfand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이 포스터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빈 병 반납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럴 때는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쓰레기통 옆에 놓아달라는 메세지를 이 포스터는 전하고 있다. 독일에도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은 사회 약자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노숙자들은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발견한 재활용 가능한 빈 병을 슈퍼마켓에 가져다 팔고 어렵게 끼니를 해결한다. 이러한 사회 약자들을 위해서 어차피 환급받지 않고 버릴 거라면 더러운 쓰레기통 안에 넣지 말고, 쓰레기통 밖에 놓아서 노숙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고 더러운 쓰레기통 안에 손을 넣고 휘저으며 찾는 수고를 덜어주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사회 운동은 독일 전역으로 퍼졌고, 베를린 등의 도시에는 노숙자들을 위해서 쓰레기통 옆에 재활용 가능한 빈 병만 따로 모아두는 수거함도 따로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연말인 요즘 한국의 거리마다 늘어난 구세군 자선냄비를 떠올려 보았다. 지갑을 열어서 돈을 꺼내기보다 이미 지급한 음료값의 일부인 보증금을 다시 돌려받는 수고 대신에 빈 병으로 그들을 돕는 색다를 형태의 기부운동인 셈이다.

  

 

독일에 첫 발을 들이고, 처음으로 (좋은 의미에서) 놀랐던 것 중 하나인 빈 병 재활용 시스템. 사회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위화감 없이 모든 구성원이 지켜나가게 하고, 어른들이 먼저 행동함을 보여주는 교육을 통해서 다음 세대로 이 가치를 전달해나가고 있는 독일인들의 모습에서, 잘 디자인된 시스템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리포터 소개

 

리포터 양성철은 독일 뮌헨의 디자인 에이전시, Pilotfish GmbH(www.pilotfish.eu)에서 Senior Industrial Designer로 일하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겪는 디자이너의 일상들이나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지만,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Tag
#독일 디자인 회사 #Pilot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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