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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 윤리적인 것과 비윤리적인 것 사이에서 _ 나조영

바캉스, 윤리적인 것과 비윤리적인 것 사이에서


글  나조영

초여름, 유월이다. 밤이면, 주택가 백열등이 켜진 조그만 욕실 창에서는 샤워하는 소리가 들리고,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와 물기 묻은 달콤한 향이 창을 넘어 좁은 골목으로 퍼져나간다. 낮이면, 조금씩 강렬해지는 태양 빛 속에서 시큼한 땀을 흘리면서도 조금만 지나면 떠나게 될 바캉스에 가슴이 설렌다. 경기침체로 다소 우울하긴 하지만, 이제 여름, 바로 바캉스의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다.

바캉스, 즉 휴가는 지극히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 이전에는 귀족이나 왕족만이 자유롭게 여행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고, 그 외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이 사업을 위해 여행을 하거나 혹은 종교적 학문적 이유로 방랑을 떠났다. 농민들이야 생활과 경제활동이 자연과 유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휴가라는 일상에서 분리된 시공간을 경험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축제가 더 흥분을 일으키는 문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통해 야기된 근대화는 인간의 일상에서 노동과 자연을 분리시켰다. 이전까지 인간의 노동은 언제나 자연과 분리되지 않았고 그 결과는 다시 인간에게 귀속되었지만, 근대화는 인간과 노동 그리고 노동의 결과를 분리시켰다. 그리고 공장으로 대표되는 노동의 조건은 언제나 자본에 의해서 통제 조절되었다. 이러한 ‘분리’의 경험은 이후로도 근대적 삶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화를 양산해 냈다.


그림 1. 조르주 쇠라Georges-Pierre Seurat, <아스니에르에서 목욕하는 사람들Bathers at Asnières>, 1884,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COPYRIGHT © National Gallery, London

바캉스라고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흔적을 우리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서 볼 수 있다. 르누와르의 ‘뱃놀이 파티의 오찬’이나 ‘물랭 들라 갈레트에서의 무도회’ 같은 회화는 획일화 된 삶에 지친 도시인들이 여가를 위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를 낭만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나 ‘아스니에르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 여가의 시간이 언제나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일요일 오후가 되면 월요일 출근을 무의식 중에 떠올리며 우울해지는 것처럼, 이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은 인공적으로 변해버린 파리 근교의 풍경과 도시의 냉소적 멜랑콜리를 함께 드러낸다.

근대적 공간으로 변해갔던 식민지 시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도 이러한 풍경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림 2.  60년대 안양유원지 모습 Photo by Neil Mishalov
COPYRIGHT © Neil Mishalov -
www.mishalov.com"
여름철이 되면 한강의 뱃놀이나 불꽃놀이는 당시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위를 식힐 기회였으며, 북한산 계곡과 안양 유원지는 서울 시민들이 쉽게 찾던 바캉스 장소였다. 한국의 오래된 유원지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조성되었다. 수탈을 목적으로 조선이라는 공간을 근대적 공간으로 재편했던 일제는 근대적 여가의 장소인 유원지를 잊지 않고 조성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이 놀이의 형식은 선비적 풍류와는 그 문화적 의미에서 커다란 괴리가 있다. 하여튼, 근대적 노동이 야기한 이러한 분리의 경험은, 일상적 삶에서 도시와 다시금 분리되어 자연과 다시 만나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인식하든 못하든, 우리는 여름이면 정말 바캉스를 떠나줘야 할 것 같은 강박에 몸서리 친다. 우리는 이글거리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피해, 코발트 빛 해변과 하얀 백사장에서 선탠을 하거나 하루 종일 마사지를 받으며 도시의 일상을 잊고 릴렉스하는 꿈을 꾼다. 혹은 열대의 풍광과 열기 속에서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런 사랑을 나누고도 싶어 한다. 여름 한철 휴가를 위해서 나머지 시간이 투자되기도 한다. 바캉스를 떠나기 위한 금전을 마련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남성이건 여성이건 바캉스에서 선보일 몸을 만들기 위해 일년 내내 헬스 클럽이나 요가 스쿨에서 땀을 흘린다. 바캉스에 대한 이 같은 동시대의 우울한 초상은 미셀 우엘벡(Michel Houllebecq)의 소설, “플랫폼”에 세기말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맞아. 하지만 여자라면 사방에 널렸잖아. 케냐라면 그래도 코뿔소도 있고, 얼룩말도 있고, 누도 있고 코끼리와 물소도 있는데. 내 제안은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를 ‘아프로디테’에 넣고 케냐는 ‘탐험’에 놓아두자는 거야. 게다가 그곳은 옛날 영국 식민지니까 에로틱한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아. 대탐험이라면 되지.”
“코트디부아르 여자들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

 (p. 259, 미셀 우엘벡, 플랫폼, 문학동네)

회복될 수 없는 문명에 대한 인간의 소외는 이렇듯 (섹스)관광의 형식으로 낭만화되고 소설의 주인공처럼 영원히 익명의 존재로 남겨진다. 언제나 쉽게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캉스를 통해서 모호한 삶의 에너지를 얻고자 한다.

