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조망 , 디자인: Joep Verhoeven, 2005년 졸업작품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종종 (독일의) 좋은 디자인 대학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때 흔쾌히 대답을 해 주지 못해 안타까운데, ""좋은""이라는 기준을 잠시 접어두고, 특이하고 괜찮은 디자인 교육기관을 꼽으라 한다면,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 있는 디자인 아카데미를 들고 싶다.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는 뉴욕 타임즈가 "세계 최고의 디자인 교육기관"이라고 칭하고, 디자인과 건축 전문잡지인 Icon이 선정한 "현재 세계 디자인 분야의 으뜸" 10위권에 교육기관으로는 유일하게 들어갔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를 뽑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최근 디자인 계에서 독특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는 작업을 보여주는 디자이너들 경력에서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 졸업생이라는 꼬리표를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쾰른 가구박람회에 소개된 장식성이 강한 라지에터관을 보여준 요리스 라만 Joris Laarman의 작업 도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 졸업작품이었다. 2003년 하노버에서 열린 익시드 총회때, 에인트호벤 아카데미 학장이자 트렌드 연구가인 리 에델쿠르트 Li Edelkoort가 자기 학생들 작품을 이미지 자료로 소개했는데, 이상훈씨의 작업(2005년 8월에 소개)을 비롯하여 그때 본 몇 작업들은 그 발상이 매우 신선했기에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최근 도무스에 소개된 관절구조를 이용해 벽체 자체가 열리고 닫혀 기존의 벽과 문의 개념과 관계를 바꾸어 버린 로티 린더만 Roti Linderman의 <경계 파괴 Breaking Boundaries>도 그러하다. 너무나도 일상적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철조망의 생김새에 뜨개질 효과를 주어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조엡 페르호벤 Joep Verhoeven의 <울타리는 어떻게 만드는가 how to plant a fence> 역시 이런 예들을 보여준다. 드록 디자인이 불러일으킨 신선함이 후배 교육으로 이어지는 곳도 바로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이다. 드록디자인 멤버들의 일부가 이곳 출신이기도 하고, 이 학교 매스터 과정을 지도하고 있기도 하다.

┕ 라지에터관 , 디자인: Joris Laarman, 2003년 졸업작품 최고상

┕ 밀라노 가구박람회 기간중 전시장면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는 졸업작품 일부를 매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전시를 한다.

이런 이유로 몇 년전에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 취재를 하게 되었는데, 가서 본 인상은, 비록 다른 디자인 대학의 시설을 별로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무척 신선했다. 우선 입구에 놓인 검게 그으른 바로크 식 가구들에서부터 공장처럼 전체가 하나로 뚫린 공간 구성과 여기저기서 학생 한 두명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강사진 모습 등에서부터 뭔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디자인 아카데미 입구에 놓인 의자들 <스모크 smoke>. 디자인: Maarten Baas. 2002년 졸업
낡은 의자들을 불에 태워 남은 형태에 가죽을 덧 씌운 작업. 현재 모오이에서 판매함

┕ 디자인 아카데미 내부 모습들

작은 강의실들로 나뉘지 않고 하나의 커다란 공간 속에서 필요에 따라 무리를 지어 수업을 진행한다.

┕ 디자인 아카데미 수업장면

┕ 간이 부엌시설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의 가장 큰 특징은, 보통 제품, 시각 또는 그래픽, 인테리어 디자인 등으로 나누는 기존의 디자인 학과 구분을 따르지 않고, 인간을 가장 중심에 놓고, 인간과 삶, 인간과 커뮤니케이션, 인간과 복지(웰-빙), 인간과 레져, 인간과 이동성(모빌리티), 인간과 정체성(아이덴티티), 인간과 활동(액티비티), 인간과 공공장소(퍼블릭 스페이스)라는 8개의 과정으로 나누어 놓았다는 점이다.

