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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즈와 힙합이 의미했던 것들 _ 나조영

모즈와 힙합이 의미했던 것들



글  나조영


© paul.jy.nah

10년 전, 우스개 소리로 강북 청소년은 교복을 모즈 스타일로 고쳐 입고, 강남 청소년은 힙합 스타일로 교복을 고쳐 입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실제로 당시, 동대문 밀리오레 앞에서 보게 되는 강북 청소년들은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교복을 지나치게 몸에 딱 달라붙게 수선을 해서 입고 다녔다. 이러한 강북식 모즈 스타일의 궁극적인 완성이 깻잎 머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남은 좀 달랐다. 소위 똥싼 바지로 대표되는 미국식 힙합 스타일이 대세였다. 펑퍼짐한 청바지와 헐렁한 티 셔츠와 야구모자, 흑인 풍의 장신구들이 청소년들을 휘감았다. 당시 이러한 강남 청소년 사이의 힙합 문화에 대한 푸념은 아시아의 도시들에서 동방신기가 먹히지 않는 곳은 오직 강남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비단 청소년들의 외모와 스타일에 머물지 않고 강북과 강남을 활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강북에는 방만한 몸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으며, 강남에는 관리되는 몸들만이 캣워킹으로 거리를 활보하거나 자가용에 몸을 싣는다. 심지어 가판대 주인들의 태도도 다르다. 5백원짜리 껌을 팔아도, 강북이 물건을 판다면 강남은 서비스를 판다. 서울 깍쟁이가 다 같은 깍쟁이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문화적 차이라면 좋겠지만,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단면처럼 보여져서 문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미술 평론가는 서울의 다리를 찍는 사진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다리는 이제 연결과 소통을 위한 다리가 아니라 분리를 위한 다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 신문사는 지난 1999년 이후 대법원 판사 임용자의 출신 지역 및 고교를 분석했다. 1999년 특목고 및 강남 서초 송파로 대표되는 강남3구 소재 고등학교 출신자들의 비율이 9.6%(15명)를 치지했지만, 2001년 12.4%(23명), 2003년 20.2%(35명), 2005년 25.2%(37명), 2007년 33.3%(51명), 그리고 2009년에는 37.0%(51명)로 급상승했음을 보여줬다. 10년 사이에 4배 가량이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빈부의 격차가 사회적 지위의 격차를 고착화시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강남 고교와 특수목적고에서 앞으로는 조기 유학자들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게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의 문제는 비단 교육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과학기술, 의료, 문화 통신 등 우리의 삶 전 분야로 확장된다. 신종 플루와 관련된 보도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독거 노인들에 대한 기사였다. 신종 플루로 온 국민이 소독약을 가방에 넣고 다닐 때, 도시의 새로운 빈민인 독거 노인들은 의심 증상이 나타나도 검사 비용이 부담되어 검사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료 분야에서 양극화는 삶의 질과 관련되어 직접적으로 가시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와 보험 분야에서 민영화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러한 사회의 양극화 문제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동연구원은 2007년 한국의 소득불평등도가 4.74로 1997년의 3.72보다 1.02포인트 상승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소득불평등도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높으며, 상승 속도는 OECD 21개 회원국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소득불평등도는 상위 10%인 근로자의 소득을 하위 10%인 근로자의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클수록 불평등도가 높은 것인데, 노동연구원인 2009년 OECD 고용백서를 통해 발표된 `P90분위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물론 근로소득불평등도가 높아지는 것은 대부분 OECD 국가에서 발견되는 일반적 현상이지만, 사회 보장제도와 안전망이 잘 갖춰지지 않은 한국에서는 우려할만한 수준이라는 것은 국제 기구에서도 권고된 상황이다.

또한, 노동연구원은 한국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는 전체 임금 근로자의 소득 수준 중 중간치의 소득을 기준으로 삼아, 그 소득의 3분의 2가 안 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 모 국회위원은 2000년에서 2007년 사이 발간된 ''노동 패널'' 조사를 바탕으로 거주 주택 포함 자산 총액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의 53.3%의 자산을 차지하고 있으며, 거주주택을 제외할 경우 상위 10%가 전체 자산총액의 74.8%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단순히 소득 불균형에서 벗어나서 보유재산에서도 심각한 부의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가 지칭하는 것은 단순히 상류층과 빈곤층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빈곤층의 중산층으로의 진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에 새롭게 진입하는 청년 계층의 사회 적응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빈곤의 악순환이 전 사회 계층을 통해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양극화는 무한 성장과 발전 아래 작동되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당연시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양극화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자신이 노력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는 또 다른 발전의 신화를 작동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겨울 뉴욕발 금융위기는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자신의 논리를 펼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국가와 사회의 공적 역할이 삶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드러냈다. 최근 등장하는 외고 폐지론은 교육분야에서 양극화가 야기한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외고가 없어졌다고 해서 교육분야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양극화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통합과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는 본래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다른 의미와 역할을 요청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조영_문화연구 및 문화 인류학 전공. paul.jy.nah@googlemail.com

문화 인류학적 시각으로 동시대 사회문화현상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트렌드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지만, 그 트렌드를 쫓아 가기 보다 사회 문화를 분석하는 틀로 삼고자 할 뿐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적용 전유 가능한 또 다른 시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Tag
#빈민 #특목고 #신자유주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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