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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프로덕션 센터 '앙가' 방문기 _ 신보슬

CHANGE the Media (art) Center!
 -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프로덕션 센터 ‘앙가’ 방문기



글  신보슬

2009년 10월의 마지막 날 11월을 코앞에 두고 있었지만,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따뜻하고 화창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관광객으로 뒤덮인 라 람브라 거리를 떠나 전철을 타고 한적한 외곽에 위치한 앙가(Hangar)를 찾았다. 앙가는 오스트리아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나 독일의 ZKM처럼 미디어 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디어아트 센터라기보다는 창작 지원을 기반으로 하는 레지던시 공간에 더 가깝다. 특히 요즘에는 앙가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미디어랩과 작가들의 창작활동이 잘 어우러지면서, 성공적인 프로덕션 센터로서 자주 거론된다. 늘 말로만 듣던 곳이기에, 앙가를 찾는 발걸음에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앙가의 첫인상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제대로 된 간판이라는 것도 없었고, 건물은 예전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주변엔 덤불이 가득했고, 버려진 공장 건물들만 눈에 들어오는 말 그대로 ‘후미진’ 곳이었다. 바로 길 건너에는 유명한 건축가 사무실에서 설계한 공원과 신 주거단지들이 들어왔지만, 아직 앙가는 전형적인 재개발 후보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들어가는 곳에는 가로등조차 제대로 없이 작가 스튜디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전부였다. 개인적으로 허름한 공장 건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앙가의 모습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럭셔리(?)한 창작공간들과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작고 허름한 공간을 세계관계자들이 주목하게 만든 것이었을까. 워크숍 공간에 들어섰을 때, 앙가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림 1. ‘앙가’ 실내 전경

늦은 저녁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워크숍 공간은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5~6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여기저기 포스트잇도 붙이고, 차트도 그려가며 토론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그룹에서는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가 하면, 어떤 그룹에서는 이미 논의된 사항을 정리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는지 커피 한 잔, 맥주 한 병 들고 밖으로 나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워낙 자유롭게 진행되는 워크숍이어서, 뜬금없이 들이닥친 이방인도 금방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날은 ‘Free Culture Forum: Organization and Action’이 열리고 있었던 것인데, 이 워크숍은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4일 동안 개최되는 행사로서 ‘Free Culture’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와 논의를 하는 자리였다. 각 그룹들은 법률적인 측면을 고려하기도 하고, P2P 모델과 경제적 관점을 논의하거나 프리 소프트웨어와 오픈 스탠다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지식에 대한 접근권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날만 되면 요식행위처럼 외국의 저명인사들을 불러다가 20여 분의 발표기회를 주고, 좋은 식사 잘 대접해서 보내는 우리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그림 2. ‘앙가’ 실내 전경

사람들이 앙가를 주목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각각의 스튜디오 안에 갇혀서 개별 작업을 하고, 그것을 지원해주는 차원에서 운영되는 수동적인 많은 레지던스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작가들의 필요로 인해서 만들어졌고, 자체적으로 운영을 위한 노하우를 만들어갔으며, 그것을 배경으로 새로운 센터의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앙가가 정부주도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라 예술가협회(artists association)의 차원에서 시작되었으며, 초기에는 버려진 공장단지를 스쿼팅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을 통해서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에는 정부도 앙가의 역할과 기능을 인정하여,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건물도 약속했다는 희소식도 전했다.


한때,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있었고, SF 영화에서나 볼법할 일들은 사실 모두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의 모든 전기가 나갔단다. 긴급 발전기조차 돌아가지 않았고 문명의 모든 기록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렇게 인류는 다시 암흑기에 빠져들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지금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상상하는 그 모든 것을 결국은 이루어내기 때문에 무섭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떤 상상을 하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좋은 상상과 생각들이 모이면 마침내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때문에 그런 좋은 상상과 생각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장(場)이 필요하다. 더 잘 팔리고, 더 잘 전시되는, 더 많은 시선을 끄는 ‘가제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시스템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그런 장(場) 말이다. 미래의 미디어(아트) 센터는 아마 그런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생각과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이 긍정적인 파장을 생산하는 그런 곳!



신보슬_큐레이터

10년도 넘게 미디어아트라는 녀석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많은 전시와 작품을 만나며, 일상에 많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해왔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그 신나고 즐거운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몇몇 괴짜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나아가 사람이 더불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Tag
#앙가 #스퀏 #레지던스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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