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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음악듣기 _ 차우진

디지털 시대에 음악듣기


 
글  차우진
 
대중음악에서 디지털은 종종 논쟁의 장이 되곤 한다. ‘대상’이 아니라 ‘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문제가 되는 부분이 디지털(기술) 자체가 아니라 디지털이라는 공간에서 생산자와 수용자, 배급자 간의 밀고 당기기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MP3 다운로드는 여전히 시장의 모호한 영역(불법/합법)에 놓여있고, DRM(Digital Rights Management)은 음악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의 갈등 관계를 형성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은 이동통신사와 음반(배급)사, 대형 포털 사이트와 스트리밍 사이트와 불법/합법 P2P사이트, 메이저 음악가와 인디 음악가와 이런저런 음악 팬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꽤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대중음악과 디지털의 관계를 긍정vs부정 혹은 혁신vs보수의 구도로 단순화하기엔 애매모호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애매모호함’이 중요하다. 한국의 디지털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또한 빠르게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한국 노키아 홈페이지 © nokia
아래: 음악 감상 사이트 랩소디 © Rhapsody

일례로 최근 한국에 개통된 아이폰의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알다시피 아이폰은 애플의 이동통신 플랫폼으로 애플이 아이폰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모바일 이동통신 플랫폼을 통해 소프트웨어 마켓 플레이스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정확히는 3G서비스가 상용화되면서 모바일 플랫폼의 주요 기능은 MP3 다운로드가 되었고 애플은 아이팟/아이폰을 아이튠즈 확산을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메이저 음반사와의 협상으로 음원 당 0.99달러라는 획기적인 가격이 책정되었고 이것은 아이팟의 전 세계적인, 특히 영어권 국가에서의 확산을 가능케 했다. 2000년 이후에 발간된 대중음악 전문서적에 보란 듯이 ‘아이튠즈’ 챕터를 할애하게 만들 정도로 사회문화적 의미를 획득한 아이튠즈의 전성기는 그러나 내리막에 접어들었다는 게 최근의 시각이다. 노키아가 휴대폰 가격에 다운로드 가격을 포함시킨 제품을 상용화한 것(이른바 요조의 노키아 폰)과 함께 음악 팬들을 열 받게 만들던 DRM(아이팟과 노트북으로 음악을 들으려면 같은 노래를 두 개의 기기에 별도로 다운받아야 했다)을 없애는 시도들이 리얼네트웍스(RealNetworks)의 랩소디(Rhapsody) 서비스 등을 통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노키아와 랩소디의 롤 모델이 멜론닷컴이나 벅스뮤직 같은 곳에서 시행한 ‘월 정액제 무제한 다운로드 서비스’란 사실이다.


멜론닷컴 © melon

물론 이런 차이는 모바일 다운로드 서비스를 주도한 곳이 어디냐에 따른 것으로 우리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통신사가 주도한 한국의 디지털 음원 시장은 기형적인 수익 배분 구조로 악명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디지털 기술의 개발과 시장적용 속도가 전 세계 음악 시장 환경에 영감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무선 인터넷 보안설정 법제화 시도 등과 같은 정책이, 정부가 종종 주장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주도권을 놓치는 쪽으로 몰아간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바로 이런 기술의 변화가 야기한 음악 취향의 변화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전통적으로 음반 시장이었지만 최근 싱글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싱글과 음반 시장의 차이가 세대별 취향 차이를 파악하는 중요한 데이터로 여겨질 정도지만 한국에서 싱글 시장이 개발된 건 21세기 이후다. 저렴한 제작비와 쉬운 배급 덕분에 디지털 싱글 중심으로 한국 시장의 지형도가 변했단 얘기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만한 변화는 음악을 만드는 태도와 듣는 태도의 변화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아이돌 그룹의 음악적 성취가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재편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흐름 덕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빅뱅을 비롯해 소녀시대와 2NE1, 포미닛, 2PM 등은 앨범을 공개하기 전 싱글에 집중적인 역량을 투입하며 시장을 선점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런 변화야말로 ‘선 싱글 후 앨범’의 기능적인 면에 주목한 결과기 때문이다. 수용자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보 취득의 편리함을 이유로 다양한 음원 다운로드를 향유하고 있다. 덕분에 음악 소비를 취향과 계층과 세대로 구분하던 전통적인 관점이 무용해지고 있다. 아이슬란드 인디밴드의 음악과 한국 아이돌 음악을 동시에 소비하는 세대가 생겨난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모조리 디지털 기술 때문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대중이 늘 환경의 변화에 가장 적절히 적응했음을 상기한다면 그리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혹자는 한국의 디지털 환경이 음악시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쪽으로 이끈다고 푸념하고, 혹자는 아이튠즈야말로 진정한 대안 서비스라고 추앙하(면서 한국에서 아이폰으로 음악을 다운로드 못 받는 데 분개하)지만 실은 양쪽 다 편향된 시선일 수 있다. 중요한 건 한국의 디지털 기술과 시장이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이고 그래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이곳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보다 중요한 건, 무엇보다 대중들을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또한 자신의 취향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든,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든, 혹은 나처럼 음악에 대해 주절대며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든 이른바 ‘대중’을 믿을 수밖에 없다. 대중적인 취향과 습관의 변화는 환경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그걸 주목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음악을, 서비스를 만들 수도 없고 비평도 할 수가 없다. 대중은, 설사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선택을 한다고 해도 언제나 옳다. 디지털 환경에서 취향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질 사람들이 그걸 증명할 것이다. 두고 보자.
 

차우진 

대중음악웹진 [weiv] 에디터 혹은 음악평론가. 대중음악과 관계된 여러 사안에 대해 보고 듣고 쓰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 만드는) 음악보다 (그걸 즐기는) 인간에 좀 더 관심을 두려고 애쓰는 중인데 쉽지 않다.
www.weiv.co.kr

 

Tag
#대중음악 #MP3 #아이폰 #노키아 #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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