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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1887.7.7-1985.3.28)

  

  

  

  

  

샤갈(1887.7.7-1985.3.28)

 

 

“나는 그림을 선택했다. 나에게 그림은 빵과 마찬가지로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그림은 창문이다.

나는 그것을 통해 다른 세계로 날아간다.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 스스럼없이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낼 때,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
진정한 예술은 사랑 안에서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기교이고 나의 종교이다”

 

 

 회화 이론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내면의 시적 호소력을 이용하여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형식 요소들과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나와 마을 >과 같이 초현실주의 이전에 나온 그의 초기 작품들은 현대 미술에서 처음으로 정신의 실체를 나타낸 것들이었다. 다양한 표현 수단을 사용한 그의 작품들 가운데는 연극과 발레 무대장치, 성서를 삽화로 그린 동판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등이 있다.

 샤갈의 그림은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와 색채로 어린아이의 순수와 같은 천진난만이미지를 화폭에 담았다. 동화 속 꿈 같은 시어를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이미지로 풀어낸 그의 그림은 누가 보아도 쉽게 다가왔지만 그 구성을 지배하는 것은 러시아의 정교한 기하학적 구성과 프랑스의 화려한 색채였다.

 샤갈의 예술은 마음속에 있는 고향을 지향한다. 샤갈은 유대공동체의 독실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성서는 자연스럽게 그로 하여금 성스러운 것에 접근하게 했다. 1950년 이후, 샤갈은 17점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성서 연작을 구성한다. 그 가운데 12작품은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나오는 일화를 바탕으로, 나머지 다섯 점은 구약성서 아가에서 따온 것이다.

 

 “청년기 이후 나는 성서에 사로잡혀 있다. 나에게 성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위대한 시정의 원천이다.
나는 내 삶과 예술에서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성서는 내가 전달하려고 하는 이 비밀과 자연의 반향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태어났고, 이 세상은 거대한 사막이고,

그 안에서 내 영혼은 횃불처럼 떠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오래전부터 간직한 꿈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이 그림들을 그렸다.
나는 사람들이 이 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영적인 깨달음과 종교적인 감정,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미술관에 걸어두고 싶다.
나는 이 그림들이 한사람의 꿈이 아닌 인류의 꿈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서 숭고한 정신세계를 표현한 모든 이들의 작품이 전시되기를 바라고,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들의 시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 꿈이 가능할까?
인생과 마찬가지로 예술에서도 사랑이 바탕이 되면 가능하다.”

 

 

 

 한편, 20세기 화가들은 서커스에 열정을 기울인다. 서커스는 오래전부터 러시아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샤갈은 <성서 메시지> 연작과 마찬가지로 1913년 처음 그림에 서커스가 등장한 이후 수많은 작업을 해오다가 마침내 1968년 <대 서커스> 같은 걸작을 그려낸다. 서커스 공연에 나오는 동물들은 샤갈의 신화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암소, 염소, 당나귀, 말, 수탉, 물고기 등의 동물은 모두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해와 달, 물과 불 같은 상극의 요소들과 짝지어 있다. 샤갈은 야생동물과 모든 피조물이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왕국에서는 화해를 한다고 믿었고, 원죄를 저지르기 이전의 세계 즉, ‘원초적이고 모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부활시킨다고 믿었다.

 

 

“10년 전에 앙드레 말로가 나에게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새 천장화를 그려 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고, 감동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밤이나 낮이나 나는 오페라 하우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건축가 가르니에의 천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윗부분에서 배우와 음악가들의 창작활동을 아름다운 꿈속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묘사하고 싶었고,
아랫부분에서는 관객들의 의상이 일렁이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론이나 방법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새처럼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었다.

오페라와 발레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작업했다.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색채도,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

 

- 참고: 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 한여름 밤의 꿈

샤갈이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다. 짧지만 소중한 사랑을 표현한다.

 

 

 

 

▼ 십자가에 못박힌 하얀 예수 (1938)

 + 샤갈과 그의 부인 벨라의 사랑 이야기

샤갈보다 아홉살이나 어린 "벨라 로젠펠드"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이다. 샤갈이 스물 두 살때 고향 마을의 여자친구 테아의 집에 놀러갔다가 마침 그 집을 방문한 벨라와의 첫 만남으로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아직 열세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였지만, 샤갈은 그의 여자친구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고 벨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벨라를 두고


"돌연 나는 느꼈다. 벨라만이 나의 아내인 것을."

이라고 말 하였고,

침묵의 공주라고 불렸던 벨라 또한


"나는 항상 꿈꾸었어요. 언젠가는 반드시 어느 화가에게 마음을 빼앗길 거라고.

그 사람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되었죠."


라고 말하였다.

 내성적인데다가 말까지 더듬고 가끔 간질 발작을 일으키던 샤갈에게 벨라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반려자였다. 그녀는 어렸지만, 마치 어머니와 같은 포용력을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샤갈의 현명한 부인은 1944년 미국 망명 중에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인생의 동반자이며 후원자였던 벨라를 잃은 샤갈은 9개월 동안이나 붓을 들지 못할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졌다.

 샤갈이 살아오면서 그의 부인 벨라를 주제로 그린 작품이 많았는데, 그 작품들 중 일부이다.

 

 

 


그러나 그 후 샤갈은 "바바"라고 불리는 "발렌티나 브로스키"와 재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열어간다. 샤갈은 자신의 마지막 30년 인생동안 그녀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게 되고 한층 더 성숙해진 작품들을 남긴다.

그는 바바와의 결혼을 마치고 결혼식장에서 나오며 "이제야 제2의 청춘이 열렸다"고 부르짖었다.

 

샤갈이 그린 바바의 작품이다

 

 

 

멕시코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아레코"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담당하였는데, 이 작품은 샤갈 자신의 현실적 내면을 무대의 극적 장면을 통하여 이야기하려고 있는 듯하다. 이 무대의 극적 장면도 서커스와 발레의 총합적 장면이다. 새 모양을 한 인물이 한 손에 시계를 걸치고 나타나, 둥글게 된 무대 중앙에 막 뛰어 나온다. 오른편에 자그마한 소녀가 수줍음을 가지고 등장한다. 불길을 느끼게 하는 환상미의 극치에 이르는 작품이다

곡예사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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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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