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이 가장 많이 본 디자인 뉴스
디자인 트렌드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 아이콘 인쇄 아이콘

[책 읽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화 버리기

디자인 관련 연구와 저술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최경원 교수가 이번에는 한국문화에 관한 책을 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화 버리기>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기존의 생각들을 현대의 시각으로 다시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버리기”라는 다소 선정적인 단어를 사용한 책의 제목과 샛노란 표지 디자인이 상당히 눈에 띈다. 내용도 제목과 표지 디자인만큼이나 뜨겁다.

 

저자는 고구려 철갑옷, 통일신라 시대의 감은사지 석탑과 석굴암, 조선 중기의 달항아리와 독락당을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꼽으며 미술사, 미학, 사회학, 경제학, 문화인류학과 같은 다양한 인문학적 시각으로 서양문화와 비교한다. 바로 이 비교 기제가 이 책의 뜨거운 논점이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화유산들은 이미 우리에게도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로 익숙한 소재지만, 그 미감을 여태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읽기를 권하고 있다.

 

 

우선 국보 제112호인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살펴보자. 다양한 인포 그래픽을 통해 분석한 이 탑의 비율은 통일신라 시기에 꽃을 피운 한국 불교의 ‘화엄’과 ‘화쟁’ 사상과 닮아있다고 한다. 이런 비례미를 서양 근대미술의 기하학적 조형미와 비교하는데, 감은사지 석탑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서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미감으로 극찬하는 달항아리에 대해서는 형태의 불규칙함이 가져다주는 조형적 운동감을 조선 성리학의 태극이론과 연관해서 풀이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고구려의 철갑옷에 대한 분석이다. 중세 유럽에서 수공예적 방식으로 제작된 유려한 모양의 갑옷에 비해 조형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철판을 모듈식으로 만들어 연결하는 제작방식을 통해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갖췄던 고구려에서는 기능주의를 추구했음을 밝힌다. 이 과정을 통해 대량생산을 위한 표준화를 추구하는 현대적 ‘디자인’ 개념이 산업혁명 이후에 완전히 새롭게 발명된 개념이 아니라고 설파한다. 개울가에 면해 자연에 녹아드는 구조를 가진 경주 안강의 ‘독락당’ 건축은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의 ‘낙수장(Falling Water)’과 비교하며 현대건축에서 추구하는 개념들을 이미 더 나아간 지점에서 실천했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석굴암의 철저하게 황금 비율을 따르는 구조와 돔을 활용한 인공석굴 축조 방식에서는 신라가 로마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책에서 이야기하는 문화유산의 특징은 그 당시의 철학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간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극단적인 폄하나 무조건적인 숭배의 양 극단으로만 달려왔음을 지적하고, 우리에게 남겨진 “전통이라는 휴면계좌를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제안하고 있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에 대한 올바른 분석을 통해 이것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화적 역량으로 흡수하여 새로운 미래를 위한 창조력의 원천으로 삼자는 것이다.

 

뜨거운 주제인 만큼 다소 격앙된 어조로 기존의 이론을 반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꼼꼼한 인문학적 고찰을 과감하게 건너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이론들을 종횡으로 엮어 들여다본 한국문화는 분명 생동감 넘치는 새로운 모습이다. 이제 우리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소화해서 자신만의 창조적 역량으로 활용하는 건 독자 개인의 몫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화 버리기
 
-저자: 최경원
-출판: 현 디자인 연구소
-170x220 mm / 296 쪽 / 14,500 원
-ISBN 979-11-950602-0-7
 
-목차
ㆍ머리말

 

1. 감은사지탑은 몬드리안이다
/ 단순함의 비밀 / 비례의 마술 / 자연을 향함

 

2. 달 항아리는 피카소다
/ 미스테리한 도자기 / 서양미술의 찌그러짐 / 왜 찌그러졌을까? / 달 항아리와 현대디자인

 

3. 고구려 철갑옷은 포드 자동차다
/ 고구려의 철갑기병대 / 중세 서양갑옷 VS 고구려 철갑옷 / 서양 디자인 역사의 오만

 

4. 독락당은 현대 건축이다
/ 문화를 담은 건축 / 서양 건축을 뛰어넘는 낙수장 / 낙수장을 뛰어넘는 독락당 / 독락당과 현대디자인

 

5. 석굴암은 파르테논 신전이다
/ 그리스에서 온 비례 / 로마에서 온 석굴 / 인도, 중국에서 온 본존불 / 세계문화의 융합, 석굴암

 

ㆍ맺음말

 

 
---
글. 문희채
예술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한 문화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일들을 시도하고 있다

Tag
#전통 #인문

목록 버튼 이전 버튼 다음 버튼
최초 3개의 게시물은 임시로 내용 조회가 가능하며, 이후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임시조회 게시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