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 동안 디자인에 대한 정의나, 디자인이 활용되어진 방법들은 단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서 계속 진화해 왔다. 오늘날의 디자인은 과거에 중시되었던 심미성을 넘어서, 사용자 중심의 문제해결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중심에 두고 무형의 서비스 개발, 전략적 관점에서의 비즈니스 개선 등 다양하고 넓은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지향하는 바가 현상에 대한 원리를 밝히는 것이라면, 디자인이라는 학문은 현상에 대한 문제를 정의,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개선함으로써 현상이 미래에 지향해 나가야 하는 모습을 실체화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학문의 지향점, 디자인 역할의 확장, 기술발전에 따라 ‘미래’ 라는 키워드가 새로운 디자인 방법에서 지배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듯, 지난 10년간 Critical Design (비판적 디자인), Speculative Design (추측적 디자인), and Design Fiction (디자인 소설) 과 같은 미래를 시작점으로 설정하는 새로운 디자인 영역들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상과학 소설, 공상과학 영화, TV 프로그램의 형태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해져 왔지만, 새로운 디자인 영역 역시, 이와 유사한 형태로 미래 시스템, 새로운 기술의 역할에 대한 가정, 컨셉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이야기 하고있다. 비판적 디자인, 추측적 디자인, 디자인 소설은 모두 혁신을 위한 미래지향적 접근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추측적 디자인의 선구자인 Anthony Dunne과 Fiona Raby는 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한 1994년부터 디자인을 기존의 혹은 새로운 기술의 적용에 있어 윤리적, 문화적, 사회적 관점에서 대중과 디자이너, 그리고 산업 간 토론과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활용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작업을 해왔다. 상업적인 마케팅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과거의 디자인과 달리, 미래지향적 접근방법의 디자인은 좀 더 광범위한 지적 단계에서 활용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추측적 디자인은 기술 적용이 일어나기 전 단계에서 기술이 적용된 미래 일상 생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함으로써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기술 적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Anthony Dunne (좌) and Fiona Raby (우). ⓒdezeen.com

* 디자인 소설은 추측적 디자인에서 파생된 영역으로, 아주 약간의 현실성, 희망만이 반영된 디스토피아적 혹은 유토피아적 세상을 그려내지만, 이야기가 중심인 공상과학 소설과 달리, 디자인 결과물이 중심이 되어 현재와 근접한 미래 시나리오를 다룬다.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리서치 연구소인 수퍼플럭스 (Superflux)는 추측적 디자인 (Speculative Design)을 활용해 불확실한 일상 생활과 떠오르는 기술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수퍼플럭스의 공동창업자이자 다이렉터인 Anab Jain은 추측적 디자인은 미래가 초래할 수 있는 결과를 보는 렌즈로 활용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말한다. 수퍼플럭스의 대표적인 작업물인 Uninvited Guests (초대되지 않은 손님)은 혼자 사는 노인과 스마트 디바이스간에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을 그려내고 있다. **ThingTank 의 의뢰를 받아 작업한 이 프로젝트는 근미래의 스마트 디바이스가 시니어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시니어의 생활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스마트디바이스가 일상생활에 부정적으로 미칠 수 있는 디스토피아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 디자인 소설: 디자인 소설은 디자인 프로토타입을 통해 질문, 혁신 및 탐구를 불러일으키는 시나리오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맥락에서 근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이에 대해 비판, 탐구하는 추측적 디자인에서 파생된 하나의 디자인 영역.

 ** ThingTank: 5개의 대학 (Skolkovo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 The University of Edinburgh, University of electro-Communications, and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이 협업하는 사물인터넷 연구 프로젝트로, 디자인, 구조, 비즈니스 개발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

수퍼플럭스의 디자인소설 '초대되지 않은 손님'의 이미지. ⓒsuperflux

산업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공공 서비스개발에 있어서도 디자인 소설이 적용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시 혁신을 앞당기기 위해 설립된 기관인 ***Future Cities Catapult는 최근 가까운 미래의 도시 사이클리스트를 위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고 실험했다. 도시가 바뀌면, 도시 거주하는 시민의 삶의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디자인 소설을 활용해 현존하는 기술이나 신기술을 바탕으로 안전, 길찾기, 대기질 경보 개선과 관련한5개의 프로토타입에 대해 소개할 수 있었다.

*** Future Cities Catapult: Innovate UK와 the UK Government’s innovation agency에 의해 설립된9개의 Catapult 기관 중 하나로, 도시 혁신을 앞당기고, 영국 기업 성장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 나머지 8개의 Catapults는 다음과 같다: 세포 치료 (Cell Therapies); 운송 시스템 (Transport Systems); 위성 응용 (Satellite Applications); 에너지 시스템 (Energy Systems); 정밀 의학 (Precision Medicine); 디지털 (Digital); 연안재생에너지 (Offshore Renewable Energy); 고가치제조 (High Value Manufacturing).    

공공영역의 서비스 개발과 함께, 영국에서는 정책개발 과정에서 디자인 소설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어떠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 역시 진행되었다. 2015년 영국에서 다학제적 프로젝트 팀 (대학교, 정부기관, 디자인기업 등에 의해 조직)이 진행한 ‘Proto-Policy’라는 실험은 디자인 소설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위한 매개도구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로 고령화와 관련한 정책개발에 활용되었다.

프로젝트 참여 연구원인Dr. Emmanuel Tsekleves 가 영국 국회에서 디자인소설과 관련한 패널 토론을 진행중인 모습. ⓒmedium.com

‘Proto-Policy’ 실험은 ‘SOULAJE’라는 임종에 가까워진 시니어를 위한 자기 관리형 안락사 웨어러블 제품 프로토타입을 개발, 시나리오에 적용해봄으로써 사망자의 사회적, 윤리적 및 법적 측면에 관한 토론을 확장시키고, 디자인 소설의 정책개발 적용이 시니어의 정책개발자와의 더 많은 토론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확인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SOULAJE.  ⓒmedium.com

해외 디자인 선진국 중 하나인 영국에서의 디자인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정책, 기술, 경제 환경 안에서 문제 해결의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확장시키며 새로운 분야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Reference:

Bleecker, J. (2009) Design Fiction: A short essay on design, science, fact and fiction, Mar, 2009

https://www.nesta.org.uk/blog/speculative-design-design-niche-or-new-tool-government-innovation

http://superflux.in/#

http://thingtank.org

http://futurecities.catapult.org.uk

https://vimeo.com/128873380

https://www.dezeen.com/2016/02/03/anthony-dunne-fiona-raby-move-parsons-following-rca-departure/

http://imagination.lancs.ac.uk/outcomes/Euthanasia_Wearable_Design_Fiction

 영국 리포터_이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