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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만 전하는 라디오 : 티커 테이프 _ 신보슬

좋은 소식만 전하는 라디오
: 티커 테이프 (Ticker Tape)


글  신보슬


프롤로그

따르릉~ 알람이 울리고 늘 그렇듯 습관적으로 TV를 켠다. 멕시코에서는 돼지독감으로 60여명 가까이 죽었단다. 돼지독감은 스페인 독감만큼이나 위협적일 수도 있으니 각국의 주의를 바란다는 앵커의 당부가 이어진다. 그리고 지구촌 어디에선가 내전이 일어나 수 천명이 죽었고, 또 다른 어느 곳에서는 이상기후로, 기아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들로 나의 화창한 5월의 아침은 시작되었다. 잠이 덜 깬 탓인지, 이젠 어지간한 소식에는 놀라지 못하는 무뎌진 마음 탓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속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위험한 상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지구촌 곳곳에서 전해지는 우울하고 참혹한 소식들을 무덤덤하게 귓전으로 들으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 안에서 펼쳐 든 신문 속 이야기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분 좋은 소식은 눈 씻고 찾아 봐야 구석에 난 박스기사 정도. 보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세상은 이렇게 화나고, 짜증나고, 슬픈 뉴스들에 의해서 굴러가는가 보다. 신나고 유쾌한 이야기들로만 가득한 아침을 맞는 날이 오기는 할까. 문득, 좋은 소식만 전한다던 라디오 '티커 테이프'가 생각났다.

좋은 소식만 전합니다! '티커 테이프'

사진 1. 라디오 튜닝 images courtesy of Will Carey

티커 테이프는 윌 커레이(Will Carey)가 디자인한 라디오로 런던 RCA(Royal Collage of Art)의 전시에 소개되었다. 온갖 좋지 않은 소식에 익숙한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비정상적이면서도 원치 않은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했던 커레이는 바로 이 지점에 초점을 맞췄다. 좋은 소식을 겁내는 좋은소식공포증(euphobia) 환자들. 그러니까 커레이의 라디오는 좋은 소식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외이긴 하지만 좋은소식공포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일종의 치유책으로 티커 테이프를 만든 것이다. 물론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에는 집단심리치료나 역할극, 혹은 심리학적 상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테고, 티커 테이프가 실제로 환자를 치유하는데 효과가 있는지 역시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커레이는 환자가 자신의 결단에 의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공포와 대면할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부여함으로써, 좋은소식공포증 환자들이 점차 공포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사진 2. 라디오 켜기 image courtesy of Will Carey

티커 테이프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기 위해서는 라디오 본체와 연결되어 있는 티커 테이프-원래 티커 테이프라는 말은 통신이나 증권시세가 인쇄된 테이프를 말한다-를 잡아당겨 야 한다. 그러면 RSS피드를 사용해서 제작된 티커 테이프는 인터넷 방송에 접속하여 비교적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은 소식들을 들려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소식을 들으면 공포감을 느끼게 되지만, 그 공포를 마주하기 위해서 본인이 '직접' 테이프를 잡아 빼며 라디오를 작동시키는 아주 간단한 행위를 해야 한다. 작은 결단이긴 하지만, 그런 결단을 부담 없이 반복하게 되면서 서서히 좋은 소식을 무리 없이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커레이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사진 3. 라디오 내부 image courtesy of Will Caery

티커 테이프에 눈길이 가는 것은 나쁜 소식 투성이인 세상에 좋은 소식만 전하는 착한 라디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술이 기술(테크놀로지)과 만났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소위 말하는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은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라운 SK25라디오 디자인을 참조한 맵시 나는 디자인의 티커 테이프는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매스미디어의 태도-와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한다. 세상의 온갖 궂은 일들이 그저 나의 일이 아니기에 쉽게 눈 감아버리고 있는 것은 아니냐 묻기도 하고, 좀 더 나은 세상, 좋은 소식들로 가득한 세상에 대한 우리들의 꿈에 대해 은유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렇게 작고 예쁜 라디오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머지않아 내 책상 위에도 세련된 디자인의 티커 테이프가 하나 놓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온종일 지겹도록 테이프를 당겨 즐거운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더 욕심을 내어 TV나 라디오만 켜도 미소 짓게 하는 소식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10년 전쯤, 한 큐레이터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미디어아트라는 것은 테크놀로지를 자랑하는 예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되돌아 생각하게 하는 예술이라고. 아직은 프로토타입으로만 소개된 티커 테이프를 보면서 오래 전 그 큐레이터가 했던 말을 되뇌어 본다. 


 

신보슬_큐레이터

10년도 넘게 미디어아트라는 녀석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많은 전시와 작품을 만나며, 일상에 많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해왔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그 신나고 즐거운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몇몇 괴짜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나아가 사람이 더불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Tag
#신보슬 #티커 테이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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