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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장이모우가 선택한 발레 ‘홍등’, 아시아 무대 디자인의 화려한 불꽃을 피우다

 

 

 

 

지난 2008년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이후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던 중국국가발레단의 ‘홍등’이 4년 만에 다시 국립극장을 찾았다. 10월 18일과 19일에 공연됐던 이 작품은 4년이란 세월을 무색케 할 만큼 장이모우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화려한 색채미가 빛을 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30년대 중국 봉건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발레 ‘홍등’은 중국 특유의 색감을 이용하여 무대를 자유자재로 이끌어냈으며, 다양한 이미지 기법을 이용하여 드라마틱한 완성도를 더해 주었다.

 

장이모우 감독은 영화 ‘홍등’을 비롯한 ‘붉은 수수밭’, ‘귀주 이야기’, ‘영웅’ 등의 다수의 작품에서 세계적인 상을 휩쓴 명장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마다 색채와 이미지 영상기법에 힘을 실어 넣는 인물로 유명하다. 특히 관객들은 장이모우 감독의 작품을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장면에 등장하는 강렬한 색채로서, 극의 전체 흐름을 이용할 때 색채감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 색채 디자인은 작품을 완성시키는 크나큰 요인이라 평가된다.

 

 

 

 

 

                                                                 △ 연출가 장이모우

 

 

 

장이모우 감독이 무대 연출로 빛을 발하게 된 것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그는 “색채로 역사를 서술하고 음악으로 동서양과 고금을 관통할 것”이라는 말을 전하며 ‘투란도트’에서 서양의 오페라 연출가들이 사용했던 기술적인 면모보다는 동양적인 색채와 함축미, 깊이감을 통해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보여주었다. 이는 영화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노하우를 무대로 전달시키며 무대 디자인의 특성을 완전히 뒤집는 결과를 낳았다. 기술적인 면모보다는 예술적인 면모를 기본으로 무대 위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시각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국가발레단의 ‘홍등’ 에서도 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홍등’이란 붉은 빛이 나는 등불이라는 뜻을 지닌다. 극 중에서 봉건 영주는 부인 중에 매일 한명을 택해 잠자리를 같이하는데, 선택당한 부인의 처소에는 그날 밤 ‘홍등’을 밝히는 가풍이 조상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 어두운 무대에 설치된 25개의 ‘홍등’은 소리 없이 내려와 작품의 본질을 말해주며, 극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 불이 밝게 켜진 ‘홍등’의 모습은 부인들의 삶과 일치하며, 극 중간 마다 한 번씩 등장한다. 더욱이 발레 ‘홍등’에 사용된 음악은 중국 전통 음악으로, 그 특유의 음색은 전혀 서정적이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조용히 내려오는 ‘홍등’을 통해 잔잔함과 서정적인 면모를 대신해주는 역할을 해냈다.

 

 

 

 

 

 

 

 

대부분 극에 사용된 색감은 붉은색과 초록, 주황, 검은색을 위주로 하고 있다. 봉건 영주는 어두운 검은색을, 첫째 부인은 초록색을, 둘째 부인은 주황색을, 마지막으로 젊은 부인에게는 붉은 색을 사용하는데, 모두 각각 의상부터 토슈즈까지 색을 통일시킨 점에서 작품의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캐릭터 특유의 성격을 색감으로 보여주면서 무대와 일치되게 한 것이다. 이는 어두컴컴한 무대에 화려하게 눈에 띄는 색감을 이용함으로써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흡입력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이번 작품에서 장이모우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 부분은 봉건 영주와 첫날밤을 피하려 도망치는데 있어 그림자극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림자로 서로 억압받고 억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벽을 뚫고 나오는 장면은 봉건사회의 시대적 아픔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이는 작품의 시대상을 꼬집는 부분으로 영화에서 느껴봤던 먹먹한 기분을 무대라는 하나의 관념 속에 사실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무대 안에 또 다른 무대 ‘패왕별희’ 공연 장면, 젊은 부인과 경극단의 배우의 사랑 씬, 그 모습을 지켜본 둘 째 부인 등 삼각 구도를 ‘극중극’ 장면으로 포괄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장면은 장이모우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장이모우 감독의 그간의 노고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영화에서는 한 씬 한 씬 나누어서 찍을 수 있지만, 무대라는 하나의 공간은 한 씬 한 씬 나누어서 보여주기가 여건상 어렵다. 하지만 장이모우 감독은 이런 장면, 장면들을 한 무대 안에서 보여줌으로써 삼각 구도를 형성시키며 각각의 캐릭터를 살려냈다.
무대 안에 또 다른 공간들을 만들어 그 곳에서 각자의 캐릭터를 통일감있게 구사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보낸다. 대부분 무대 안에 각각 다른 설정들을 놓으면 자칫 부자연스럽고, 어색해 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장이모우는 세 개의 구도를 춤과 위치선정, 소품 등을 적절하게 이용함으로써 극을 한 층 업그레이드시켰다.

 

장이모우 감독의 이미지 기법의 완성도는 마지막 장면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봉건 영주에 의해 젊은 부인과 경극 배우, 둘째 부인이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 모습을 무대 뒤편에 설치된 하얀 막을 이용한 점이 돋보인다. 군인들이 한 사람씩 긴 막대기를 들고 나와 흰 막을 치면 그 곳에 빨간 줄이 그어지면서 핏 자국을 연상시킨다. 그 모습은 주인공들의 움직임을 통해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후 하얀 눈이 죽은 이들 위에 뿌려지면 그 뒤로 무용수 한사람씩 ‘홍등’을 들고 나와 지나가는 모습에서 미적 극치를 보여준다. 무대와 연출, 그리고 무용수들의 모습을 마지막 ‘홍등’으로 정리하면서 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이렇듯 무대는 장이모우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바탕으로 영화를 보는 듯한 한 편의 스토리를 알차게 엮어냈다.

 

 

 

 

 

 

 

 

그러나 발레 ‘홍등’은 이런 무대 연출력에 힘을 쏟은 반면, 음악적인 부분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4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다소 식상했다. 중국 전통음악을 사용한 것은 고유의 민족의식을 느끼게 하며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음악적인 부분에 모던함과 서정적인 리드미컬함을 주었다면 훨씬 세련미가 더해졌을 것이다. 또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단조롭다는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안무의 참신함이 부족하고 테크닉적인 기교를 배제해서인지, 다른 작품과는 차별화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남녀 주인공의 사랑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감정이입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안무를 통해 그들의 내면을 심도있게 그려냈다면 훨씬 완성도 높은 공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함을 남긴다.

 

하나의 작품에서 탁월한 무대 연출력과 안무, 음악, 그리고 무용수들의 내면연기가 모두 조화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장이모우 감독은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키듯 무대 전체를 보고 판단하고 그려내는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였다. 그는 무대의 전체적인 면을 보고 작품을 완성시켰고, 세세한 부분은 각자 맡은 이들의 몫이다. 뛰어난 명장을 통해 만들어진 ‘홍등’의 세계화를 위해 조금 더 세밀한 수정보완이 필요할 듯하다. 발레 ‘홍등’은 발레라는 하나의 장르적 관점을 탈피시킨 아시아 무대 디자인계에 희망을 알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작품이 밑바탕이 되어 앞으로도 끊임없는 무대 디자인의 진취적 행렬을 기대해 본다.

Tag
#중국 #디자인 #장이모우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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