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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상과 사랑에 빠지다 _ 박성윤

[일본] 불상과 사랑에 빠지다
 
글  박성윤, 사진  Paul April
 

그림 1. 나라 코우후쿠지 소장 국보 아수라입상

지난 6월 2일, 일본의 미디어들은 경이로운 숫자를 앞세워 어떤 뉴스를 앞다투어 전했다. 바로 3월 31일부터 6월 7일까지 도쿄국립박물관(東京国立博物館)에서 열리는 <코우후쿠지 창건 1300년 기념 국보 아수라전(興福寺創建1300年記念「国宝阿修羅展」>의 입장객이 80만 명을 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것은 단기간 열린 이전의 불상 전시나 문화재 관련 전시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림 2. <코우후쿠지 창건 1300년 기념 국보 아수라전> 포스터

이 전람회는 나라(奈良) 코우후쿠지(興福寺)의 중금당(中金堂) 재건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으로, 일본의 국보인 아수라를 포함해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명의 신장(神將)인 팔부중상과 십대제자상, 약왕•약상보살입상, 사천왕입상 등 대표적인 중요문화재 70점과 이 밖의 1400점이 넘는 국보와 보물 등을 일반에 공개했다. 특히 현존하는 팔부중상과 십대제자상(현존 6상) 14점이 코우후쿠지 외의 장소에서 동시에 공개된 것은 일본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더욱이 이 귀한 국보 14점을 유리 케이스 없이 실물 그대로 360도 어느 방향에서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한 점 때문에 이미 전시 오픈 전부터 수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도 하루 평균 1만 2천 명 이상이 박물관을 찾고 있고 더불어 일본 각지에서 불상 관련 행사로 인파들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니, 이런 뜬금없는 불상 열기의 근원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이 이 불상 붐을 이끄는 중심에 20~30대가 다수 포진해 있다는 점도 역시 매우 이례적이다.

사실 이런 불상 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 파리에서 오픈한 부다 바(Buddha Bar)를 시작으로, 서구에서 부디즘이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으로 각광받았던 적이 있다. 불상 장식으로 신선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던 레스토랑•바인 부다 바는 서구 젊은이들 사이에서 힙한 스폿으로 명성을 얻었다. 게다가 불상 이미지를 커버로 했던 부다 바의 메인 디제이들에 의한 힐링 뮤직이나 라운지 계열의 CD ‘부다 바’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고, 라이프스타일 잡지 등에서도 불상 아이템이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0여 년 전 서구의 불상 붐과 지금 일본의 불상 붐은 좀 양상이 다르다. 당시 서구는 동양에 대한 동경심이나 신비주의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트렌드로 승화되어 불교나 불상이 일종의 스타일적인 측면으로 강조되었던 반면, 지금 일본에서는 ‘왜 엄지와 검지를 맞붙이고 있는지’ ‘왜 이마에 점이 있는지’와 같이 사소한 호기심에서부터 불상 속에 숨겨진 불교적 의미나 역사적 배경, 정신적인 가르침 등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 그리고 불황이나 생활 속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의 치유 등에 무게를 실고 있다. 여기에 무작정 유행 따르기를 좋아하는 일본인 특유의 대중심리도 불상 붐을 이끄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불상 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까? 앞서 아수라전의 뜨거운 인기를 전하긴 했지만 이와 더불어 지난 4월에는 세타가야 미술관의 불상 특별전과 긴자 와코우 홀의 불상사진전 등 불상 관련 전시와 이벤트가 동시에 개최되어 도쿄 전체가 불상의 열기에 휩싸였다. 또 도쿄, 쿄토와 나라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뮤지엄이나 사찰에서도 불상 기획 전시 스케줄이 내년 말까지 빼곡하게 짜여 있다.
 

그림 3. 대중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 쓴 불상 관련 서적들
불황인 출판계에서도 불상 관련 서적들의 출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불상해설서, 불교입문서, 불상사진집 등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알기 쉽게 불상을 소개한 불상서가 놀랄 정도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불상 관련 전문지가 연이어 창간되고 있다. 브루터스(BRUTUS), 잇코진(一個人) 등 일반 잡지에서도 대대적으로 불상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하물며 출판업계에서는 ‘아수라상을 표지로 하면 말할 것도 없이 대박’이라는 소문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을 정도다.
또 NHK를 비롯한 TV 방송이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불상 특집의 퍼레이드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불상 붐은 이 정도에서도 성이 차지 않아 보인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케맨(イケメン: 잘 생긴 외모의 남자를 일컫는 속어, 우리의 ‘꽃미남’에 해당)’ 불상 찾기 투어라든가 불상 조각 교실 등이 성황을 이루고 불상 피겨, 불상 포스터와 스티커, CD 등 불상 관련 이색 아이템들은 나오는 족족 동이 난다. 덩달아 불상 전문 블로거로 활동해온 ‘불상 걸(仏像ガール)’이라는 아이디의 인물마저 유명인이 되었다.
어디 이뿐인가?
급기야는 불상 팬클럽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중 가장 유명세가 높은 팬클럽이 바로 아수라 팬클럽(Ashura Fan Club)이다. 인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유명 방송인인 미우라쥰(みうらじゅん)이 팬클럽 회장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록밴드 지 아루휘(THE ALFEE)의 기타리스트 타카미자와 토시히코(高見沢俊彦)를 비롯해 인기 모델과 아이돌 배우, 아나운서 등이 메인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아수라 팬클럽 공식 송인 ‘사랑의 우상-러브 아이돌(愛の偶像-ラブ・アイドル)’ CD 싱글까지 발표했다.

