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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개발과 공동체 _ 나조영

도시 개발과 공동체



글 나조영

지난 겨울 한 달간 서울을 떠나 있었다. 2월 말이 다 되어서 다시 서울에 오니 늦겨울의 서울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독을 정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편입하고자 했을 때, 너무나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먼 산이 보이고, 서울의 여느 산처럼 그곳은 산 중턱까지 고만고만한 서민 주택들로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분명 한 달 전 서울 떠나기 전에는 멀쩡하던 그곳이 한 달 후에는 누런 황토 빛만을 남기고 없어져 있었던 것이다. 재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뉴타운이다 뭐다하는 이야기들이 미디어에서 나오고, 주변의 빈 상가에는 ‘재개발 전문’이라는 간판을 내건 부동산들이 갑자기 생기더니만, 이제 정말 일상의 공간에서도 재개발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북가좌동의 일부가 평탄화됐고, 왕십리는 거대한 오피스텔 뒤로 모든 집들이 사라졌으며, 금호동 산 중턱의 집들 역시 쓸려 내려갔다. 언제 공사장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것도 같지만, 서울은 현재 완전히 공사장이 되어버린 것 같다. 사대문 안팍에서, 주거지역에서 다운타운까지, 서울은 지금 리노베이션 중인 것이다. 일부는 업그레이드라고도 하고 일부는 리제네레이션이라고도 하지만 말이다.


그림1. (왼쪽) MVRDV의 Grand Paris 구성 이미지 ⓒMVRDV, (오른쪽) Christian de Portzamparc의 Grand Paris 구성 이미지 ⓒ Atelier Christian de Portzamparc

현재 서울의 이러한 개발은 비단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 역시 그랑 파리(Grand Paris) 프로젝트를 발표하여, 파리를 리노베이션 할 뿐만 아니라 파리를 광역화 함으로써 새로운 도시로 재창조하고자 한다. 영국의 경우는 지난 런던의 이스트 개발 성과에 힘입어 이미 2단계로 자신들의 템즈 게이트웨이 재생(Thames Gateway Regeneration)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이 개최될 쯤이면, 아마도 대략적인 결과를 우리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베를린, 뉴욕, 도쿄, 상하이를 거쳐, 전세계의 거의 모든 도시들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개발은 예전의 도시 개발과는 다소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의 개발이 발전과 성장이라는 개념을 산업적인 측면에서 살펴 봤다면 이제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개발의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개발에는 생태와 환경, 그리고 문화가 중심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예전의 삶이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했다면, 지금의 삶은 그 질을 고려한다. 더욱이 이러한 태도는 지속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도시개발의 대표적인 예를 서울에서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은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근대적 도시로 변화됐지만, 한국 전쟁으로 그 대부분이 파괴됐고, 60년대 다시 산업기지로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80년대 말 이러한 도시의 성장을 더 이상 서울이 감당해 내지 못하게 되자 서울은 신도시를 만듦으로써, 자신을 확장함으로써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서울은 다시 자신의 내부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문화적인 것들이고 그것을 구현시키는 것은 디자인인 것 같다. 


그림 2. 서울시의 2020 서울도시기본계획, 이슈별 공간구조구상도
출처
http://www.seoul.go.kr/2004brief/2020/space03.html

도시는 점점 환경, 첨단, 문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문제는 이러한 도시의 변화가 다들 비슷비슷해진다는데 있다. 20세기 초 보다 쾌적한 삶을 꿈꾸며 탄생한 국제주의의 개념이 포스트모던과 해체주의 양식과 결합되어 재탄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의 도시계발이 대체로 제트셋(jet set) 건축가와 도시계획자의 중요 디자인 개념들로 출발한다는 데서 이미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도시 개발에는 인문학적 성찰과 반성 그리고 공존의 개념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 교토의 마치야 클럽 네트워크(Machiya Club Network)는 도시 성장과 공동체의 삶에 대해 진지하지만 유쾌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마치야(町家)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지어졌던 일본식 목조 주택을 일컫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식 전통주택은 대부분 마치야식 주택이고, 교토하면 떠오르는 전통 건물들 역시 이러한 마치야식 주택들이 대부분이다.