오늘날의 바캉스가 앞서 이야기했던 현대 사회의 우울한 초상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서구에서 시작된 공정여행(fair travel)은 전지구화되는 사회 경제 시스템에서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대상화되는 타자들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만들어 졌다. 대안적 여행문화의 하나인 공정 여행은 여행이 시궁창처럼 소비적인 문화적 행태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며 서로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산적인 문화의 형식으로 고려되고 작동되었다.
 

윤리적 여행(ethical tourism)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러한 경향은 여행자들에게 여행시 윤리적 행동수칙을 알리고 작동시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지에서 비행기보다는 철도나 자전거 혹은 도보 이동을 하며, 멸종위기의 동식물로 만들어진 기념품을 사지 않기. 과도한 소비를 줄이며, 전세계적으로 체인화되는 리조트나 호텔 대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여행지 산업의 대부분이 바캉스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의 (기형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성된 또 다른 (기형적) 사업임을 자각하고 여행자들의 욕망을 윤리적 태도로 변화시킬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이제 단순히 여행 수칙을 장려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운동의 하나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림 3. 투어리즘 컨선(Tourism Concern)에서 발간되는 윤리적 여행 가이드 북(Ethical Travel Guide) 표지. COPYRIGHT ©Tourism Concern

영국의 공정여행 단체인 “투어리즘 컨선(tourism concern)”은 미얀마 정부의 비민주적 통치 방식에 반대하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반-미얀마 바캉스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미얀마의 국가 주 수입원이 관광산업이라는 것에서 착안한 민주화 운동인 것이다. 그리고 바하마의 비미니(Bimini) 만 리조트 개발이 지역 공동체의 삶을 해체하는 것에 반발해 지역주민들과 공동으로 저지운동을 벌였다. 더 나아가 이들은 지역주민을 소외시키고 그들의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거대 리조트 개발을 중지할 것을 전세계에 요청하고 있다.
(http://www.tourismconcern.org.uk/ 참조)

 
그림 4. 투어리즘 컨선에서 진행한 'Sun, Sand, Sea and Sweatshops'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획된 전시, <케냐 호텔의 노동자들>에 선보인 사진. 이 사진은 다음과 같은 문구와 같이 전시되었다. "이 아름다운 풀을 청소하는 샘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 다섯 달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때때로 이곳의 노동자들은 위스키나 와인으로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기도 하며, 그들은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아서 생활비를 마련했다. 물론 그 판매금은 생활하기에 터무니 없이 적은 돈이다."
COPYRIGHT © Tourism Concern


최근 한국에서도 종래 동남아시아에 대한 기형적 여행 행태를 반성하며 공정여행에 대한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한 주간지는 필리핀의 작은 농촌 마을이 한국인들에 의해 매춘산업의 메카로 떠오른 것을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좌절된 남성성이 필리핀 오지에서 변태적으로 충족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형적 여행은 현재 다문화 사회로 접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타자를 소비하는 가장 변태적 행위로 기억될 것이다. 여행이 우리의 변태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조건과 가치를 성찰하면서 타자를 응대하는 또 다른 환대의 방식임을 성찰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러한 성찰적 태도를 기반으로 우리는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자센터는 지난 3월부터 전라도 화순에 위치한 천태초등학교와 공동으로 ‘내 친구의 외갓집은 산호세’라는 공정(수학)여행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현재 한국에서 다문화 사회로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는 지역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농촌지역이다. 혼기를 놓친 농촌 남성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십 년 전부터 신부를 수입했고, 이들의 2세들이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것이다. 학생들은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2등 시민으로서의 외국인 노동자, 혹은 이국적 여행지로만 소개되는 동남아시아의 이미지를 떠나, 친구의 외갓집으로서의 필리핀을 학습하고 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리고 이들은 필리핀 산호세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이들이 준비하고 경험한 이 여행은 단순히 질펀하게 놀다 오는 그저 그런 수학여행이 아니라, 내가 아닌 남을 알아가는, 그리고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학습한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http://map.haja.net/zbxe/sanjose 참조)

이와는 다소 다르지만, 한국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공정여행도 있다. 정부는 농촌의 삶의 질 개선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농촌을 전통 테마마을로 변형시켜 농촌과 도시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 날의 농촌 개발이 근대적 삶의 형식과 농업생산력 증대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번은 농촌의 전통적 삶의 조건을 생태적으로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초대하여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게 하는 것이다.
(http://www.go2vil.org/ 참조)

자,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도심의 수많은 광고 스크린에서는 반라의 남녀들이 멋진 몸을 흔들며 해변으로 산으로 떠나자고 유혹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여행을 상상해야 할까?
 


나조영_문화연구 및 문화 인류학 전공. paul.jy.nah@googlemail.com

문화 인류학적 시각으로 동시대 사회문화현상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트렌드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지만, 그 트렌드를 쫓아 가기 보다 사회 문화를 분석하는 틀로 삼고자 할 뿐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적용 전유 가능한 또 다른 시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Tag
#바캉스 #근대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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