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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내려앉은 반짝반짝 작은 별을 기다리며 01 _ 신보슬

건물에 내려앉은 반짝반짝 작은 별을 기다리며
-미디어파사드/경관미디어에 대한 단상 1


글  신보슬

슈투트가르트에서 뮌헨으로, 뮌헨에서 다시 밤 열차를 타고 베니스로. 새벽 6시 반, 베니스의 화사한 아침이다. 베니스는 4년 전 비엔날레를 보러 밤 비행기로 이곳을 왔을 때와도, 심지어 15년 전 꾀죄죄한 몰골로 배낭을 메고 처음 들렀을 때와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일까,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다는 인상을 준다. 세상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변했는데, 베니스는 언제나 베니스만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베니스의 밤은 어둡다. 빛 바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흔들거리는 작은 불빛들. 그마저도 열한시경이 되면 하나 둘 꺼지고, 도시도 잠이 든다.

베니스 야경, Copyright Hendrik Boot / NINIX 2007

그러고 보면 서울의 밤은 베니스의 밤과 다르다. 서울의 밤은 낮보다 화려해서, 태양이 잠들면 인공조명과 전광판들이 깨어난다. 특히 최근에는, 미디어 스킨 혹은 미디어 파사드, 경관미디어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건물들이 외관을 스크린으로 감싸고 첨단미디어로 무장하며, 서울의 밤은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사실 어찌 보면, 미디어 스크린/파사드는 그리 새로운 개념도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블레이드 런너>를 여는 첫 화면에서 우리는 비에 젖어 드는 도시의 밤에 화려한 전광판들이 번쩍거리고, 그 안에서 기모노를 입은 한 여인이 농염하게 유혹하는 장면을 보아왔다. 그리고 그 후에도 미디어 스크린이나 경관미디어 개념은 점점 진화된 모습으로 무수히 많은 SF 영화에 등장했다. 하긴 새로우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이루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따뜻하고 밝은 상상을 해가는 버릇을 키워야 할지도 모른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 오는 미디어 파사드에 대한 열풍은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 곳곳에 전광판이 들어선 것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전광판과 영상작업과의 랑데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 ‘미디어시티서울’ 개최 당시, 전광판에 비디오 작품을 상영하는 것이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전광판 소유자와 기획자와의 마찰은 광고비가 어마어마한 일종의 ‘퍼블릭’ 공간에 무료로 영상작품을 상영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협업인가를 절실하게 가르쳐 준 에피소드였다.

그런데 최근 미디어 파사드의 붐은 미디어아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나게 한다. 건물 옥상이나 벽면에 별도로 전광판을 설치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이젠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외벽에 LED 스크린을 넣어서 건물과 일체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SK 신관 건물의 COMO는 건물과 일체형이 되어 설계된 국내 최초의 미디어 파사드 사례다. 물론 COMO는 일반 사각형식의 패널이 아니라, 건물의 외벽 일부에 띠 장식처럼 들어가 있어, 다양한 형식의 미디어아트를 실험하는 공간으로서의 본격적인 미디어 파사드 개념으로 바라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센터 나비에서 기획하여 미디어아트(주로 영상작품)를 상영하는 최초의 공간이고, 지금까지 꾸준히 운영된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좀 더 본격적으로 미디어 패널을 퍼블릭 스페이스에 활용하고 있는 것은 현재 강남대로에 있는 미디어 폴이다. 강남구청의 야심 찬 프로젝트인 미디어 폴은 폭이 1.4m, 높이가 12.4m의 구조물 22개가 35m 간격으로 세워져 강남대로의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세계최초로 유명 미디어아티스트들의 작업을 거리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인근지역의 정보를 검색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전송도 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감응형 가로시설물이라고 한다.


강남역 대로에 설치된 미디어 폴. 현재 LED 영상 작업 상영은 하지 않고, 상단의 조명만 켜 둔 상태다.

하지만 정작 작업을 보면, 단순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처럼 보인다. 그것마저도 스크린은 도로 쪽을 향하고 있어서 보도 쪽에서는 영상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도로 쪽에서도 영상은 길 건너편에서 지나치며 볼 수 있을 뿐이고, 교통체증으로 인해서 차가 멈춰 섰을 경우에만 조금 보는 정도이다. 게다가 상영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소개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건물의 외관이 아닌 가로시설물의 경우, 작품을 상영할 때 시설물이 놓여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장소에 맞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 업데이트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작품 선정이나 미디어 폴 자체에 대한 연구 및 작품 제안이 공개되어 있어야 하는데, 앞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 나갈지 의문이다.

현재 미디어 폴은 35개의 거대 조형물이 영상을 뿌리고, 인터넷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터넷 아트가 무엇인지, 어떤 인터넷 아트를 실험하고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공개된 논의가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현재로서는 35개의 하드웨어 홍보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문제는, 처음에는 신기해 할지 모르지만,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하드웨어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및 콘텐츠 업데이트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낙후되어 골치 덩어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어떤 작품을 보여줄 것인지, 35개의 스크린을 통해서 어떤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중장기 방향성이 너무나 궁금할 뿐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비단 강남 미디어 폴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송도에도 U 시티가 생기고, 전국 곳곳에 첨단 미디어시티를 표방하려는 곳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기획안들을 만들어내면서, 미래도시를 꿈꾸고 있으나, 정작 전문가 풀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일회적이거나 행사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하드웨어를 만들어내고 홍보하기에 앞서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전문가 집단과의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서 콘텐츠를 짜내지 않을 경우, 도시는 번쩍이는 불빛에 불면증에 걸려 병들기 쉽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같은 불빛이지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은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도, 빌딩에 건물 외장에 반짝이는 별빛이 내려앉아 지나는 행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런 미디어 파사드를 꿈꿔보면 어떨까. 현란함으로 눈 가리는 그런 것 말고.


신보슬_큐레이터

10년도 넘게 미디어아트라는 녀석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많은 전시와 작품을 만나며, 일상에 많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해왔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그 신나고 즐거운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몇몇 괴짜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나아가 사람이 더불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Tag
#미디어파사드 #베니스 #COMO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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