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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패션위크 F/W 2010~2011 컬렉션 리뷰 _ 홍석우

서울패션위크 F/W 2010-2011 리뷰



글  홍석우


2010년도-2011년도 가을/겨울 시즌 서울패션위크(Seoul Fashion Week)가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첫날과 둘째 날 연달아 열린 남성복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은 2010년 현재, 왜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나 알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그중 몇 명의 인상적인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MVIO 한상혁 


그림 1. MVIO의 서울패션위크 F/W 10/11, 이미지출처: Seoul Fashion Week

한상혁은 본(BON)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부터 컬렉션 안에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 이야기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영 클래식(young classic)’이라는 화두를 던진 그는 세 번째의 엠비오 컬렉션에서 클래식과 아웃도어를 접목했다. 폰초 케이프, 울 체크 셔츠, 아웃도어 스타일의 테일러드 재킷을 입은 모델 중 일부는 담요를 동여맬 수 있는 단단한 배낭을 짊어지고 마지막 리허설 캣워크를 걸었다. 누가 봐도 가장 뜨거운 주제인 아웃도어와 클래식의 결합은 매력적인 옷들로 선보이며 한눈에 봐도 완성도가 느껴졌다. 하지만 한상혁을 좋아하게 된 계기이자 그의 전매특허인 '스토리텔링'은 포기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번에는 서울 컬렉션이 가장 큰 주제였어요.”

벌써 컬렉션 7년 차인 디자이너는 동료와 선후배들이 컬렉션을 쉬고, 외국으로 진출하며 서울에 혼자 남은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이라는 주제로 산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기획하면서, 항상 반복적인 걸음걸이로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걷는 산악인을 떠올렸다.  

“누군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산악인)에게 어떻게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수 있는가 물었대요. 그는 ‘한발 한발 걸어가고, 연구하고, 분석하다 보니, 어느 순간 운명이 나를 돕기 시작하더라.’라고 했다는군요. 사실 이번 컬렉션 전에는 슬럼프도 있었고 복잡한 생각도 많았지만, 저는 이제 신인이나 인디(indie)는 아니니까요. 오히려 이제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몇 시즌 선보인 한상혁식 오버사이즈와 실루엣플레이는 이번 쇼에선 거의 볼 수 없었다. 대신 웨어러블하지만 하나하나 섬세하게 만든 디테일을 담은 옷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디자이너의 성장이 어떻게 브랜드를 변화시키는가 보여주었다.   


 
kimseoryong homme 김서룡 


그림2. kimseoryong homme의 서울패션위크 F/W 10/11, 이미지출처: Seoul Fashion Week

디자이너 김서룡의 옷을 보며 ‘이번 시즌 트렌드’라든지 ‘핫 아이템’ 같은 말을 꺼내는 건 왠지 어색하다. 그는 디자이너보단 장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옷을 만들고, 10년 이상 서울패션위크에 몸담았으며, 아직도 컬렉션에 올라가는 재킷과 셔츠의 패턴부터 봉제까지 직접 마무리 짓는 이 관록의 디자이너는 한두 시즌 트렌드에 맞는 옷으로 열광했다 사그라지는 디자이너와는 생각의 구조부터 다르다. 세련됨은 적을지언정 진심이 느껴진달까. 그것이 보통 말하는 패션의 명제와 다르더라도, 김서룡이 추구하는 패션이란 그런 게 아닐까.

지난 시즌 모델부터 옷까지 전부 백색 향연을 선보였던 김서룡은 이번 컬렉션을 위해 오래된 향수가 느껴지는 유럽 어느 작은 마을 기차역을 무대로 삼았다. 신문배달 소년 모자를 쓴 모델들은 진한 갈색과 밤색의 더블브레스티드 재킷과 팬츠, 테일러드 코트와 카디건을 입었다. 스타일링에 있어서도 과도한 디테일이나 레이어드 없이 셔츠와 베스트, 재킷과 크롭팬츠를 기본으로 군더더기가 거의 없었다. 

"빈티지가 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을 띄면서도, 남성복의 기본적인 실루엣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컬렉션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여러 벌 선보인 더블브레스티드 재킷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덧붙였다.  

"요즘 '그냥' 좋아졌어요. 사실 블랙이었을 때는 굉장히 긴장감을 주죠. 이번에는 소재감과 색은 부드럽지만 실루엣은 단단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 핏이어야지 부드러운 색감이 날리지 않고 깊이 있어 보이거든요. 보기에는 비슷비슷한 재킷들일 수 있지만, 몸의 각도나 라펠의 너비 같은 것들을 연구하고, 스스로 즐기면서 만들었어요."