마치야 클럽 네트워크의 실험은 한 사진가에서 출발했다. 도쿄 출신으로 교토로 이주한 사진가 코하리 타케시(Kohari Takeshi)씨는 아파트 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는 지인으로부터 일본 전통가옥인 마치야에 대해서 소개받았다. 당시 교토에서 전통적인 마치야가 있는 지역은 시내 중심인 니시진(Nishijin)으로, 이 지역은 90년대 이후 매우 심각한 공동화 현상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교토의 전통적인 비단 직조 및 기모노 생산지역으로,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공장지대였다. 그러나 비단 직조와 기모노 제작 방식이 변화를 맞이하면서 공장은 도시 외각으로 이전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집들은 그대로 남겨졌다. 왜냐하면 비단과 기모노 산업이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로 마치야들은 공장주의 가정사가 담긴 집이었고, 주인들은 선뜻 이 집을 팔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팔려고 내놓아도 오래된 목조건축이라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워 잘 팔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되다 보니 이 지역은 점점 더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지역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 지역의 한 초등학교는 교토 시내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입학하는 학생이 없어 폐교하고 말았다. 이 학교는 현재 아트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타케시씨에게 니시진의 마치야는 최상의 주거환경이었다. 왜냐하면 니시진의 마치야가 공장을 위한 공간이면서도 주거를 위한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에, 사진작업을 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니시진의 마치야에 거주할 수 있었고, 주변 예술가들과 디자이너 공예가들을 이곳으로 불러 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마치야를 소유하고 있는 공장주들은 선뜻 이 주택을 임대해주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집을 남에게 임대해주는 것도 그렇고 예기치 못한 문제에 휘말리는 것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타케시 씨와 동료들은 지속적으로 건물주를 만나 설득했으며, 자신들의 역사와 기억이 담긴 이 지역이 문화예술인들에 의해서 활기를 얻게 되는 것을 환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 3. 일본 교토의 마치야 클럽 네트워크 홈페이지 www.machiya.or.jp

전통가옥 보존과 지역 재생을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이들의 노력은 교토시 정부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냈다. 시정부 역시 니시진 지역의 공동화 문제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었고, 도시 재개발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또 다른 도시 중심 개발을 도시의 경제력이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아 보류 중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치야 클럽 네트워크의 자발적인 도시 재생을 위한 노력은 시 정부로 하여금 도시 개발과 재생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이러한 도시 재생을 위한 노력은 비단 전통적인 것에 머물고 있지 않다. 일본의 또 다른 도시 재생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는 요코하마의 항만 일용직 노동자들을 위한 싸구려 거주 시설들을 전세계의 젊은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로 변화시켜, 지역 이미지 변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프로젝트로 기획된 것이다. 항구라는 요코하마의 역사와 그 역사 이면에 있는 항만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기억이 젊은 여행자들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개발과 재생이 단지 새로운 건설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시의 특성화라는 것도 세계적인 디자이너나 예술가를 초대하고 그의 ‘작품’을 만들어 놓는 것에 머무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 어떻게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조건을 만들 것인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발이 발전이라는 성장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조건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아파트 당첨권이 일생의 또 다른 로또 당첨권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너무 원론적이거나 순진한 발생이라고 치부될지라도 말이다.



나조영_문화연구 및 문화 인류학 전공. paul.jy.nah@googlemail.com

문화 인류학적 시각으로 동시대 사회문화현상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트렌드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지만, 그 트렌드를 쫓아 가기 보다 사회 문화를 분석하는 틀로 삼고자 할 뿐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적용 전유 가능한 또 다른 시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Tag
#도시 #재개발 #뉴타운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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