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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아트여, 시민에게 말을 걸어라 _ 신보슬

퍼블릭 아트여, 시민에게 말을 걸어라
MIT 학생들과 함께 하는 서울 퍼블릭 아트 여행



글  신보슬


바야흐로 퍼블릭 아트가 대세다! 서울시청 앞에도 청계천 광장에도, 지하철역에도, 버스정류장에도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여 의자도 ‘예쁘게’ 바꾸고, 조형물도 세운다. 퍼블릭 아트는 ‘퍼블릭(공중)’과 함께 하는 것이라며 도시 공동체에 들어가 ‘커뮤니티 아트’라는 것도 한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것은 이런 작업들을 과연 ‘퍼블릭(공중)’이 좋아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대체 퍼블릭 아트라는 것은 무엇일까. 퍼블릭 스페이스에 놓이기만 하면 퍼블릭 아트일까. 생각할 수록 모호해지기만 한다.


그림 1.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MIT 문타다스 교수의 특별강의 © 김나리

이런 궁금증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지난 3월20일 MIT 대학의 문타다스(Antoni Muntadas) 교수님과 13명의 학생들이 서울을 찾았다. 토탈미술관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번 방문은 <퍼블릭 아트에 대한 대화들 Dialogues on Public Art> 클래스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으로, 약 1주일간 문타다스 교수님과 학생들이 서울 시내 곳곳은 물론 경기도 일부 문화예술시설들을 돌아보고, 함께 문제점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기회를 갖고, 서울 방문 이후 보스턴으로 돌아가서는 보스턴과 서울을 주제로 한 작업을 발표하게 되며, 이후에는 워크숍을 비롯한 다양한 결과물들은 출판물과 작은 전시로 선보일 예정이다.


그림 2. 백남준 아트센터 현장 답사 전경 © 김나리

1주일이라는 짧은 일정 동안 청계천 일대를 걷고, 세운상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ebeskind)의 건물이 들어갈 용산일대의 개발구역과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디자인센터가 들어가는 동대문 일대를 돌아보기도 했다. 공공미술이라는 것을 ‘미술’이라는 차원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는 우리의 시각과는 달리 그들은 ‘도시개발’이라는 측면과 연결하여 도시공간 안에서의 작품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때문에 청계천 시원을 알리는 클래스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의 조형물 <스프링(Spring)>보다는 도심 한 복판에 있는 초고층 건물들과 재개발 가림막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이중적인 대조가 낯선 이방인들의 시선을 더 많이 사로 잡았다. 빡빡한 일정 동안에도 매일 서울의 도시개발정책, 공공미술 등에 대한 특강을 듣고, 함께 서울을 돌아보았던 시간은 정작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의 도시개발 계획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우리의 좁은 시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지점은 그들이 바라보는 ‘퍼블릭 아트’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들의 ‘퍼블릭 아트’는 퍼블릭 공간에 대한 이해와 긴밀하게 닿아 있었고, 공간에 대한 이해를 무엇보다 선행과제로 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작품 혹은 프로젝트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도시 지형도를 함께 살피는 모습은 분명 우리의 현실과는 차이가 나는 부분이었다.


그림 3. 용산 철거 현장 답사 전경 © 김나리


이번 한국방문을 함께 한 MIT 미디어 랩의 리하르트 떼(Richard THE)의 <통일(Unification)>은 이런 특징을 잘 반영해준다. ‘임바디드 데이터 비주얼리제이션(Embodied Data Visualization)’에 관한 리서치 프로젝트와도 연결된 이 작업은 퍼블릭 스페이스에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프로젝트 방식을 제안한다. 우선 이 프로젝트는 1945년부터 독일이 통일되는 1989년까지 통독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들, 예를 들면 “생전에 독일의 통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통일 이후에 새로운 정치 체계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서독의 정치체계가 유지되기를 원하십니까?”, “통일 이후 양국의 국민 생활수준이 같아지려면 얼마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까?”와 같은 설문데이터에서 출발한다. 수집한 데이터의 결과를 색점으로 시각화하고, 도심 번화가에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이동하는 사람들을 캡쳐한다. 그리고 캡쳐한 사람들에게 시각화 한 데이터를 업힌다. 물론 독일에서 이루어진 설문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실시간 이미지와 설문결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이미 우리처럼 분단의 상황에 놓여 있다가 통일을 이룬 독일과 그리고 아직도 분단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의 현실이 함께 매핑 됨으로써 만들어지는 의미의 층이라는 것이 새롭게 문제를 제기한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위에 얹혀진 통일에 대한 질문과 대답의 통계치는 통일에 다소 무감각해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통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리하르트 떼의 작품은 보다 공격적으로 도시 해킹을 감행했던 그래피티 리서치랩(Graffiti Research Lab)의 <레이저 테그(Laser Tag)>와 같은 작업에 견주어 볼 때, 좀더 온화하고 간접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공공 공간에서 일반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4. Richard THE <통일(Unification)> 서울 퍼블릭 스페이스 설치 시뮬레이션도 © Richard The


이미 도시는 조형물로 가득하다. 비어 있는 공간마다,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간마다, 예술이 넘쳐난다. 조금은 쉬고 싶기도 한데, 여기저기에서 작품들은 나를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처음에 관심과 시선을 받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방치되기 십상이고, 그러다 도시의 흉물로 전락한다. 이쯤에서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과연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예술’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겠냐는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는 왜 이것들을 ‘예술’이라 불러야 하느냐를 되물을 때, 퍼블릭 아트의 가능성과 방향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전광판과 현수막, 다양한 빌보드들을 통해 텍스트나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하는 작업들처럼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가면서도 일상의 늘어지는 무료함을 일깨우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거리를 두고 살펴볼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는 작업들도 가능하고, 특정 커뮤니티에 들어가 공중과 함께 하는 퍼블릭 아트도 가능하다. 퍼블릭 아트가 영구 설치물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기발한 프로젝트들도 가능할 것이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공원의 벤치에서 만나는 작품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그 얼마나 멋진 경험일까! 그것이야말로 ‘퍼블릭 아트’가 아닐까.



신보슬_큐레이터

10년도 넘게 미디어아트라는 녀석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많은 전시와 작품을 만나며, 일상에 많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해왔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그 신나고 즐거운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몇몇 괴짜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나아가 사람이 더불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Tag
#퍼블릭 아트 #서울 #MIT #문타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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