이번 컬렉션이 김서룡에게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다. "서울에서 쇼를 한 지 10년 정도 됐어요. 그 동안 어머니가 한 번도 컬렉션을 보러 오신 적이 없었어요. 지방에 계신데다, 모시기도 어려웠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기필코 모셔야지, 하면서 쇼를 준비했어요." 당연히 그의 어머니는 가장 상석에 자리 잡으셨다. 그는 학예회를 마친 기분과 비슷하다고 했다. 자식이 준비한 컬렉션을 직접 본다는 것은 관객, 혹은 바이어, 에디터와의 관계가 아닌 디자이너 김서룡 본인과 어머니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하고 따뜻한 감정을 자아냈을 것이다.



Juun.J 준지


그림3. Juun.J의 서울패션위크 F/W 10/11, 이미지출처: COUTE QUE COUTE 

이제는 론 커스텀(Lone Costume)보다 준.지(Juun.J)란 이름이 더 익숙한 정욱준은 거의 1년 만에 서울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다. 넓은 컬렉션장이 아닌 좁은 프레젠테이션 공간을 택해서일까. 수요와 공급의 완벽한 불일치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은 눈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퍼'와 '트랜스포머'라는 키워드로 압축되는 이번 프레젠테이션에선 '100년 넘게 의복에 쓰인 지퍼'에 대한 디자이너의 상상력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날렵하게 떨어지는 라펠은 모든 이음매에 지퍼가 들어가서 몇 겹의 옷을 겹치게 입었다 벗은 착각이 들었다. 온통 스터드(징)가 프린트된 오버사이즈 오리털 점퍼들은?

실제 스터드와 프린트된 스터드가 얇고 부드러운 소재 위에 겹쳐진 모습을 보는 것은 옷의 아름다움보다 저게 어떻게 찢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감탄하게 했다. 준지의 옷이 인기 있는 이유는 백 가지는 거뜬하게 있겠지만 그중 중요한 하나는 그가 펼치는 정교함이 결코 과하지 않다는 것이다. 입지 못하는 패션이 아닌, 입을 때 멋지고 아름다운 남성복에 대한 고찰이랄까. 서울패션위크를 대표하던 론 커스텀이 준.지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바이어와 프레스를 만나며 상업성과 창의력 사이에서 줄 타는 정욱준의 감각은 더욱 날카로워진 듯 했다. 그는 새로운 작업이 아닌 기존의 파리 컬렉션을 재조합해 보여준 프레젠테이션에 아쉬움은 없었을까? 

"이번에는 지퍼가 달린 아이템들에 집중했어요. 스무 벌 이상 줄여 열네 벌을 보여줬거든요. 그냥 옷만 보여주는 것보다, 영상과 음악을 이용해 '파리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2010년 대한민국 패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답게 많은 프레스들이 몰렸는데, 국내는 물론 일본 NHK나 영국 모노클(Monocle)처럼 다양한 언론이 그의 백스테이지에서 인사와 인터뷰를 청했다. 수많은 인터뷰를 거치며 그의 입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향수 프로젝트 '식스 센스(Six Scents)'의 세 번째 시리즈 얘기가 나왔다. 

"이번 시리즈는 '성장'에 대한 기억을 얘기합니다. 향수를 만들기 위한 설문지가 책 한 권 분량이에요. 인터뷰를 당하는 것 자체가 흥분될 정도예요. 이 정도라면 내가 원하는 향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리에서 선보인 컬렉션을 프레젠테이션으로 다시 보여준 디자이너에게, 막 나온 새로운 창조물을 대한양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닌 듯싶어 더 이상의 질문은 자제했다. 그래도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훌륭했고, 가을에 나올 준.지의 첫 번째 향수 또한 기대한다. 


 
beyond closet by tae yong 고태용


그림 4. beyond closet by tae yong의 서울패션위크 F/W 10/11, 이미지출처: Seoul Fashion Week

마치 중세 동화에 나올 법한 오래된 문이 열리고, 철컥거리는 시곗바늘 소리가 울리며 컬렉션의 첫 번째 모델이 무대로 걸어나왔다. 의미심장한 배경음악은 '뜨거운 감자'의 '청춘'이었는데, 연필과 재봉틀, 바늘과 실을 항상 끼고 산 어느 디자이너의 노년을 연상시키는 옷들이 아주 천천히 무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첫 컬렉션을 열 때 이미 국내 최연소로 서울패션위크에 데뷔한 고태용은 소위 '클래식 스타일'에 애정을 가진 몇 명의 우리나라 디자이너 중 가장 젊은 편이다. 

"저의 30년 후 작업실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몸은 노인이지만 마음은 늙지 않은, 멋진 60대 노인을 상상했습니다."

