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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뭐길래 - 마치며 _ 나조영

사회가 뭐길래 - 마치며



글  나조영

''트렌드를 분석한다''는 표현은 그 용어에서 경영담론 혹은 경영전략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동향을 파악한다는 차원에서 이것은 인문 사회 과학 전분야에 걸쳐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시대적 감수성을 파악한다는 식으로 고쳐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것은 이제 딱딱하고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90년대 이후 사회가 문화적 전환을 야기한 이후로 사회를 관찰하는 데 있어 문화적인 것이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정치 선전 구호나 투쟁의 문제를 떠나 우리 삶의 모든 조건과 상태가 바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시공간에 대한 동시대성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인문학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것 같지만, 인문학 역시 그 사회의 동시대성과 긴밀하게 대화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의 동향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자연과학의 발달은 사회의 변화와 동향을 예견하고 앞서 나가는 가장 선구적인 인간의 지적 활동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자연과학의 흐름 역시 사회의 변화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통계청에서 발간하는 수많은 수치들은 매우 중립적으로 보고서에 기록되지만, 그 수치들은 관점에 따라서 자유롭게 전유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들여다 보기도 싫은 수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사업과 돈에 밝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알려주는 예견서일 수도 있다. 카페에 앉아 거리를 활보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스타일을 품평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천박한 취향을 위로하기 위한 방편으로 구시렁거리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패션 경향과 동향을 분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적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행간을 읽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2009년이 이제 한 달 가량 남았다.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던 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출발한 올해는 한국의 종교 및 정치 지도자뿐만 아니라 팝의 황제마저 떠나 보내야 했다. 용산참사는 양극화와 도시 개발에 대한 성찰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지만, 서울은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공간이 리폼되었고 지금도 리폼 중이다. 10대 소년 소녀들이 떼로 몰려나와 비슷비슷한 노래를 불렀지만, 10대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젊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섹시함을 과시했다. 조류독감은 돼지 독감으로, 그리고 신종플루로 우리의 일상을 공포로 몰아 넣었고, 화장실을 이용하고도 손을 잘 씻지 않던 한국 남성들도 자연스럽게 손을 씻게 되었다. 이제 남성들은 손에 머물지 않고 패션과 트렌드의 주체로 떠오르기도 했다. 태풍과 허리케인, 지진 등이 빈번히 발생했으며, 종교적 정치적 분쟁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모 연예인의 유골함 도난 사건에서부터, 어린이 성폭행과 묻지마 살인과 같은 범죄들은 사회의 안전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개기일식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이 살아났지만, 아쉽게도 한국 우주선의 발사는 실패했다. 미국은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맞이했고, 일본은 54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북한은 김정일 위독설에서부터 수공작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다양한 소식과 사건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나의 2009년을 되돌아보면, 어렵사리 분양 아파트의 입주금을 다 마련했지만, 결국 입주는 못하고 세를 주면서 상대적 박탈감만 느꼈고, 강의를 7개나 뛰는 강행군을 했다. 피나 바우쉬와 머스 커닝햄의 죽음을 보면서 한 세기의 문화가 종결됐음을 느꼈으며, 조반니 아리기가 올해 사망했다는 소식에 왜 지금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필리핀의 태풍으로 나의 필리핀 친구의 생활공간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에 전지구적 환경문제가 나에게도 관계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며, 독일인 친구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되었다는 소식에 나도 이제 젊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돌아보니 올해는 정말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해였던 것 같다. 사회적 이슈들이 관념으로 와 닿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에서 직접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올 한해는 여러 가지로 다소 우울한 시기였던 것처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희망의 요소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어떤 차원에서 변화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예전의 ‘격동의 세월’ 같은 긴장감을 유발하는 사건 사고는 없었다. 그러나 분명 지금이 변화의 시점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올해 초 뉴욕발 금융위기는 상징적으로 그것을 대변한다. 이것은 80년대 말 이후 광폭하게 몰아친 신자유주의의 성장과 횡포가 스스로 자신의 생명력을 다했음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신자유주의가 빨아들여 변화시킨 우리의 삶은 그 성장 가능성으로 어떤 장미빛 환상을 제공해 주었지만, 우리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삶의 본질적 조건들에 대해 성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리고 2010년은 그 첫 번째 해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분명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른 가능성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 paul.jy.nah



나조영_문화연구 및 문화 인류학 전공.
paul.jy.nah@googlemail.com

문화 인류학적 시각으로 동시대 사회문화현상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트렌드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지만, 그 트렌드를 쫓아 가기 보다 사회 문화를 분석하는 틀로 삼고자 할 뿐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적용 전유 가능한 또 다른 시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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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 #다사다난 #변화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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