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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게임을 사니? 난 내가 만드는데... _ 신보슬

넌 게임을 사니? 난 내가 만드는데...
- 어린이미디어아트 교육에 대한 단상
 
글  신보슬
 
5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토탈미술관에는 ‘핀란드 어린이 디자인 워크숍’에 참여하러 아이들이 오밀조밀 모여든다. 생전 바느질이라곤 해보지 않았던 아이들이 버려지는 자투리 헝겊으로 가방도 만들고 인형도 만든다. 그러나 워크숍이 끝나면 헝겊과 바늘을 만지던 손에는 다시 닌텐도 DS같은 게임기가 들린다. 게임에 빠져있는 아이들. 가방을 만들 듯, 그렇게 게임을 만드는 아이들을 키워낼 순 없을까?
 

그림 1. 미농 게임키트 워크숍 HMKV 2008, photo ⓒ Olaf Val
 
미디어아티스트 올라프 발(Olaf Val)의 워크숍은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미농(Mignon)이라는 게임키트를 활용하는 ‘게임보이(GameBoy)’ 워크숍을 통해 아이들은 직접 프로그래밍도 하고 납땜질도 하면서 게임기를 만든다.

2004년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에서도 발은 같은 워크숍을 진행했다. 당시에는 아쉽게도 짧은 시간에 많은 학생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압축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직접 프로그램을 짜는 과정은 생략되고 게임기를 만드는 과정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림 2. 미농 워크숍에 참여 중인 어린이,
photo by boseul shin

하지만, 게임기는 ‘사는 상품’으로만 알고 있던 아이들이, 직접 자신이 게임기를 만든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신기함 때문이었는지, 조막만한 손으로 납땜을 해가며 외국인 작가 선생님의 말을 곧잘 따라했다. 올라프 발은,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릴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같은 이유에서 미디어의 작동 원리를 알아가는 워크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컴퓨터라는 박스 안에서 벌어지는 과정을 알고 있을 때, 제대로 미디어아트를 즐기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아트라고 하면 그저 상호작용하는 컴퓨터 장치나 비디오 아트만을 떠올리는 것도 우리가 그 안의 메커니즘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림 3. 키요시 후루카와 <스몰피시> 워크숍, photo by boseul shin
 
그런가 하면, 키요시 후루카와(Kiyoshi Furukawa)의 어린이 미디어아트워크숍은 좀 다른 방식에서 진행된다. ZKM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던 ‘스몰피시(Small Fish)’라는 상호작용 DVD 작품에 참여했던 그는, 이후 이 작품을 가지고 어린이 워크숍을 개발했다. 청각장애 어린이와 일반 어린이가 함께 팀을 이뤄 주제를 정해 그림을 그린 다음, 그림에 맞는 소리를 녹음해서 프로그램에 입히면, 마우스로 인터랙션이 가능한 ‘스몰피시’가 만들어진다. 이 워크숍에는 특수 스피커가 사용되어 청각장애 어린이들도 사운드를 감지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러한 류의 워크숍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은 물론 기술을 바라보는 올바른 방식을 터득하게 하고, 장애우들과 비장애우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림 4. (왼쪽) <스몰피시> 작품발표, (오른쪽) 워크숍에 사용된 진동 스피커 photo by boseul shin
 

2004년 한국에서 워크숍이 진행되었을 때, 나는 보조강사로 참여했었다. 한 청각장애 어린이가 스케치북 가득 해와 달, 바위와 꽃 같은 것만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스케치북에 썼다. “OO야, 해와 달과 바위는 소리가 없는데, 이런 것만 있으면 소리를 녹음하기 힘들지 않겠어?” 내 질문이 답답했는지 아이는 수화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해도 바위도 꽃도 소리가 있어요. 여름 해는 큰 소리를 내고, 겨울 바위는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고요. 이렇게 꽃도 달도 소리가 있는 거예요.” 이 아이는 촉각을 일종의 사운드로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여전히 난 그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멍청한 어른이었던 것이다.

확실히 그의 말처럼 ‘스몰 피시’ 워크숍은 기술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기술을 매개로 더불어 사는 삶을 경험하는데 있었다. 워크숍이 끝나고 서로의 소감을 발표하던 자리에서, 한 꼬맹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청각장애어린이랑 함께 한다고 해서 불쌍한 친구들이니 잘 돌봐줘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오늘 함께 워크숍을 해보니 청각장애어린이들은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인 것 같습니다. 일본 선생님은 말을 할 수 있고 들을 수도 있는데, 통역이 필요한 것처럼, 듣지 못하는 친구들도 통역이 필요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꼬맹이에게 일본어 통역이나 수화통역이나 매한가지 통역이었던 것이다.

지난 5월16일은 ‘스크래치 데이(scratch day)’였다. 스크래치는 일반인들도 쉽게 인터랙티브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음악 등을 만들 수 있는 MIT에서 개발한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로, 스크래치 데이는 그간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날이다. 올해 처음 열린 스크래치 서울 행사에서도 스크래치 미디어(아트) 교육에 관심 있는 어른/아이들이 모여서 서로의 경험담을 나누었다. 특히 PINY (Powerful Idea jouNeY)라는 미디어(테크놀로지) 활용 교육 실험 등 다양한 활동들이 소개되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럴싸한 미디어아트 전시회가 아니라, 아이들과 만들어가는 이런 작은 활동들일지도 모르겠다. wii나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게임을 사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고, 게임을 만들고, 작곡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질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앨런 케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아이들이 신나고 멋진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신보슬_큐레이터

10년도 넘게 미디어아트라는 녀석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많은 전시와 작품을 만나며, 일상에 많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해왔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그 신나고 즐거운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몇몇 괴짜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나아가 사람이 더불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Tag
#미디어아트 #교육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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