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문구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다. 디자인되지 않은 문구란 있을 수 없겠지만 분명 오늘날의 문구는 다른 디자인 분야보다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사용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보다 섬세하게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드는 문구 디자인





요즘과 달리 일기를 꼭 검사받아야 했던 90년대, 우리에게는 전용 일기장이 있었다. OO년, OO월, OO일, 날씨 OO을 채우는 것을 시작으로, 부모님 말씀과 선생님 말씀이 채워지면 무려 전날의 일기는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일기 전용 노트 대신 줄 간격이 좁은 노트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맨 윗줄에 자연스럽게 날짜와 날씨를 썼고 좁아진 노트만큼 나의 글자도 작아졌다. 제법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가방에는 수학문제 풀이용 연습장과 영단어 정리용 수첩이 추가되었다. 연습장을 스케치북 삼아 그림을 그렸고 친구한테 쓸 편지지로 수첩은 애초에 거덜이 났다. 이렇게 나름대로 유연하게 나의 문구를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문구의 사용은 알게 모르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생활을 묘하게 단련시키고 움직이게 하며, 때로는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현재의 디자인 문구는, 사용자가 문구와 함께 하는 현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 과거에 비해 매우 섬세해졌다. 중요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외울 수 있도록 종이 사이사이에 트래싱지를 배치해 주고 영수증 혹은 각종 티켓을 소장할 수 있도록 종이봉투를 페이지 사이사이에 숨겨놓는다. 디자인된 문구는 조금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사용자가 자신의 삶을 가꾸고 계획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디자인(design;계획)’ 문구라는 단어는 그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혹자는 선 몇 줄 더 긋고, 종이 종류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큰 혁신이냐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선 하나를 더 그어준, 가방에 쏙 들어가는, 종이 낭비를 최대한 줄인 노트 하나에는 우리의 일상과 삶의 철학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현대문명의 물리적 기술을 통한 혁신적인 변화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변화의 주체가 사물의 시각적 형태가 아니라 사물을 사용하는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면, 이러한 작은 시각적 변화를 통한 내 삶의 진화가 바로 혁신의 시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공장; gongjang





TOMS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다. ‘기부’의 또 다른 모습이다. TOMS를 신었다는 것은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갖는 것이자 설립자의 인생철학에 동의하고 동참하는 것이다.

디자인 문구에도 ‘쓰는’ 것만으로 만든 이의 철학을 공유하고 이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브랜드, 공장(gongjang)이 있다. 공장에는 제품의 환경성을 자체 진단하는 평가리스트인 ‘에코리스트’가 있는데, 이는 환경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가이드와 같다. 제품에 따라 각 카테고리 항목의 환경성을 단계별로 점수를 주고 총 합계점수에 따라 1~3단계로 나누어 그린라벨을 부여한다. 환경에 가까워진 만큼 다소 단순한 공장의 제품들은 환경 보호에 기여할 수 있음은 물론 쓰는 이로 하여금 제품이 단순해진 만큼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철학적 기회도 제공한다.





*공장(GONGJANG): 공방에서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工匠)이라는 의미와 물건을 만드는 장소(工場,factory)라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숨은 가치를 위한 힌트, MMMG  

MMMG는 항상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그래픽으로 우리 주변에 숨어있는 밀리미터와 밀리그람의 가치를 발견한다.

유선(有線) 혹은 무선(無線)만이 존재하던 노트에 유선도 무선도 아닌, MMMG의 LINES라는 이름의 노트는 각자의 쓰임에 맞게 노트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4가지 형태의 라인은 여러 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해석된다. 사용자는 라인 속에 숨어 있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일상의 가치로 직접 변화시켜 나간다. 누군가 정해 놓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찾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MMMG의 라인은 일종의 힌트가 아닐까.

*MMMG: 밀리미터 / 밀리그람을 뜻한다. 




경험을 통한 일상의 변화

문구를 선택하는 이유와 문구와 함께하는 순간이 더욱 기능적이고 감성적이며 보다 철학적이어 지고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다 깊고 풍부해졌다. 이는 근거 있는 시각 요소, 사이즈, 형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정이 섬세하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문구는 우리 삶 속에서 매일같이 직접 손으로 만지고 사용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문구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이렇게 일상의 숨은 가치를 능동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구는 사용하는 것을 넘어 경험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gongjang / www.gongjangs.com
MMMG / www.mmm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