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미세움에서 ‘문화정체성’이라는 키워드로 우리의 공공디자인을 풀어낸 책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왜, 문화정체성인가>가 나왔다. 문화정체성과 공공디자인 외에도 ‘국가경쟁력’, ‘국가브랜드’, ‘세계화’, ‘훈민정음’, ‘디자인 콘셉트’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다. 이들 키워드를 엮고 있는 “왜”라는 의문사는 책 표지에서 보듯 책의 방향을 강력하게 대변해 준다. 우리, 대한민국의 공공디자인을 말하는 데에 왜 문화정체성이라는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측면에 집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증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이 책은 해외의 사례 소개와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통계를 포함해 다양한 참고 문헌에서 이야기를 끌어내 ‘문화정체성’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전개를 따라가 보면, ‘디자인’의 어원에서부터 시작해 하버마스와 그람시의 이론에서 접근해 ‘공공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그 영역을 분류한 후 문화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짧은 시간 내에 성공적으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우리는 그간 단기적 성과와 효율성이 중요한 사적 영역에서의 산업경쟁력에서는 성공을 이뤘다. 하지만 기존 강대국에게 유리한 시장의 ‘세계화’로 인해 ‘문화경쟁력’을 키워 ‘국가브랜드’를 강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장기적 정책 지원이 필요한 문화경쟁력은 지속가능한 공공디자인을 통해 최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 문화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추구해야 한다. 무엇이 대한민국다움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공공디자인 정신을 담고 있는 우리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저자는 ‘훈민정음’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한 논리를 설파하기 위해 저자는 그 창제정신에서부터 살피기 시작해 그 안에서 ‘다름’, ‘애민’, ‘실용’, ‘민주’ 정신을 찾아낸다.

이렇게 전통문화와 디자인 산업을 연계하는 방식은 얼마 전 안그라픽스에서 번역 출판된 <내일의 디자인>에 담긴 일본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하라 켄야는 ‘라쿠다완’과 교토의 ‘지쇼지’, 무로마치시대 전후의 ‘아미슈’라는 기능장 문화를 서구 모더니즘이 들어오기 이전 일본 문화의 이상향으로 꼽고 있다. 이처럼 그는 과거에서 추출해 낸 일본의 ‘독자적 미의식’을 통해 현재 당면한 문제들을 디자인적으로 풀어내자고 설파한다. 일본의 사례가 자신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에서 기인한 반면,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왜, 문화정체성인가>에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통한 강제적 근대화와 해방 이후 서구를 롤모델로 한 경제 급성장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과 단절되고 우리 것에 대한 자기비하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지적한다. 즉 역사적으로 ‘삶의 기준’이 무너진 상황에서 우리의 문화정체성이 가진 힘에 대한 확신 혹은 수요가 부재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 책이 문화정체성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해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공공디자인과 문화정체성이라는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빽빽한 참고 문헌과 통계자료는 2010년 이전에 멈춰 있는 점이 아쉽다. 또한, 정확성을 기하고 글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넣은 많은 자료와 논거들이 오히려 저자의 논점을 느슨하게 만들어 글이 전체적으로 공허하다는 인상도 있다. 이와 비교해서 동일 출판사의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 시리즈 중 일본 공공디자인 사례 모음집인 <디자인이 지역을 바꾼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출판 당시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평가되던 커뮤니티 디자인의 다양한 실행 사례는 논리와 논증을 넘어서는 ‘실제’의 힘을 보여준다.

공공디자인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다움’에 대한 고민을 한 방에 날려버릴 뾰족한 해답이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이 책에서 “왜” 우리에게 문화정체성이 필요한지를 논증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문화정체성을 공공디자인을 통해 드러낼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은 사례를 실제로 만들어 내야 할 시간이다.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왜, 문화정체성인가>

-저자: 김규철
-출판: 미세움
-147x210 mm / 224 쪽 / 13,500 원
-ISBN 978-89-85493-83-3

-목차
책머리에

01 왜, 다시 답도 없는 문화정체성인가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개발에 온 힘을 다하였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공공디자인은 우리의 문화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첫 관문이다
  대한민국 공공디자인은 과연 우리 문화정체성을 담아내고 있는가?
  공공디자인에 우리의 문화정체성을 담기 위한 논의는 미흡하다
  문화정체성의 표현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02 디자인 기초개념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공공디자인이란 무엇인가?

03 대한민국 공공디자인의 문화정체성
  디자인과 문화정체성은 어떻게 관계하는가?
  왜 공공디자인의 문화정체성이 중요한가?
  세계 문화전쟁 시대에서 문화정체성은 생존의 필수품이다
  대한민국다운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04 국가경쟁력으로서 공공디자인의 문화정체성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10년
  문화정체성 표현이 국민에게도,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
  공공디자인 선진국이 국가경쟁력도 높다
  국가경쟁력을 위해 대한민국 공공디자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보편성, 특수성, 개별성이 담겨 있는 대한민국 공공디자인이어야 한다

05 훈민정음에서 찾은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정신
  <훈민정음> 개요 및 의의
  세종대왕 어제: 창제정신
  <훈민정음>에 담긴 공공성 요소
  훈민정음에 나타난 ‘다름, 애민, 실용, 민주’ 정신

0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수행시 디자인 콘셉트의 중요도에 관한 실증연구
  조사의 배경
  조사의 목적과 내용
  결론

07 공공디자인에서 문화정체성의 중요성
  국내 디자인 정책의 흐름
  영국의 공공디자인정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프랑스의 공공디자인 정책
  일본의 국가브랜드를 위한 공공디자인 정책
  문화정체성이 국가경쟁력을 결정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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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희채
예술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한 문화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일들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