이제 막 서른이 된 그는 자신의 또래 혹은 그보다 조금 어린 고객들이 열광할만한 실루엣과 디테일을 잘 알고 있다. 팔 토시와 연필을 꼽는 주머니가 달린 재킷과 스웨트셔츠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 보통 셔츠를 입는 그는 주로 연필로 드로잉하는데, 아무래도 때가 타니까 팔 토시를 차고 작업할 때가 잦다. 연필을 꼽는 주머니가 달린 옷 또한 필수품이다. 그런 경험을 그대로 옷으로 옮기는 게 고태용에겐 익숙하다. 밀리터리 아이템을 변형한 팬츠와 코트도 무대를 나와 그대로 거리를 걸어도 될 정도로 웨어러블했다. 또한 눈에 띈 것은 컬렉션을 위해 준비한 구두들이었다. 

"슈즈 바이 런칭엠(shoes by Launching M)이라는 우리나라 구두 브랜드와 만든 신발입니다. 저도 그렇고 그 브랜드도 그렇고, 신생이지만 장인 정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먼저 연락했습니다."

그의 컬렉션을 보러 온 사람 중에는 패션 에디터나 국내외 바이어 외에 그보다 고작 몇 살 어린 학생들이 많다. 그는 머지않아 가장 인기 있는 남성복 디자이너 중 한 명이 될 것만 같다. 스스로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디자이너로서, 어떤 롤모델이 되어가고 있다. 컬렉션을 준비하고 옷을 만들고, 그것이 젊은이들로부터 사랑받는 것. 유머를 가진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그의 컬렉션을 보면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이런 디자이너가 있어서, 서울패션위크는 다행이라고. 



general idea by bumsuk 최범석


그림 5. general idea by bumsuk의 서울패션위크 F/W 10/11, 이미지출처: Seoul Fashion Week

최범석은 지난 2월의 뉴욕패션위크에서 '제너럴 아이디어 바이 범석(general idea by bumsuk)'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하이패션과 스트리트의 요소를 적절히 결합할 줄 아는 이 영리한 디자이너는, 이미 뉴욕에 자신의 팬을 일부 만들어 놓은 듯했다. 필자가 지난 2월 뉴욕패션위크에 갔을 때에도 우연히 만난 스타일 멋진 모 미국 패션지의 남자 에디터가 제너럴 아이디어의 옷을 입고 있었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라면서 말이다. 이번 컬렉션은 엄밀히 말하면 지난 뉴욕 컬렉션의 한국판이었다. 모델은 달랐지만, 뉴욕의 스타일리스트와 음악 감독과 완성한 컬렉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멋지고, 입기 좋고, 또 한눈에 드러나는 옷들의 연속이었다. 레오파드 무늬의 트레킹 부츠는 보는 순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둔 듯한 프린트의 테일러드 코트 또한 그러했다.

몇 겹으로 겹쳐 입은 찢어진 스웨터와 레깅스, 반바지, 워싱이 들어간 청바지와 가죽 집업 재킷, 변형된 테일러드 재킷과 더플코트 같은 아이템은 다양하게 스타일링되어선, 옷을 좋아하는 20대 남자라면 거의 필연적으로 두근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아이템들은 그것의 스타일링 때문인지, 아니면 디자인 때문인지 몇 명의 선배 디자이너들이 겹쳐 보였다. 상업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거둘 법한 컬렉션이 나쁜 건 아니지만 좀 더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 또한 디자이너의 역할 아닐까. 젊음이 가장 아름다울 때, 멋지고 잘 나가는 청년들이 입기에 가장 좋아 보이는 스타일의 연속에서 문득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서울패션위크 첫날 일곱 번째(프레젠테이션 포함)로 쇼를 선보였다. 첫날부터 수많은 외국 바이어와 프레스가 입장했지만, 컬렉션의 주제를 달랑 적은 엽서 정도 외엔 그 컬렉션이 어떤 옷을 보여주는지,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는 문서를 준비한 컬렉션은 없었다. 필자가 본 컬렉션 중에선 최범석만이 그것을 했다. 15분 남짓의 컬렉션을 일일이 사진이라도 찍지 않는 한, 그것을 컴퓨터처럼 기억할 바이어와 프레스는 없다. 첫 번째부터 마지막까지 어떤 모델이 어떤 옷을 입었나 세세하게 적은 종이 프린트, 컬렉션 사진을 정면에서 찍은 룩북 같은 것은 온전히 바이어를 위한 선물이었다. 외국의 누구누구를 불러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준비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최범석은 보여주었다.




홍석우 Hong Sukwoo _ fashion journalist and photographer of yourboyhood.com and essayist.

편집매장 데일리 프로젝트의 의류/출판물 바이어를 거쳐 현재는 프리랜스 패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당신의 소년기, yourboyhood.com라는 제목으로 서울 사람들과 풍경을 찍는 블로그도 운영한다. 2010년 4월 현재, 복수의 매체를 통해 패션 칼럼을 기고하며  패션 기업, 잡지와 개별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웹, 사진, 패션과 관련된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Tag
#김서룡 #준지 #고태용 #서울패션위크 #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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