그림 4. 아수라 팬클럽의 ‘사랑의 우상-러브 아이돌’ CD 싱글, 디자인 미우라쥰


이처럼 현재 일본인-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상’은 고즈넉한 사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낡은 유물이나 케케묵은 아나크로니즘적 존재가 아닌,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대의 우상이자 잃어버렸던 영웅, 현실 속 존경의 대상으로 새롭게 되살아났다. 불상의 전람회를 찾는 일이마치 내방한 세계적 수퍼스타의 콘서트를 보러 가는 일만큼이나 흥분되고 기대되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불황같이 현대 사회가 가져다주는 갖가지 불안 요소로 인해 마음 저변으로부터 진정한 행복을 실감할 수 없는 현실이나 불확실한 미래, 삶에 대한 가치와 방향성의 상실 등 현실 도피의 궁색한 변명이든, 불상에 대한 비주얼 위주의 표면적인 수준의 이해든, 상업적 목적에 의해 의도된 전시든, 아무 생각 없이 일시적인 기분으로 따르는 유행이든간에 지금 일본 젊은이들을 1000년 이상의 긴 세월을 거쳐온 불상 곁으로 이끌게 한 것은 분명 모순된 이 시대 정신의 또다른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반 대중들에 의한 현대판 대승적 재가득도(在家得道)의 새로운 트렌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설명]
그림1. 나라 코우후쿠지(興福寺) 소장 국보 아수라입상(阿修羅立像).
아수라 입상은 <코우후쿠지 창건 1300년 기념 국보 아수라전(興福寺創建1300年記念「国宝阿修羅展」>의 경이로운 입장객을 동원한 ‘불상계의 최고 인기의 수퍼스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아수라는 전쟁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악신이었는데 석가의 가르침을 얻어 팔부중(八部衆) 중 하나인 재앙이나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수호신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수라장’도 전쟁신이던 아수라의 싸움터를 빗댄 것에서 유래된 것. 734년 제작된, 일본의 최고 국보 코우후쿠지의 아수라입상은 삼면육비(三面六臂), 즉 정면과 양측면 각각에 얼굴이 있고 여섯 개의 팔이 달린 특이한 형상을 띠고 있어 정면과 함께 측면에서도 다이내믹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림 2. <코우후쿠지 창건 1300년 기념 국보 아수라전>의 포스터.
이 전시를 찾은 인파가 80만 명을 돌파한 것은 일본 미술 전람회 사상 최고 기록이자 150만 명이 동원된 1974년의 모나리자 전과 129만 명이 동원된 1965년의 투탕카멘 전 다음으로 일본 전시 역사상 3위에 랭크되는 놀라운 기록이다. 도쿄국립박물관에 이어 동일한 내용의 전시가 큐슈국립박물관(九州国立博物館)에서 7월 14일에서 9월 27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www.asahi.com/ashura) 참조.

그림 3.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알기 쉽게 소개한 각종 불상 관련 서적을 비롯해 미술 전문지는 물론 각종 대중 잡지에서도 불상 특집을 다루고 있다.
20~30대가 즐겨보는 대중적인 잡지인 브루터스(BRUTUS)에서는 100페이지에 이르는 불상 특집을 선보였는데 불상에 대한 각종 정보나 불상을 보는 방법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대표적인 32점의 불상 이미지와 존귀도, 불상명, 소장처, 상세 정보, 범자(梵字: 산스크리트의 옛 글자)나 생몰년(生沒年) 등을 담은 카드를 특별 부록으로 선사했다. 언제든지 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불상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상의 존귀도를 최고 지존 여래부(如來部)에서 보살부(菩薩部), 명왕부(明王部), 천부•신(天部•神), 고승•조사(高僧•祖師)까지 총 다섯 등급의 하이어라르키(피라미드형 계층도)로 구분해 간단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그림 4. 아수라 팬클럽의 ‘사랑의 우상-러브 아이돌’  CD 싱글.
타카미자와가 작곡하고 미우라쥰(みうらじゅん)이 작사와 CD 재킷 디자인을 맡았다. 이 CD 싱글은 <국보아수라전>를 기념하기 위해 전시가 열리는 도쿄국립박물관과 큐슈국립박물관 공식 사이트에서만 한정 판매했는데 내놓자마자 순식간에 완매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박성윤_프리랜스 에디터
oz1018@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졸업.
잡지 <마리끌레르 메종> 에디터로 근무 후, 2004년 도일. 2007년 도쿄 가이드북 <동경오감> 출간

 

 

Tag
#일본 #불상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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