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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디 말보다는 한 장의 인포그래픽 _ 김성진

천마디 말보다는 한 장의 인포그래픽



글  김성진


이달 초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며칠 전에 영미권 인터넷 매체와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한 장의 인포그래픽(infographic, information과 graphic의 합성어로 특정한 정보나 자료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콘텐츠를 지칭하는 용어)이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영국의 온라인 쿠폰몰 ‘바우처 코드(Voucher Codes)’가 만든 이 이미지는 1976년에 나온 애플I부터 2010년의 아이패드까지 애플 역대 제품들의 실질 가격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림 1. 애플 역대 신제품의 실질 가격을 한 눈에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 Voucher Codes

점차 거세지던 아이패드 바람을 타고 이 이미지도 여기저기로 확산되었는데, 대개 서너 줄의 간단한 설명이 덧붙여지거나 아니면 아무런 말없이 그림만 하나 달랑 올려진 채였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이미지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가 완전히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의미 없는 글 몇 줄을 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이 인포그래픽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2천자 안팎의 텍스트와 애플 모델 사진 몇 장, 연도별 실질가격을 보여주는 표로 구성된 일반적인 형식의 기사에 담았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아이패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등에 업었다 한들 수많은 비즈니스 기사 중에 하나로 묻혀서 잊혀지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1983년에 아이패드 43대 값에 맞먹는 모델 리사(Lisa)를 내놓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험을 감행한 사실도 뇌리에 각인되기 쉽지 않았을 테다. IT업계를 선도하는 애플과 관련된 콘텐츠로서, 인터넷 세대의 감성에 걸맞는 ‘쉽고, 재밌게’라는 접근 방식이 적중한 셈이다.

인포그래픽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표, 차트, 다이어그램 등 기존에 주로 쓰이던 시각 자료들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최근의 인포그래픽이라 하면 대개 위와 같은, 텍스트의 보조 역할에 머무는 그래픽이 아니라 하나의 엄연한 기사 구실을 하는 콘텐츠를 가리킨다. 표나 차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사의 본문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인포그래픽은 그 자체로서 온전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완결된 형태로서의 인포그래픽이 부상한 시기를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잡아본다면 2005~6년 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보급과 함께 시각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던 이 때는 신문, 잡지 등 텍스트에 주로 의존하던 전통적 매체들의 위기론이 부각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2005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편집인포럼(WEF, World Editors Forum)에서 저널리즘이 생존하기 위한 방향으로 비주얼 저널리즘이 제시되고, 그 방안 중 하나로 인포그래픽이 논의된 것은 이를 방증한다. 매체 제작의 일선에 있는 전문가들이 인포그래픽을 의미있는 트렌드로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006년 창간된 미국의 <굿 매거진 Good Magazine>은 그 해에 만든 ‘투명성(Transparceny)’ 섹션에서 뛰어난 인포그래픽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훌륭한 인포그래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사회적 의제들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손길로 다루는 이 매체의 인포그래픽은 소재, 관점, 형식의 측면에서 다른 매체들을 앞질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 2. 역대 20대 대형 파산 © Good

2009년 6월 세계 1위 자동차 업체 GM이 파산했을 때 굿매거진은 역사적으로 기록될만한 대형 기업 파산 사례들을 선박 침몰에 빗댄 인포그래픽을 선보였다. 미국 대표 기업의 파산이라는 심각한 이슈를 소재로 택하면서도 이 인포그래픽은 재밌고 경쾌한 시각화 방식을 택하는 재치를 발휘했고, 현재의 뉴스를 출발점으로 삼아 역사적 지식까지 끌어들이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미국 대도시의 상수원들이 도시에서 얼마나 먼 거리에 있나를 보여주는 다른 인포그래픽은 여타 매체에서는 찾기 힘든 소재를 실사와 보조 이미지를 섞어 참신하게 표현한 예다. 이외에도 굿매거진은 대체에너지에 대한 세계 각국의 투자액, 국가별 행복지수 등 매체 정체성에 부합하는 인포그래픽을 매주 선보이면서 독보적인 길을 걷고 있다.


그림 3. 미국 대도시와 상수원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 Good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인포그래픽이 주요 언론들에 대거 등장하면서 인포그래픽에 대한 관심이 새삼 커지고 있다. 종이 매체가 인포그래픽에 더욱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현장 취재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사진의 한계를 넘어 방송사들이 쏟아내는 동영상에 맞서기 위한 수단으로 인포그래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신문은 실종자 수색과 함미 인양 과정 등을 상세하게 조명한 인포그래픽을 이례적으로 1면에 싣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인포그래픽은 입체적인 시각 효과를 주긴 하되, 수용자들이 이미 읽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만을 담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텍스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데 그친 인포그래픽이라면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어렵다. 알고 있는(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인데 누가 그림을 통해 재확인하고 싶어하겠는가? 앞서 말한 바우쳐 코드, 굿매거진의 인포그래픽처럼 새로운 지식을 발굴하는 게 호소력을 높이는 첩경이다.



김성진_sungjinkim23@gmail.com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학위로 결정되는 전공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자신의 전공은 스스로 쌓은 내공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들을 최대한 넓게, 많이 공부하는 게 삶의 목표다.

Tag
#온라인 저널 #인포그래픽 #그래픽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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