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을 미술과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는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현실문화에서 나온 할 포스터(Hal Foster)의 <콤플렉스 – 미술을 소비하는 현대 건축의 스펙터클>이다. 저자인 할 포스터는 미국의 미술 비평가로 2003년 출판된 <디자인과 범죄>를 통해 미술비평적 방법론을 디자인과 건축으로까지 확대 적용한 스타 비평가다. 저자를 세계적 비평가의 반열로 올려놓은 1996년 작 <실재의 귀환>에서 현대미술을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에 기원을 둔 계보로 파헤쳤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 그 관심을 그대로 건축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단지 두 저작의 사이에 있는 15년의 세월은 한창 뜨거웠던 ‘포스트모던’ 논쟁을 조금은 떨어져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책의 제목인 ‘콤플렉스’라는 단어는 3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우선 단순히 미술과 건축이 병치, 결합하는 여러 조합을 가리킨다. 그리고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에서와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통해 건축과 미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문화를 경제로 전환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경계를 환기한다. 마지막으로는 장애나 신드롬에 대한 진단적 의미가 있다. 이런 반(半)부정적 뉘앙스를 기조로 할 포스터는 투자를 유치하려는 기업이나 도시를 브랜드화하려는 정부와 손잡은 현대 건축을 미술과의 상호 영향관계를 통해 분석하고 비판한다.

현대 건축에서 기술과 근대를 극복하는 방식을 ‘팝’을 받아들이는 양상에 따라 다르게 분석하는 레이너 밴험(Reyner Banham)과 로버트 벤추리(Robert Venturi)의 이론적 대립은 ‘포스트모던’ 건축의 글로벌 스타일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 설계로 유명한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와 런던의 스위스리를 설계한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고전적인 면모가 강조된 정교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렌초 피아노(Renzo Piano)가 바로 글로벌 스타일을 이끄는 스타건축가다. 첨단 기술을 사용해 구조보다는 표면을 강조한 투명한 유리와 철제 골조의 가벼운 건축. 이처럼 그들이 보여준 건축에서 ‘팝’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때의 ‘팝’이 미술에서의 의미와는 다른 표피적인 의미로 왜곡되어 사용됨을 지적한다.

미술을 핵심적인 출발점으로 삼는 건축가로는 자하 하디드(Zaha Hadid)와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S+R)를 들고 있다. 러시아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자하 하디드는 건축에서 ‘재현’의 문제를, 건축을 시각적 매트릭스로 받아들인 DS+R은 투명한 ‘응시’를 건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디아:비콘과 뉴욕 MoMA의 리디자인은 최근 미술관 건축에서 나타나는 현대 미술관 전시의 패러다임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시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맥락을 형성하며 미니멀리즘 전시에 최적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건축과 미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거쳐 저자는 본격적으로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즉 미술과 건축의 관계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영화와 같은 매체의 성격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최근 예술의 위상 재정립 과정에서 나타나는 건축의 중요한 역할을 미니멀리즘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조각과 앤서니 맥콜(Anthony McCall)의 필름, 댄 플레빈(Dan Flavin)과 여타 작가들의 설치 작품을 통해 미니멀리즘 이후의 매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리처드 세라와의 인터뷰로 글은 마무리된다.

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완공과 함께 스타건축가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에 대한 논쟁이 격렬했다. 할 포스터의 이번 책은 현대 건축이 왜 그렇게 거대한 스펙터클에 의존하게 되었는지를 미술을 매개로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술술 읽을 만한 책은 아니지만,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사례 위주로 이야기 전개되니 용기를 내보아도 좋겠다.

<콤플렉스: 미술을 소비하는 현대 건축의 스펙터클>

-저자: 할 포스터(Hal Foster)
-역자: 김정혜
-출판: 현실문화
-140x210 mm / 392 쪽 / 28,000 원
-ISBN 978-89-6564-084-4

-목차
서문

1장. 이미지-건물

  1부. 글로벌 스타일
2장. 팝 시민학
3장. 수정궁들
4장. 가벼움의 근대성

  2부. 건축 대 미술
5장. 네오아방가르드 제스처
6장. 포스트모더니즘 기계들
7장. 미니멀리즘 미술관들

  3부. 미니멀리즘 이후의 매체
8장. 조각의 재창조
9장. 발가벗겨진 필름
10장. 해방된 회화
11장. 이미지에 맞선 건물

옮긴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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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희채
예술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한 문화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일들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