얼핏보기에 이런 구분은 자동차 디자인, 스포츠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퍼블릭 디자인 등의 다른 이름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동차 디자인이 자동차라는 대상에 중점을 두고 접근을 한다면, 인간과 모빌리티라는 개념은, 인간을 중심으로하는 모든 종류의 움직임과 이동성의 문제를 다 다루게 된다. 즉, 결과적으로는 자동차라는 비슷한 사물이 나오게 되더라도, 접근하는 관점이 다르다보니 수많은 실험적인 작업과 컨셉작업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비록 이런 실험적이고 컨셉위주의 작업들이 당장 제품으로 생산해 내기는 어렵고 작가주의적이고 예술적인 개념을 많이 내포한다고는 하더라도,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결국에는 디자인이 단순한 겉모습 바꾸가 아닌 우리의 삶에서 어떤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오게 된다.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 출신 중에서 미래 디자인의 비젼을 제시하고 세계 디자인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본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는,1947년 에인트호벤 산업 디자인 아카데미로 설립되었다. 1997년 필립스 사의 전구 공장이었던 <데 위테 다메(더 화이트 레이디)>라는 이름이 붙은 현재 건물로 이사했다. 이 <하얀 숙녀> 건물에는 디자인 아카데미 외에도 디자인ㅡ테크닉 이노베이션 센터, 에인트호펜 공공 도서관, 무 아트 갤러리, 에인트호벤 디자인 플랫폼, 필립스 디자인 등이 들어 있다.

┕ 디자인 아카데미가 들어있는 옛 필립스 전구공장 <데 위테 다메> 건물

디자인 아카데미의 수업은 워크샵, 견학, 강의 등의 형태로 진행되는데,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문성(프로페셔널리즘)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나 코스 다이렉터들의 전문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네덜란드 국내 또는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디자이너, 건축가, 이론가, 시각 예술가 등이 수업진행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래 창의적인 직업활동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최대 하루씩 밖에 지도를 할 수 없다. 나머지 시간은 각가 본업(개인 디자인 사무실 등)에 충실해야 한다. 따라서 에인트호벤의 학생수는 약 700여명인데, 강사진이 110여명에 이른다. 평균적으로 말한다면, 강사 한명당 7명정도의 학생을 지도하는 셈이니, 매우 집중적이고 자세할 수 밖에 없다. 강사진들은, 학생들에게 어떤 기술을 가르친다기 보다는, 학생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창의력을 자극하고, 이끌어 내서, 하나의 제품또는 결과물로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산업 디자인 전분야의 고급교육 HBO을 맡는 디자인 아카데미는 4년간의 학사과정(BA과정)과 2년간의 석사(매스터)과정으로 나누어진다. 총 150시간으로 이루어진 학사과정을 졸업 하면 HBOㅡ디플롬(Bachelor of Design)을 획득하게 된다. 학사과정은 1학년은 기초과정(Foundation Course), 2,3학년은 전문과정, 그리고 4학년은 인턴쉽과 졸업작품 제작기간으로 이루어진다. 학과는 위에서 말한 8개의 핵심 주제로 나누어지고, 이들은 다시 4개의 콤파스(Compas)라고 불리는 코스로 연결된다.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는 4개의 콤파스는 8개의 주제들을 접근하는 실질적인 방법들로, 실습과 수작업 중심의 `아틀리에(Atelier)`, 기술과 문화 사회적 관점을 연구하는 `랩(Lab)`, 디자인을 문화적인 면에서 접근하는 토론 광장인 `포룸(Forum)`, 상점 운영 등을 통해 시장성을 실험하고 디자인의 경제적 관점을 살펴보는 `마켓(Marcket)`으로 이루어진다.

┕ 디자인 아카데미의 학과

총 35시간으로 구성되는 석사과정에는 세가지 매스터 코스가 있다. 드록 디자인에서 맡은 산업, 인테리어, 아이덴티티 디자인 분야를 다루는 `아이엠(IM)`과, 루시 오르타가 맡아 환경문제, 사회유지, 인간문제의 창의적 해결을 모색하는 `인간과 인간성(man and humanity)`, 에드 아닝크, 구스 보이네르, 게오르그 브룩만스, 테일러 위스난드 등의 교수진이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분야를 다루는 `펀랩(funLAB)`이 그것이다. 석사과정을 마치면 디플롬(디자인 매스터) 자격을 얻게 된다.

디자인 아카데미에는 현재 28개국에서 온 700여명의 학부과정 학생들과 80여명의 석사과정 학생들이 있다. 실내 공간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전체가 서로 연결되는 구조로 되어 있고, 소규모 그룹별로 나뉘어서 작업을 한다. 디자인 아카데미에는 디지털 작업실, 메카닉 작업실, 도서관, 학생 작업실, 강의실(비디오 및 오디오 시설), 대규모 전시공간, 카페 등이 마련되어 있다.

www.designacademy.nl
사진출처: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 안내 책자, 요리스 라만 홈페이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